마을, 영화, 남겨진 이야기

    - 마을영화 리뷰 : <향>(2014, 푸른영상&가족의 힘), <할머니의 꿈>(2014, 노들장애인야학)


    이인현(<마중>객원필자)


     삶의 의미를 알려고 할수록 삶은 더욱 자신의 모습을 감춘다. 어떨 때는 우리가 삶의 시작과 끝, 그리고 그 의미를 완전히 모른다는 것. 그 사실을 아는 것만 해도 큰 수확이라는 생각도 든다. 나의 삶도 알 수 없으니 다른 사람의 삶은 오죽하랴. 하지만 영화는 종종 우리를 우리가 알 수 없는 다른 사람의 삶으로 데려간다. 지금부터 소개할 두 개의 영화에서 나는 내가 겪을 수 없는 삶을 보게 된다.



    가족의 힘 <향>



     누군가의 사망 소식을 전화로 듣는 중년의 여자. 아무도 없는 텅 빈 장례식. 잘못 뽑힌 영정 사진. 고성이 오가고 돈을 빌려달라고 붙는 취객들. 거실을 차지한 빚쟁이들.

     이 이야기는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남편의 죽음에서 시작한다. 여자는 상주로 손님들을 맞이하고 자식들을 챙기며 남편이 남겨놓은 빚을 받으러 온 사람들과 싸운다. 아들이 군대에서 휴가를 나왔지만 웃어보지도 못한다. 강에 남편을 유골을 뿌리려 했지만 보잘 것 없는 강의 모습에 여기는 안 되겠다며 다시 돌아온다. 아들은 자신이 산에 유골을 뿌리겠다고 했지만 마침 비가 오고 휴가가 끝나 부대로 복귀해야했다. 결국 여자는 직접 남편의 유골을 가방에 넣고 산에 간다. 평범한 등산객처럼 인적이 드문 곳으로 가 땅을 파헤친다. 누가 볼 새라 황급히 유골을 묻고 내려오던 여자는 ‘나쁜 새끼, 그렇게 살다 갈거면서’란 말을 한숨 쉬듯 뱉는다.

     이것은 남겨진 자의 이야기다.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고 한다. 나는 이 영화를 두 번 봤다. 마을미디어 축제에서 한번, 가족의 힘 상영회에서 한 번이다. 코끝이 맵고 손끝이 시리도록 추운 날이었다. ‘가족의 힘’ 어머니들은 이 영화로 뭉칠 수 있었고 계속 모일 수 있는 힘을 만들었다고 했다.


     누군가의 삶이 끝났다. 죽은 사람의 삶의 의미는 아무도 모른다. 남은 사람들만이 그 삶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영화는 남편이 여자에게 남겨놓은 것들을 계속해서 보여준다. 남편은 여자에게 두통이자 빚이자 분란의 시작이다. 그가 어떤 사람이었고 무엇을 했고 여자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저 담담히 주어진 일들을 차례대로 처리할 뿐이다. 유골을 묻고 나서야 여자는 남편을 정리한다. 나쁜 새끼. 남편을 향한 생각과 마음은 복잡하다. 그것이 하나의 어휘가 될 때 마음속에 어떤 형상이 된다. 쉽게 정리되지 않던 그는 이제 나쁜 새끼다.

     우리 모두 때로는 남겨진 자고, 때로는 남기고 가는 자다. 영화는 큰 이야기의 굴곡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이제 무언가를 새로 시작하는 것 같은 엔딩의 담담함이 서글프게 느껴진다. 남겨진 자의 삶이 다시 시작될 것이기 때문이다.



    노들장애인야학 <할머니의 꿈>


     장애 운동 현장에서 마이크를 들고 있는 박경석. 그는 노들장애인야학의 교장선생님이다. 평소 희고 긴 머리 때문에 할머니라는 놀림을 받던 그는 오랜만에 만난 친구에게 ‘뒤에서 보면 영락없는 머리 하얀 할머니 장애인이야’라는 말을 듣는다. 당장 머리를 자르기로 결심하는 박경석. 그 소식을 들은 다른 선생님들은 발을 동동 구른다. 박경석이 머리를 기르기 시작하면서부터 승승장구하던 장애인 운동은 2005년 그가 머리를 자르던 날, 지도부 전부가 경찰에 연행되는 초유의 사태를 맞았다는 것이다. 머리를 자르려는 교장샘과 장애인 운동을 위해 이를 막으려는 선생님들의 고군분투.



     이야기는 박경석이 미용실에서 머리를 자르려는 순간, 다른 장애인들이 교통사고의 위험과 부딪히는 장면이 교차 편집되어 나오며 절정이 된다. 결국 그들 중 아무도 다치지 않고 박경석도 머리를 자르지 않지만 한통의 문자가 날아온다. 자립생활의 꿈을 안고 시설에서 나온지 얼마 되지 않아 집에서 발생한 화재로 숨진 송국현씨의 이야기다. 그의 죽음은 장애등급제 때문에 활동보조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었던 상황에서 일어났고 충분히 예방가능 했다는 것이다.


     박경석의 긴 머리로도 막을 수 없는 죽음이었다. 애시당초 박경석의 머리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을 지도 모른다. 이 영화에서 가장 드라마틱한 사건으로 구성된 것은 머리를 자르는 일이다. 영화에서 나오듯 박경석과 장애인 운동과의 관계는 미신에 가깝다. 하지만 머리를 자르는 사소한 일처럼 장애인들의 위험이 빈번하고 실생활에 넓게 포진해있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영화에서는 이 위험을 각각 개개인 장애인의 위험 뿐 아니라 장애인 운동 전체로 확장시킨다. 머리를 자르는 일 하나로 모든 것이 무너질 지도 모른다고 염려할 만큼 장애인 운동 또한 어렵고 힘들어 보인다.



     하지만 그들은 영화 내내 유쾌하다. 함께 하기 때문이다. 서로의 안부를 묻고, 붙잡아주고, 이겨나간다. 머리를 자르는 것 하나에 무너져 버릴지도 모르지만 다시 자라는 머리처럼 그들은 운동을 이어나갈 것이다. 할머니의 꿈이 계속 건재하길 기대하는 이유다. □




    Posted by 마중 서울마을미디어지원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