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보다 더 풍부하고 멋지게! 은평 ‘동네스튜디오’에 가다

    - <동네스튜디오> 인터뷰



    성상민(<마중> 객원필자)


     이것은 우연의 일치일까, 아니면 필연적인 운명일까. 마을미디어라는 개념을 어렴풋이 알아갈 때 유독 은평구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을 만나 대화를 나눌 기회가 많았다. 정작 내가 사는 동네는 동대문구이고, 은평구와의 인연은 친척이 은평 뉴타운에 살고 있다는 정도였다. 그랬던 내가 사는 터전과는 정반대에 있는 사람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듣고 다니게 된 것이다. 그러면서 나는 아이러니하게도 살고 있는 동네보다 은평구 소식에 더 귀를 기울일 정도가 되고 말았다. 이번에 만난 이들도 은평구에 살며 마을미디어를 만드는 사람들이다. 지난 3월 말, 작년에 이어 마을미디어 활성화 사업의 ‘복합형’ 유형에 선정되며 마을미디어 제작 및 교육을 한시름 놓고 할 수 있게 된 ‘동네스튜디오’, 그리고 그들이 만드는 ‘은평라디오’ 이야기를 들어봤다.



    어쩌다 마주친 마을미디어



    ▲ 동네스튜디오를 꾸려 나가는 3인조의 모습.

    왼쪽부터 ‘생강PD’ 김경미 씨, ‘쩝’ 한지엽 씨, ‘딸기’ 김혜미 씨.


     이미 은평구에는 <마중>에 쓸 글을 위해 몇 번 방문했지만 올 때마다 기분이 새롭다. 특히 마을사람들이 자체적으로 만든 커뮤니티 공간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지난 5월 10일, 청소년 쉼터와 마을 도서관을 함께 운영 중인 ‘작공’에서 은평라디오를 만드는 동네스튜디오 3인방을 만날 수 있었다. 바로 동네스튜디오가 처음 생긴 순간부터 함께했던 ‘생강PD’ 김경미 씨와 올해 공동으로 운영담당자를 맡게 된 ‘쩝 ’ 한지엽 씨, 그리고 ‘딸기’ 김혜미 씨다. 혜미 씨는 경미 씨의 동생이기도 하다.

     이들은 어떻게 마을미디어를 만들게 되었을까.


     “사실 처음엔 별거 없었어요. 사람들끼리 이야기하다가 동네에서 라디오 만들자는 이야기가 나오면서 시작했죠.”


     반농담 삼아 진행되었던 말이 씨가 되어 서울마을미디어지원센터에 지원을 신청하고, 접수한 기획안이 선정되면서 점차 일이 커졌다. 단체 이름인 ‘동네스튜디오’ 역시 특별한 의미를 두고 붙인 것이 아니라, 지원사업 접수 요건을 채우려 고유번호증을 받을 때 필요하다고 해서 붙인 거였다. 오히려 본인들은 동네스튜디오에서 만드는 콘텐츠의 이름, ‘은평라디오’를 스스로를 대표하는 이름이라 여기고 있었다.

     올해 운영담당자를 맡게 된 두 명의 PD도 사정은 비슷했다. 지엽 씨는 은평구에 살다 은평라디오를 알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방송 제작에 참여하게 된 케이스이다. 혜미 씨 역시 친언니가 적극적으로 동네스튜디오를 운영하면서 마을미디어를 함께 만들게 되었다.


    “아무래도 집에서 듣는 이야기가 있다 보니 자연스레 같이 하게 되었어요.”

     조금은 이런 인터뷰가 익숙하지 않다는 듯 쑥스러운 목소리로 혜미 씨는 대답했다.


    “집에서는 나한테 잔소리 많이 하면서, 처음 보는 사람이니까 괜히 이렇게 대답하는 거예요.”

     경미 씨가 농담 섞인 말로 조금 가라앉은 분위기를 환기시켰다.


