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드-패션드(old-fashioned)를 응원함

    - 동작마을TV 수료작 네 편 리뷰


    요르 (용산FM)


     지난 9월 17일 목요일, 나는 동작구에 위치한 카페 ‘나무’에서 열린 동작TV의 작품 발표회를 다녀왔다. 내가 들어섰을 때 조그만 카페 한 구석에 무대와 음향콘솔이 차려져 있었고, 이미 상영이 한창이었다. 스크린에는 화사한 여름날 귀여운 꼬마들이 소풍을 즐기고 있었다. 나는 쓸쓸한 가을밤을 뚫고 한참을 걸어야 했다는 사실을 단박에 잊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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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날 작품 네 개가 발표되었고 중간 중간 제작자와 관객 사이의 대화가 있었다. 여름날 꼬마들의 소풍을 그린 영상은 ‘꼬물꼬물 숲 속 놀이터’라는 작품이었다. 내게 현충원은 무거운 역사적 함의를 지닌 곳이지만 아이들에게는 매미를 흉내내고 맛있는 도시락을 먹는 신나는 놀이터였다. 무겁게 짓누르는 역사적 장소와 가벼운 아이들의 몸짓의 간극이 낯설었지만 작품은 시종일관 장난스럽고 사랑스러웠다.



    ▲ 동작마을TV 수료작 <꼬물꼬물 숲 속 놀이터> 중 한 장면


     다음으로는 성대시장에 하나 남은 동네 서점 ‘대륙서점’을 다룬 영상이 상영되었다. 중후한 노신사와 그의 아내가 함께 운영하는 서점을 다루는 카메라의 시선에서 따뜻함이 느껴졌다. 이어서 관객과의 대화에서 직접 사장님 부부가 나오셨고, 대륙서점을 새롭게 맡은 젊은 부부도 관객들에게 인사를 드렸다. 노(老) 사장님 부부가 대륙서점을 떠나는 것은 아쉽지만 새 주인을 맞아 대륙서점이 계속 문을 열 수 있게 되어서 다행이었다. 나중에 알게 된 것이지만 ‘대륙서점’ 편을 촬영한 팀원 중 한 명이 대륙서점의 공간을 새롭게 디자인하는 작업에 참여했다고 한다.



    ▲ 동작마을TV 수료작 <대륙서점> 중 한 장면



     세 번째 작품은 ‘십대라면 누구나 카페 나무로 놀러와’였다. 바로 상영회가 열리고 있는 나무 카페가 어떻게 세워졌고 어떤 역할을 하는지 일별할 수 있었다. 카페 나무는 거리를 헤매는 청소년들을 상담하다가 무언가 고정된 장소에서 아이들을 만나고 싶다는 선생님들의 바람에서 만들어진 곳이었다. 나무 카페는 청소년들의 쉼터 역할을 하고 있었다. 또한 다른 사람을 위한 커피를 기부할 수 있는 등 나눔의 정신도 실천하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우리동네 맛있는 수다, 요리연구소’가 마지막 상영을 맡았다. 청년들의 요리 연구소라는 맛있는 주제와, 라면쌈이라는 특이한 메뉴의 조합이 무척 유쾌했다. 내가 가본 적 있는 동작 블랭크와 거기서 활동하는 활동가 분들이 손수 요리를 하는 과정을 보면서 동작TV 상영회가 청년들 역시 놓치지 않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의도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린 아이, 청소년, 노인, 그리고 청년까지 다양한 세대를 아우르는 작품들의 외연이 바람직하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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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상영회를 지켜보면서 한 가지 형용사가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건 바로 ‘올드-패션드(old-fashioned)’라는 단어였다. 대개는 이 단어를 구닥다리로 번역 하지만 나는 그런 부정적인 의미에서 이 단어를 떠올린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나는 작품들이 유행의 첨단에서 조금 빗겨나 전통적인 가치를 구현하고 있다고 느꼈다.


     우선 네 작품 모두 10여분에 가까울 정도로 길었다. 다큐멘터리 영화에 비한다면야 짧지만, 요즘 대세라고 할 수 있는 유투브에 업로드 된 동영상의 평균 길이가 4분 12초라는 것을 고려하면(http://www.sysomos.com/reports/youtube-video-statistics) 분명 평균을 웃도는 길이다. 하물며 6초안에 모든 이야기를 전달하는 vine과 같은 서비스가 인기를 끌고 있는 세태를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하지만 나는 느리지만 성찰하는 태도, 카메라를 든 사람의 시선이 느껴지는 영상이 좋았다. 유통되는 영상의 길이가 짧아지면서 서사도 파편화되고 주제도 점차 자기 자신에만 집중한다고 느끼는 것은 나뿐일까? 나르시시즘이 만연한 이 시대에 내가 아니라 타인을, 공동체를 향한 시선이 더욱 귀하게 느껴졌다.


     상영회가 끝난 후 이어진 조촐한 파티에서는, 격의 없는 대화가 이어졌다. 대부분 공동체 활동을 하고 있는 분들이어서 한 두 다리를 거치면 모두 아는 사람이라는 것도 새삼 신기했다. 이 자리에서 나는 다큐멘터리 작업을 하는 어느 감독님을 뵈었고 내가 하는 활동과 접점을 찾기도 했다. 이것이 바로 느슨한 네트워크, 느슨한 연대의 힘이 아닐까. 처음에는 잠깐 인사만 하고 나가려 했지만 결국은 마지막 청소까지 같이 하고 카페를 나왔다. 다른 한 사람을 위한 커피 한 잔을 기부하기를 잊지 않고서.


    ▲ 동작마을TV 수료작 상영회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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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객과의 대화에서 VJ들이 항상 빼놓지 않고 ‘마을’과 ‘공동체’를 언급했다. 고되기도 하겠지만 영상 활동이 영상물을 제작하는 것뿐 아니라 마을 구성원 간의 네트워크를 짜고 단단히 하는 작업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리하여 지금은 막연한 마을이 종내는 재건되기를 바란다. 그것이 내가 하고 있는 활동의 이유이기도 하니까. 부디 공동체의 기억을 만들고, 보존하고, 전달하려는 움직임이 소중한 성과를 거두기를 기원한다. 


     영상을 만드는 것은 참 힘든 일이다. (인정하긴 싫지만) 내가 활동하는 라디오 영역보다 힘들다. 10분짜리 영상이라도 콘티를 짜고 구도를 계산하고 하루 종일 촬영해야 한다. 그 이후에는 고된 편집이 기다리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마을 미디어에서 영상 활동가들이 많이 남지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동작TV의 교육 프로그램 수료 비율이 높다고 하니 꾸준한 활동을 기약해도 될 것 같다.


    동작TV의 첫 발걸음에 응원을 보낸다. ■


    동작마을TV 수료작 보러가기 -> https://youtu.be/J8oMJadmDYQ


    [필자소개] 요르

     용산2가동(이른바 “해방촌”)에 위치한 용산FM에서 재밌게 활동하는 마을미디어 활동가. 과거에는 무엇보다 책을 읽는 것이 제일 좋았던 수줍은 사람이었다. 그런데 어찌어찌 마을미디어 운동에 발을 들이게 되었다. 이제는 타인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의 매력을 차츰 깨닫는 중. 잠시 책을 덮고 다른 사람의 노래를 잘 전달하는 통로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Posted by 마중 서울마을미디어지원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