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인터뷰

[11,12월_인터뷰] 마을에서 ‘라디오’를 한다는 것

by 공동체미디어 2014. 12. 22.

 

 

마을에서 '라디오'를 한다는 것

- 가재울라듸오 장수정, 황호완 인터뷰

 

이세린(마중 편집위원, 구로FM) 

 

 처음 가재울라듸오라는 이름을 들었을 땐, 가재울이 도대체 어딘가 싶었다. 알고 보니 가재울은 서대문구의 서쪽 끝, 마포구와 맞닿아있는 어딘가의 지명이란다. 동네 사람들만 아는 뒷산처럼 참 정다운 이름이다. 11월의 초입, 슬슬 날씨가 추워지기 시작하던 때쯤 바로 그 가재울라듸오를 직접 가보게 되었다. 마을미디어 청년활동가 양성과정인 ‘마을미디어의 재구성’에서 실태조사팀을 함께하고 있는 청년 셋과 함께였다. 다른 이유로 뭉쳤지만, 우리는 모두 앞으로 무슨 일을 하면서 살지를 고민하는 한 편 마을미디어가 무엇인지 궁금해 하는 청년이었다. 그래서 실태조사를 핑계 삼아 좀 더 깊은 이야기를 인터뷰로 나누게 되었다.

 

 가재울라듸오는 작년 7월 교육을 시작해 11월에 개국한 서대문구의 공동체라디오 방송국이다. 올해 5월에는 가재울문화사랑방이 문을 열면서 번듯한 라디오 스튜디오도 마련했다. 현재 서대문구의 다양한 뉴스와 마을 소식을 전하는 <Zoom in 서대문>, 서대문의 특정 이슈를 깊게 파고들어보는 <서대문 이슈>, 파킨슨병 환우들이 개국 때부터 진행해 온 <라디오파킨슨사랑방> 등이 꾸준히 송출되고 있다. 10여명의 운영위원과 상근자 두 명이 함께 방송국을 만들어가고 있다. 우리는 상근자인 장수정 씨와 황호완 씨를 인터뷰했다.

 

 

 

 먼저 인터뷰한 분은 나비라는 이름으로 더 익숙한 장수정 씨다. 수정 씨는 가재울라듸오가 스튜디오를 두고 있는 가재울문화사랑방의 대표이기도 하다. 우리가 가장 궁금했던 것은 “왜 마을라디오 일을 하게 되었나요?”였다. 전공이 미디어 쪽인 것도 아니고, 마을 라디오라는 게 아직 널리 알려지거나 안정적인 돈을 벌 수 있는 일도 아님에도 이 일을 선택한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무엇일까? 마을미디어 일을 하는 누구에게나 늘 묻게 되는 질문인 것 같다.

 

 수정 씨는 처음 미디어활동을 시작했을 때부터 이야기를 해주었다. 학부생 시절, 그녀는 용산, 두물머리, 대추리 같은 ‘현장’에 자주 연대했었다. 그 중 대추리는 평택 미군기지가 들어설 예정이었던 곳. 당시 주민들이 기지 설립을 반대하며 싸우고 있었지만, 주류 미디어에선 주민들의 입장을 전해주지 않았다. 이런 상황이 너무 답답하게 느껴졌던 그녀는 직접 뉴스를 만들기 시작했다.

 

 “친구들이랑 같이 (대추리로) 농활을 갔는데, 학생 때니까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었어요. 뭘 할 수 있지? 라고 생각하다가 우리가 대추리의 진짜 모습을 알릴 수 있는 뭔가를 해보자, 해서 뉴스를 만들게 됐어요. 카메라를 다룰 줄 아는 사람도 없었는데 다 배워가면서 만들었어요. 촬영하는 것도 배우고, 편집 하는 것도 배우고, 이러면서 만들어서 한 10개월 정도 방송을 했거든요. 매일 하나씩 만들었어요. 미친 거죠. (웃음) 일주일에 다섯 번, 10분씩 방송을 했어요. 그게 미디어활동의 시작이었죠.”

 

 수정 씨의 ‘미디어 활동’은 이렇게 현장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이후 미디어 교육을 하거나 현장 활동을 지원하고, 전국미디어운동네트워크라는 큰 단체에서 간사로 일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내 또 고민이 시작되었다. 이런 활동들도 물론 의미 있지만, 있다. 초등학교 때부터 자라왔던 삶의 터전에서 무언가를 해보고 싶었다. 여기에 딱 맞는 게 바로 마을미디어였다.

