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서울을 여행하는 분들을 위한 가이드북

    - 마을미디어 가이드북 <떠나자! 서울마을미디어여행> 리뷰


    양제열 (용산FM)


     방콕을 여행하다 길을 잃고 한참을 헤맸을 때였다. 나는 가이드북에 나와 있지 않는 좁은 길목에 접어들었고, 거의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 배도 고프고 발도 아파서 어쩔 수 없이 노점상에서 밥을 시켜 먹는데 햇살은 투명했고 바람은 시원했고 밥은 맛있었다. 갑자기 피식 웃음이 나왔다. 


     ‘뭐 어때?’ 라는 생각과 함께. 


     마음이 느긋해지니 내가 가이드북이 안내하는 명소와 명물들이 정말 거기에 있는지 확인하는 여행을 하고 있었다는 깨달음이 왔다. 그러자 짧은 시간 안에 최대한 많이 경험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 좀 더 자유롭게 그 공간에서 보내는 순간들을 즐겨야겠다고 마음먹게 되었다. 그 이후로 나는 여행이 끝날 때까지 가이드북을 좀 덜 펼쳐보게 되었다.


     이렇게 구구절절하게 태국 여행기로 글을 시작한 것은 서울마을미디어지원센터가 펴낸 “마을미디어 가이드북 - 떠나자! 서울 마을미디어 여행”(이하 “마을미디어 여행”)을 처음 봤을 때 가이드북에 고개를 파묻고 방콕을 돌아다녔던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게다가 ‘여행’과 ‘마을’은 서로 어울리지 않는 말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여행자는 늘 다른 곳을 찾아 이동하고 마을의 주민은 한 곳에 정주한다. 여행자의 시선은 게걸스럽게 새롭고 신기한 것을 찾는다. 그 시선 아래에서는 마을에 사는 주민들의 삶도 전시되고 소비될 뿐이다. 그러므로 ‘여행’과 ‘마을’은 이율배반적이지 않겠는가? 그래서 나는 조금 삐딱한 시선을 던지며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다.


     그러나 “마을미디어 여행”은 여행 가이드의 형식을 빌리고 있지만, 흔히 떠올리는 ‘그렇고 그런’ 가이드북이 아니었다. “마을미디어 여행”은 여행 가이드 외에도 다양한 방법으로 활용할 수 있는 책이기 때문이다.



     우선 “마을미디어 여행”은 다른 시각으로 서울을 여행하는 방법을 제시한다. “마을미디어 여행”은 권역별 “마을 미디어”를 중심으로 마을을 바라보는 방법을 제시한다. 그래서 이 책을 통해 바라본 서울은 관광도시로서 떠올리는 서울과 사뭇 다르다. 예를 들어, 쇼핑과 유흥으로 유명한 서울 동남권은 “마을 미디어”가 많이 없는 관계로 간략하게 넘어가고 “마을 미디어”가 활발한 다른 권역들이 자세히 소개되어 있다. 


     “마을미디어 여행”은 소위 뜨는 맛집이나 랜드마크에 대한 설명 대신 복작복작 주민들이 일구는 커뮤니티들을 소개한다. 해방촌의 경우, “마을미디어 여행”은 내장파괴버거와 뉴질랜드 피자집 대신 “종점수다방(용산FM)”, “네평학교”, “빈 가게” 등을 소개한다. 이 커뮤니티들은 물론 마을에 뿌리 내리려는 사람들이 가꾸어 나가는 공간이지 관광 상품이 아니다.



     이런 태도에는 우리가 사는 공간을 다르게 바라보는 시선이 담겨있다. 화려하지도 않고 자극적이지도 않지만 우리의 일상을 긍정하는 시선. 가끔은 무례하기까지 한 여행자의 시선과는 다른 주민의 시선. 나는 그 시선이 참 좋았다.