     어찌되었든 가볍게 나온 이야기가 점점 커지면서 본격적인 마을라디오가 된 동네스튜디오다. 라디오 프로그램이나 교육 커리큘럼 제작이 어렵지는 않았을까. 동네스튜디오는 지금까지 콘텐츠를 어떻게 만들어 왔는지 궁금했다. 경미 씨는 여기에 마을 내 관계망의 힘이 컸다고 한다.


    “은평구에는 마을공동체 활동을 하시는 분이 많다보니 그 안에서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만들게 되더라고요. 그러다 보니 ‘책 읽어주는 여자’ 같은 프로그램은 비록 방송 크기는 작아도 마을 내부에서 알음알음 팬들이 많아요. 물론 이런 프로그램들이 항상 재미있기만 한 것은 아니에요. 마을 안의 이야기를 전하는 장점이 있지만, 동시에 진중한 분위기가 형성될 때가 많죠. 동네 아줌마들끼리 만들던 프로그램 ‘와글와글 속닥속닥’이 가장 그런 부분에서 고민이 많았던 것 같아요. 그 흔한 음악 한 번 없이, 게스트는 또 얼마나 많은지, 우리끼리는 재미있게 녹음했지만 과연 듣는 사람도 재미있을까 고민도 해요. 다행히 아직까지는 재미있게 듣는 분이 많은 것 같아요.”



    때로는 달지만 때로는 쓴, 바로 마을미디어


     이렇게 마을 내부에서 꾸려나가는 방송이다 보니 재미있는 에피소드도 많다. 지엽 씨는 작년에 방송을 녹음할 때 겪었던 일화를 들려주었다.


    “우리 방송이 팟캐스트다 보니 그다지 시간제한이 없어요. 그래서 원래 1시간만 녹음해야 하는데 진행자분이 신나서 2시간 정도 녹음을 하게 된 거예요. 심지어 녹음을 관리하는 PD도 진행자에게 빠져들어 팬미팅 현장을 보는 것 같았죠. 사심 가득한 방송이 뭔지를 직접 봤다고 할까.”

     어찌 보면 방송사고일수도 있는 해프닝이지만 그는 그런 모습이 나쁘지는 않았다고 한다.


    “보면서 저도 너무 즐거웠어요. 연출자도 방송을 같이 즐기는 상황이 너무 멋있었거든요.”


     물론 마냥 행복하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경미 씨는 복합형 유형으로 지원을 받으며 교육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이 결코 쉽지 않았다고 한다.

    “교육 프로그램을 같이 하고자 했던 이유는 기존에 방송을 만드는 사람 말고 새로운 사람들을 위한 장치도 있어야 한다고 봤기 때문이에요. 지금 은평라디오에는 전부터 마을에서 활동하던 사람들이 모여있다 보니 인간적인 관계가 없으면 쉽게 방송에 참여하기 어렵거든요.”


     작년 은평라디오는 ‘막무가내, 라디오로 놀아보기’라는 이름의 공동체 라디오 체험 프로그램과 ‘우리마을 기획PD, 미디어 실타래를 엮어봅시다’라는 이름의 본격 마을미디어 기획PD 교육 프로그램, 그리고 ‘듣는 라디오를 나누는 라디오로 함께 만들기’라는 이름의 디자인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특히 맨 마지막의 교육 프로그램은 마을미디어나 마을공동체를 홍보하는 데 필요한 웹자보 제작을 배우는 과정이었다. 하지만 쉽지 않았다. 예상했던 것보다 프로그램을 신청한 사람들이 전문가용에 가까운 컴퓨터 프로그램, ‘포토샵’을 잘 다루지 못했기 때문이다.


    “결국 원래 생각했던 수준보다 많이 낮춰 진행할 수밖에 없었죠. 예상을 잘못한 거예요.”

     경미 씨는 디자인 교육이 생각대로 잘 안 된 것을 무척이나 아쉬워했다.


     어려운 점은 교육 프로그램뿐만이 아니었다. 마을미디어 조직 자체를 꾸려나가는 것이 쉽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방송을 만드는 사람들이 반강제로 ‘재능기부’를 하는 것도 피하고 싶었다. 그러나 상근자를 기용하기엔 예산이 너무나도 부족했다.