 

 그런데 수정 씨가 마을에서 선택한 미디어는 영상이 아니라 라디오였다. 여태까지 영상미디어로 활동을 해온 그녀가 마을에선 왜 라디오를 하게 되었을까? 이유는 어찌 보면 간단했다. 라디오가 만들기 더 쉽기 때문이다. 흔히 ‘영상 작업은 노가다’라는 말을 하곤 한다. 처음 카메라를 잡아 본 사람들이 첫 영상을 만들고 이내 지치게 되는 것이 안타까웠다고 그녀는 말하기도 했다.

 

 “영상을 만드는 게 굉장히 어려운 일이잖아요. 돈도 많이 들고, 시간도 많이 들고, 그런 과정이예요. 영상도 효과적인 면이 있지만, 마을에서 일상적으로 이걸 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저는 좀 있어요. 오히려 라디오는 굉장히 쉽고, 후반 작업이 많지도 않잖아요. 얘기한 걸 약간 다듬는 정도. 그렇게 하다 보니까 마을미디어에 더 맞는 방식은 라디오가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수정 씨는 주민들에게 라디오를 권하고 있기도 하지만, 직접 <Zoom in 서대문>을 진행하고 있기도 하다. <Zoom in 서대문>은 일주일에 두 번 진행되는 서대문구 소식방송이다. 뉴스와 마을소식을 전하고, 서대문에서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과 인터뷰를 진행한다. 전국적인 차원의 큰 이야기는 아니지만 여전히 우리 삶에 중요한 문제들이 여기서 다루어진다. <Zoom in 서대문>은 11월 1일부터 주파수를 가진 마포FM(100.7MHz)에 편성되어 마포와 서대문구 일부 지역에서 토요일 16시~18시(본방), 일요일 16시~18시에 <Zoom in 서대문>을 만나볼 수 있다.

 

 

▲ 가재울문화사랑방의 가재울라듸오 스튜디오에서 <청년 다락방> 프로그램을 녹음하는 모습.

(출처 : 가재울라듸오 페이스북 페이지)

 

 고민 끝에 선택한 마을미디어 활동에 만족하고 있느냐는 우리의 질문에 수정 씨는 그렇다고 말했다. 미디어 활동이 적성에 맞고, 라디오가 아니었으면 만나지 못했을 사람들을 만나기 되었기 때문에. 하지만 지금은 일이 너무 많을 때가 있고, 그럴 때면 힘에 부친다고 한다.

 

 “일이 많은데, 제가 처리하는 건 거의 실무적인 자잘한 일들이거든요. 은행 가고, 문서 만들고, 기획서 쓰고 막 이런 거. 사람을 만나는 건 거의 회의밖에 없어요. 네트워크를 하려면 사람을 많이 만나고 관계를 만들고 그래야 하는데, 그런 걸 많이 못하는 게 아쉬운 것 같아요.”

 

 마을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마을 사람들과의 관계 맺기가 중요하지만, 그를 위한 여건이 마련되지 못하고 있는 상황. 오는 2015년에는 서대문 내에서의 네트워크를 더욱 단단히 하는 한편, 전문적으로 취재해야 하는 내용도 함께 전하고 싶다고 수정 씨는 말했다. 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함께 일할 청년 활동가가 두 명 정도는 더 필요하다. 이를 위해 연속성을 보장하는 안정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끝으로 수정 씨와의 인터뷰는 마무리되었다.

 

 이어서 황호완 씨와의 인터뷰가 진행되었다. 사실 황호완 씨를 처음 알게 된 것은 가재울라듸오가 아니라 관악FM에서였다. 2009년 3월부터 관악FM에서 일했던 그는 새로운 출발을 해보고자 가재울라듸오로 오게 되었다고 한다. 관악FM 시절보다 자유롭게 새로운 시도들을 해볼 수 있게 되어 좋다면서도 ‘월급쟁이’일 때보다 ‘자영업자’인 지금이 더 힘들다는 그는 인터뷰 중간중간 농담을 던지며 우리를 웃게 했다.