     다음으로, 마을미디어를 이끌고 있는 분들의 인터뷰는 마을미디어 운동의 지향점을 잘 이해할 수 있게 한다. 누군가 ‘마을 미디어를 왜 하는 거에요?’라고 물어봤을 때, 어떻게 답할 수 있을까? 이것은 마을미디어의 일선에서 활동하는 모든 활동가들이 마음 한 켠에서 고민하고 있는 질문일 것이다. 그런데 “마을 미디어 여행” 중간 중간에 실린 마을 미디어 대표들의 인터뷰는 이런 질문에 좋은 대답이 되어 준다. 예컨대 창신동라디오덤의 조은형 대표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가난하고 평범한 사람들도 동네에서 즐겁고 재밌게 살 수 있다는 걸 증명하고 싶었어요. 빡세게 돈만 벌고 수레바퀴에 치여서 사는 게 아니라, 일상 속에서 작은 것이라도 창조하며 주인이라는 느낌이로 그렇게 살 수 있다는 걸.” (p.23)


    “라디오를 하면서, 사람들이 자기 이야기를 정리해서 들려줄 때 치유되는 느낌, 자기 생각이 정리되어가는 느낌을 받는 걸 목격할 수 있었거든요. 이걸 멍석 효과라고 부르는데요, 그냥 수다 떠는 게 아니라 방송에서는 자기가 이야기의 집을 구성해야 하잖아요. 그런 경험을 하는 것이 의미 있고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고 생각해요.” (p.24)





     조은형 대표처럼 마을주민의 자기표현에 방점을 찍는 분도 계시고, 주류 미디어에 대한 대안으로 마을 미디어를 고민하는 분도 계시다. 활동하는 현장이 다른 만큼 고민도, 그에 대한 대답도 모두 다를 것이다. 그러나 나는 5명의 인터뷰이의 대답을 읽으면서 그들이 공유하고 있는 마을 미디어의 지향점을 엿볼 수 있었고 마을 미디어에 대해 나름대로 관점을 정리할 수 있었다. 이처럼 “마을 미디어 여행”은 처음 마을 미디어 활동을 시작하는 활동가들이 조언을 구할 수 있는 책이다. 



     마지막으로 “마을 미디어 여행”의 ‘그림으로 보는 마을 미디어 Tip’은 마을미디어를 직접 만들어 보려는 사람들에게 실용적인 팁을 전수한다. “마을미디어 여행”을 읽으면서 마을미디어가 무엇인지, 그리고 어떤 동네에서 활동하는지 알았다고 하자. 그리고 마을 미디어의 활동에도 십분 공감하게 되었다. 그러면 이제 ‘마을 미디어를 나도 해볼까?’라는 생각이 드는 분도 있지 않을까?



     그런데 “마을미디어 여행”은 마을미디어 활동에 대한 입문서 역할도 수행한다! 마을미디어를 듣고 보는 방법에서부터 시작하여 마을미디어의 개념, 직접 마을 미디어를 만드는 팁 등이 충실하게 들어있기 때문이다. 팁의 내용도 상세해서, 300만원으로 장비를 구성하는 방법, 녹음하는 방법, 파일을 편집하는 방법 등 마을미디어 제작의 A부터 Z까지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다. 읽다보면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감을 충분히 키워준다. 




     이상으로 간단하게 “마을미디어 여행”의 활용법을 살펴보았다. 바라건대, 마을미디어가 구마다, 동마다 들어서서 우리가 우리의 삶을 직접 이야기하고 노래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또한 서울이 늘 불안정하게 유동하는 도시가 아니라 땅에 뿌리박고 무언가를 만드는 복작거리는 삶이 가능한 곳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누구나 동마다 있는 마을 미디어에 찾아가 안착할 수 있는 곳이 되었으면 좋겠다. 이것은 주류 미디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닐 것이다. 


     그러므로 다음 “마을미디어 여행”이 조금 더 두꺼워지고, 마을미디어 지도가 좀 더 촘촘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하지만 지금의 “마을미디어 여행”도 다른 서울을 발견하고 싶은 분들에게 좋은 출발점이 되어 줄 것이다. □




    [필자소개] 요르

     용산2가동(이른바 “해방촌”)에 위치한 용산FM에서 재밌게 활동하는 마을미디어 활동가. 과거에는 무엇보다 책을 읽는 것이 제일 좋았던 수줍은 사람이었다. 그런데 어찌어찌 마을미디어 운동에 발을 들이게 되었다. 이제는 타인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의 매력을 차츰 깨닫는 중. 잠시 책을 덮고 다른 사람의 노래를 잘 전달하는 통로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Posted by 마중 서울마을미디어지원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