    “그게 제일 큰 난관이었어요. 다행히 지원을 받게 돼서 이렇게 조직을 꾸려나가고 있는 거죠. 그래도 여전히 조직을 운영하는 게 가장 큰 고민이에요.”

     하지만 경미 씨는 그런 고민을 하고 있는 것 자체를 동네스튜디오가 진전하고 있다는 뜻이라고 보았다.


    “단순히 노는 것을 넘어 조직을 잘 만들기 위해 고민을 하는 방향으로 바뀌었으니까요.”

     마을 사람들의 프로그램 청취율 높이기에 대한 고민도 있었다. 대부분 팟캐스트 형태로 제작, 배포되는 마을라디오 특성상 컴퓨터나 스마트폰을 활용하는 세대 정도만 마을미디어를 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경미 씨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구상 중인 계획 하나를 밝혔다.


    “새벽이나 아침 시간대 버스에서 마을 어르신들의 신청곡이나 사연을 들려주는 프로그램을 만들면 어떨까 생각하고 있어요. 솔직히 은평은 서울 변두리에 있잖아요. 그러다보니 버스 차고지가 많은데, 이른 시간에 버스를 타고 출근하시는 어르신들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나 노래를 넣으면 괜찮을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최근에 들은 이야기로는 경비 노동자분들이 우리 방송에 관심이 많다고 하더라고요. 압구정 같은 곳에서 일하시며 겪은 온갖 에피소드를 실어도 좋을 것 같고. (웃음) 아니면 가재을라듸오에서 만드는 ‘줌인서대문’ 같이 마을과 지역 사람들 이야기를 많이 담고 싶어요. 역량이 많지 않아 쉽진 않지만, 이러한 방송이 분명 필요하니까요.”


     운영담당자를 맡은 두 신입PD도 각자 고민을 가지고 있었다. 지엽 씨는 동네스튜디오가 앞으로 어떤 방송을 만들지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작년에 방송을 만드는 모습을 보면서 어떤 이야기를 할지, 어떻게 방송을 만들지 고민하며 정말 바쁘시구나 싶었어요. 이렇게 노력하는 만큼 만드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각자 입장이 조응해야 하고 그럴 수 있는 프로그램이 많이 나와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아요.”


     혜미 씨는 올해부터 방송 제작에 참여한 것 자체를 의미있게 여기면서도 걱정스러워 했다.

    “항상 고민 중이고, 지금도 고민 중이에요. 이 일을 하겠다고 진지하게 결정한 순간부터 어떻게 하면 다른 사람들이 불편하지 않도록 잘 할 수 있을까를 계속 고민하고 있어요.”


     이 둘의 대답을 들은 경미 씨는 살짝 웃으면서 이렇게 답했다.

    “그런 고민들을 나도 계속 해왔는데 여전히 풀기 쉽지 않은 숙제에요. 내가 풀지 못한 숙제, 둘이 잘 해결해줬으면 좋겠어요.”



    ▲ 동네스튜디오가 올해 새롭게 마련한 스튜디오 한편에 놓인 보드에 쓰인 문구.

    ‘맛있은 라디오’를 만들겠다는 이들의 목표가 정말 맛있어 보인다.



    동네스튜디오와 은평라디오, 한 걸음 더 나아가기 위해 준비하다


     이렇게 지금까지 방송을 만들면서 다양한 감정을 느꼈던 이들, 과연 올해는 어떤 방송을 준비하고 있을까. 경미 씨는 교육 프로그램과 방송 제작 과정을 다지는 것에 만전을 기하겠다고 밝혔다.

    “올해는 ‘우리마을 인터뷰 교실’이라고 대담, 인터뷰 진행에 대해 심도 있는 교육을 하고 이야기를 나누며 콘텐츠를 확대할 예정이에요. 또한 프로그램 제작이나 회의 면에서도 보다 더 방송에 책임감을 갖기 위해 명확한 체계를 만들 거예요.”


     이 뿐만이 아니다. 동네스튜디오는 올해 공개방송도 준비 중이다. 아직 확실히 정해진 것은 없지만, 스튜디오를 벗어나 더 많은 사람들과 방송을 함께 하고 싶다고 했다.