 

 인터뷰를 진행하는 우리는 ‘마을미디어’라는 하나의 단어로 모인 이들이었지만, 사실 황호완 씨는 처음부터 마을미디어나 공동체라디오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냥 지역에서 무언가를 해보고 싶었고, 그래서 지역 공부방에서 교사로 일하다 우연히 공채를 보고 관악FM에 들어가게 된 것이다. 처음에는 사무직 일인 줄 알고 들어갔는데, 일하면서 기자도 하게 되고, 교육도 하게 되고, PD도 하게 되었다고. 그렇게 5년 3개월을 보내니 공동체라디오 일을 전문적으로 하게 된 것이다.

 

 그는 지금 일하고 있는 가재울문화사랑방을 미디어센터와 공동체미디어가 만나는 공간으로 기획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말하자면 ‘미디어판 민중의집’인 것이다.

 

 “우리나라 같은 경우 미디어센터는 미디어센터, 공동체미디어는 공동체미디어로 분화되어 있는데, 캐나다랄지 외국 사례를 보면 둘이 같이 붙어 있어요. 그래서 (가재울문화사랑방을 기획할 때) 라디오라는 플랫폼과 교육을 할 수 있는 공간을 같이 만들면 좋겠다는 고민을 했죠.”
 
 그동안 수동적으로 미디어를 받아들여 왔던 사람들에게 라디오를 만들어보자고 할 때, 어쩔 수 없는 심리적인 장벽을 느낀다고 했다. 이런 장벽을 무너뜨리는 데 교육 과정은 정말 중요하다. 때문에 교육을 진행하기 위해 안정적으로 이용 가능한 스튜디오와 교육 공간이 필요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기획에 좀 더 살이 붙은 것이 현재 가재울문화사랑방의 모습이다. 공간이 조금 더 넓게 마련되면서 라디오와 관련한 일들 뿐 아니라 공동체 상영이나 동아리 모임, 그 외 강의들도 진행되고 있다. 고민하던 형태를 실제로 구현한 것은 이 공간의 장점이지만, 보다 사이즈가 커지면서 유지에 대한 부담이 늘어난 것은 아쉽다고 황호완 씨는 말했다.

 

 그 다음으로 질문한 것은 마을미디어를 하고자 하는 청년에 대한 이야기였다. 오랜 시간 공동체라디오에서 일해 온 그는 스스로가 청년이기도 하지만, 공동체라디오에서 무언가를 하고 싶어 하는 청년들을 오래 지켜봐온 사람이기도 하다. 그가 공동체라디오 일을 시작하게 된 이유가 지역이었기 때문일까, 그는 미디어보다는 지역에 많은 방점을 놓고 있

었다.

 

 “마을‘미디어’이기 때문에 미디어를 알고 있다는 것은 장점이기는 한데, 미디어에 아무리 역량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와도 지역에 유의미한 결과물을 내기는 쉽지 않은 곳이 지역이기도 하거든요. 오히려 마을이나 지역에 관심 있는 분들이 오면 그 관심에 더해서 미디어를 배우면서 비전을 가지고 길게 갈 수 있는 것들이 있죠.”

 

 또 그는 어딘가에서 마을미디어 일을 시작하게 되면 2~3년 동안은 버텨보라고 당부했다. 청년에게 2~3년이란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님을 알지만, 어떤 일에 대해 평가하는데 그 정도의 시간은 필요하다는 것. 마을미디어의 바깥과 내부의 경계에 서있는 청년들에게 있어 실질적인 도움이 될 만한 조언이었다.

 

 

 

 

 사정상 시간차를 두고 진행되었던 장수정, 황호완 씨와의 인터뷰. 사실 두 사람은 한 직장에서 일하는 동료이자 활동을 통해 만난 부부이기도 하다. 두 사람은 마을미디어 일을 하는 청년활동가이기도 하고, 공동체라디오나 마을미디어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부족한 상황 속에서 그것을 알리는 데 항상 앞장서 온 선배들이기도 하다. 마을 라디오에 대해 알아 가면 알아갈수록 ‘왜 마을인가, 왜 라디오인가’같은 질문들이 떠오른다. 이날 두 시간 동안의 대화는 그 물음들에 지표가 되는 답들을 얻어가는 것이 아니었나 싶다.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