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 그 이상의 감동

    - 은평시민신문 100호 리뷰


    김경미(동네스튜디오)


    신문을 훔쳤다.


     은평시민신문을 처음 만난 건 내가 살던 다세대연립주택 우편함이었다. 내 옆집에 윗집에 누가 사는지도 알지 못하는데, 연립주택에 호수 없이 도착한 신문은 별 수 없이 공용함에 며칠째 방치되고 있었다. 타블로이드판형의 신문에는 지역의 현안을 취재한 이야기들이 빼곡했고, 마을의 삶이 생생하게 담겨있었다. 일단은 같은 곳에 살고 있는 누군가, 혹은 이전에 살았던 누군가 이 신문을 구독중이라는 사실이 위안이 되었다. 같은 공간에서 같은 이야기를 공유하는 이웃, 은평시민신문을 통해 비로소 내가 ‘거주’하고 있는 마을에서 ‘살고’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카톡이 왔다.


     메르스가 서울 강남지역을 휩쓸고 전국으로 퍼져나가 대책 없는 불안감이 가득하던 6월. 언론과 정치권에서는 병원명단을 공개를 둘러싼 말들이 무성해지기 시작했고, 메르스 감염 확진자가 있는 병원명단이라면서 공공연하게 출처 없는 정보들이 쏟아지고 있었다. 은평시민신문은 달랐다. 지역의 병원에 관리대상자가 있다는 소문을 접한 은평시민신문에서는 병원을 직접 취재해서 기사화시켰고, 신속하게 카톡으로 공유되었다. 비록 ‘저녁만 은펑에 있는 삶’이지만, 그 어떤 기사보다 나를 안심시키고 든든하게 만들어주는 맞춤형기사였다. 메르스 관련한 가장 중요한 정보는 내 생활반경에 감염자가 있느냐의 여부였지 않은가.



    은평시민신문이기에 가능한 이야기



     발행된 은평시민신문 100호에는 은평을 연결하고, 은평을 사랑하며, 은평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위한 지역밀착형 이야기가 가득하다. 

     인터넷을 뜨겁게 달궜던 ‘충암고 교감의 막말사건’에 대한 후속보도가 꾸준히 이어지고 있었다. 재발방지대책을 요구하는 급식대책위원회의 활동과 서울시교육청의 권고에도 불구하고 미온적인 학교 측의 대응이 전해졌으며, 충암고 학생들의 인터뷰를 통해 충암고의 열악한 급식·위생·학교시설의 현장도 생생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은평구의 현안과 지역발전 방안을 논의하는 생활공감토론회 현장의 논쟁적인 주제들은 질의응답방식으로 간결하게 정리되었으며, 현장을 취재했던 기자의 칼럼을 통해 현장의 분위기마저 실감할 수 있었다. 수색역세권과 韓(한)문화체험특구지정, 서울혁신파크까지 향후 지역사회의 미래를 모색해보는 자리에서 오고갔던 이야기를 기사로 정리해 기록한다는 건, 지역사회의 논의를 활성화시키고, 보다 책임 있는 정치를 요구할 수 있는 아주 기본적인 조건이기도 하다.

     ‘동네 안전’과 ‘재개발’, ‘주민참여’의 이슈는 은평시민신문에서 지속적으로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부분이다. 불법주차문제로 소방차 통행이 어려운 지역의 개선책을 요구한다던지, 서울시의 정책이 지금 당장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의 재개발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현장을 진단한다던지, 생활하는 사람들이 중심이 돼서 정책적인 대안을 마련하는 지역생활권계획의 워크숍 풍경까지 무엇 하나 중요하지 않은 이슈가 없었다. 



    언제나 중심엔 사람 이야기


     유난히 풍성한 100호에는 은평시민신문의 역량이 총망라되어있는 느낌이다. 신문의 제호를 새겨주셨던 이철수 화백은 ‘미래를 여는 앞선 신문’이라며 축하의 말을 아끼지 않으셨고, 박원순 서울시장님과 김우영 은평구청장님을 비롯한 은평지역 정치일꾼들의 축사부터 은평지역 주민들이 전해온 축하의 메시지가 풍성하게 지면을 채워주었다. 은평구 곳곳을 누비는 시민기자와 함께 그리고 삶 속의 풍경을 전하는 마을일꾼들의 칼럼과 함께 은평시민신문에는 진한 사람냄새가 가득하다. 

     그래서 오히려 아쉬운 점은 은평시민신문의 지극한 품위이다. 지자체의 지원없이 오롯이 시민, 협동조합의 기반위에서 만들어지고 있는 신문인데, 광고마저 너무 착하다. 두레생협의 화장품 제품광고를 제외하면, 마을 행사나 강연 프로그램이 대부분이다. 은평의 옷가게, 식당, 카페, 헬스장 광고정보를 싣는다면, 은평시민신문에 광고를 집행했다는 이유만으로 선호할 충성 독자가 바로 여기 있는데 말이다. 광고의 다양성을 확보하고 안정적인 수입기반을 마련한다면 마을미디어가 꿈꾸는 모든 일들이 은평시민신문으로 가능해질 수 있지 않을까.



    100호다. 


     2004년 인터넷신문으로 출발해서 2009년 종이신문을 발행하고, 한 달에 2번씩 만든 신문이 어느덧 100호가 되었다
    고 한다. 대학시절 한 학기에 2번 만드는 신문이 내 삶의 중심이었던 날들이 있다. 글을 쓰고, 편집기를 붙들고, 며칠 밤을 지새우고, 신문이 찍혀 나오던 날. 신문을 고이 접으면서 느꼈던 충만감을 기억하고 있었다. 10년이라는 시간동안 살아 숨 쉬는 기사를 작성한 기자들과, 6년이라는 시간동안 종이 신문을 발행하는 풍경이 눈에 선하게 그려지는 건 내 개인적인 경험 덕분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접고 싶어도 접어지지 않았던 그 험난한 신문사 운영을 끌어오신 시민사회 활동가분들과 기자 분들에게 100호 축하 때 건네지 못한 존경을 전하고 싶다. 마을에 이런 신문 하나쯤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며 시작하는 일은 오히려 쉬울지도 모르겠다. 열악한 여건에서도 그 기대와 열망을 고스란히 끌어안고 쌓인 100번의 충만감이, 앞으로 200번, 300번, 가이없이 계속되길 기대해본다.□ 





    [필자소개] 김경미 (동네스튜디오)
     지난 세월, 서울을 전전하며 살아온 까닭에 동네와 친해질 수 있는 몇 가지 기술을 알고 있었다. 은평 마을에 이사온 지 3년 만에 라디오와 놀기 시작했으며, 새로운 경지의 동네살이를 경험하고 있는 중이다. 평화로운 지구는 내가 살고 있는 마을에서 시작한다는, 막연하고 철석같은 믿음이 있다.



    Posted by 마중 서울마을미디어지원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