    “이미 방송을 결산하는 자리에서 몇 번 공개방송을 해봤으니 잘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혜미 씨 역시 공개방송에 많은 기대를 하고 있었다.

    “은평구 내 축제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같이 라디오를 하면 참 좋지 않겠어요?”


     한편 지엽 씨는 은평라디오에 더 다양한 사람들이 참여하기를 바라고 있었다.

    “지금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는 이 곳, ‘작공’처럼 은평구 내에 다채로운 거점이 늘어나고 있어요. 지금까지의 방송은 어른들 위주였지만 이제는 청소년 등 다양한 주체가 방송에 참여하고, 정기적으로 방송을 만들었으면 좋겠어요.”


     동네스튜디오와 은평라디오에 대해 다양한 이야기를 듣다보니 어느새 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아쉽지만 헤어져야 할 시간, 3인조에게 은평라디오를 만들고, 듣는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물었다. 경미 씨는 자신이 회사를 그만두고 마을을 둘러봤을 때의 경험을 말해주었다.


    “그전까지는 몰랐는데 회사를 그만두고 둘러보니 마을에 참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었어요. 회사다닐 때 마을은 그저 잠을 자고 출근을 준비하는 장소였는데 말이죠. 그 때 불광천에 나가서 많은 사람들을 보고 나서야 이런 사실을 알게 된 거에요. 물론 그저 낭만적으로만 볼 수는 없어요. 마을은 낭만 이전에 생활의 공간이 되어야 하는데, 아직 그렇지는 못한 것 같아요. 하지만 그래도 나 혼자만이 아니라 다 같이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것에 대한 감회가 들어요. 또한 방송을 만들면서 마을에 더 관심을 가지고, 제 자신을 다시 살펴보고 공동체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할 수 있게 되었고요. 이전부터 마을에서 활동해 온 사람들에게 제가 배운 것을, 새롭게 들어온 사람들에게 주고 싶다는 의무감이 드네요.”


     다른 두 사람 역시 경미 씨에 비해 짧지만 진심이 담긴 말을 들려줬다.


    “많은 사람들이 라디오를 들었으면 좋겠어요.” - 혜미

    “우리가 재미있게 만들고 있으니, 방송도 재미있게 나올 수 있다고 봐요. 많이 들어주시길 바랍니다.” - 지엽


     인터뷰를 마치고 이들은 동네스튜디오가 새롭게 구한 녹음 장소를 소개시켜주었다. 원래는 은평구청 내 스튜디오에서 방송을 했는데, 관공서가 오후 6시면 문을 닫다보니 직장인들이 참여하기 어려워 새로운 장소를 구할 수밖에 없었다. 고심 끝에 자율성을 많이 보장받을 수 있는 작지만 알찬 스튜디오를 구하게 되었고, 그곳에서 올해 어떤 작품을 만들어낼지 고민하고 있었다. 과연 올해 동네스튜디오에서는 어떤 방송을 만들고, 어떤 교육을 하게 될까. 조만간 보여줄 이들의 방송과 교육이 무척이나 기대된다. □




    ▲ 아직은 정리가 덜 된 새 스튜디오와 동네스튜디오 사람들.

    환한 웃음 만큼 2015년 새롭게 준비할 방송과 교육이 잘 꾸려나가길.



    * 2015 은미모 활동 영상 (제작 : 동네스튜디오)





    [필자소개] 성상민

     지금은 사라진 만화언론 [만]에 2005년 얼떨결에 객원필진으로 데뷔해 한 10년 이상 팔자에도 없을 줄 알았던 글쓰기를 업으로 삼고 있는 사람. 빨리 졸업하려고 다짐했던 경희대학교 사회학과는 2010년 입학한 이래 졸업 학점은 아직 한참 많이도 남았지만 이젠 뭐 언젠간 졸업하겠거니 하고 만다. 지금은 [ACT!]와 [미디어스]를 중심으로 만화, 영화, 미디어 등 각종 문화에 관련된 글을 줄창 쓰고 있다.


    Posted by 마중 서울마을미디어지원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