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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미디어 리뷰

[12월_리뷰] 오색빛깔 삶의 이미지를 담아내다: 구로FM 리뷰

by 공동체미디어 2014. 1. 13.

[서울마을미디어센터 뉴스레터 마중’ 2013.12.31]

 

 

 

오색빛깔 삶의 이미지를 담아내다

:구로FM 리뷰

 

성상민(만화평론가) @skyjets_

 

 

사람들은 구로를 어떤 동네로 생각하고 있을까. 누군가에게는 양귀자의 소설 비오는 날이면 가리봉동에 가야 한다의 동네로, 또 누군가에게는 회색빛의 공장들과 화려한 패션 아울렛이 함께 모여 있는 이색적인 동네의 이미지로 기억하고 있겠지만 한편으로는 한국 역사에 길이 남을 구로 동맹파업을 비롯해 최근에도 기륭전자 해고 복직 투쟁이 벌어졌던 노동자들의 삶이 담겨있는 동네이기도 하다. 이렇게 구로는 다양한 삶이 존재하는 복합적인 공간이다.

 

그런 동네인 만큼 20133월에서야 마을미디어 구로FM’이 선을 보인 것은 어쩌면 너무 늦은 걸지도 모르겠다. 이미 예전부터 마을미디어가 자리 잡은 마포나 관악, 도봉 등의 동네만큼이나 많은 이야기들이 샘솟을 수 있는 동네가 구로인데 이제야 이들의 목소리를 조금씩 담을 수 있는 매체가 생겼기 때문이다. 비록 ‘FM’이라는 이름을 단 방송임에도 불구하고 아직은 라디오로 들을 수 없는 방송이지만, 그에 상관없이 구로FM은 최대한 많은 구로 시민들의 삶과 문화를 전달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다.

 

지역 이슈부터 문화, 교육까지 다양하고 알차게

 

지난 11월부터 방송을 시작한 <홍준호의 구로이슈>는 이름에서 드러난 것처럼 시사 프로그램이다. 하지만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시사 프로그램의 딱딱함을 이 방송에서는 찾아보기 어렵다. 철도 파업과 같이 어려울 수 있는 사안에 대해서는 최대한 다른 사람들이 잘 이해할 수 있도록 편안하게 전달하고, 지역 내 협동조합 설립과 같이 구로 지역 주민들에게 생긴 작은 이슈까지 빠짐없이 알려주는 그야말로 지역 밀착형시사 프로그램이다.

 

하지만 살다보면 꼭 중대한 소식 말고도 우리 지역에 어떤 사람들이 살고 어떤 일을 하는지 궁금할 때가 있는 법. 그럴 때는 <두근두근 소개팅>이 그런 고민을 해결해 줄 것이다. 동네 청년, 만화방 주인과 같이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람들부터 구의원, 문화 기획자, 청소년 상담사와 같이 전문적인 영역에서 활동하는 사람들까지 가지각색의 사람들을 직접 만나서 다채로운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듣다 보면 어느 덧 자신이 사는 동네가 조금씩 다르게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또한 가끔씩은 무언가를 배우고 싶은 욕구가 강하게 들 때도 있다. 아직 단 하나의 프로그램 밖에는 없지만 <라디오 서당> 같은 프로그램이 있는 것을 보면 앞으로 구로FM에서 어떤 교양 프로그램이 나올지 기대가 되지 않을 수가 없다. 매 화마다 하나의 한문 구절에 대해서 배우는 프로그램은 단순히 한문을 가르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글에 담긴 내용을 현실과 엮어 전달해 더 깊게 생각하게 만든다. 그렇다고 한문 설명도 대충 넘어가지 않으니 이거야 말로 일석이조가 아닐까.

 

 

 구로FM 개국방송

 

게다가 구로FM은 쉽게 소외되기 쉬운 영역에 대해서도 놓치지 않는다. 최근 방송을 시작한 <실버문화카페>는 방송에서도 점점 설자리를 잃어가는 노인 문화를 조망하는 프로그램이다. 비슷한 시기에 첫 번째 시즌이 끝나 아쉬운 <만화 속으로>는 많이 읽혀지지만 정작 그 자체를 다루는 일이 극히 적은 만화에 대한 한국의 몇 안 되는 방송 중 하나다. 만화방 주인이 진행하는 이 방송은 매 화마다 주인이 직접 고른 추천 만화를 소개하며 만화 독자들의 욕구를 충족시켜 준다.

 

그리고 다음 화가 너무 오랫동안 나오지 않아서 기다리는 시청자를 지치게 만들지만, <만화 속으로> 만큼이나 한국에서 매우 희소성이 강한 프로그램이 하나 더 있다. 아마도 한국에서 거의 유일하게 노동자에 대해 다루는 방송인 <우리 동네 노동자>이다. 학교 비정규직부터 요새 한창 이슈가 되고 있는 철도 노동자, 케이블 비정규직 노동자 등등 우리 주변에 있지만 좀처럼 관심을 두지 못하는 노동자의 삶과 현실에 대해서 다룬다. 구로 민중의 집의 대표 강상구 씨의 진행은 노동자들이 진솔하게 전달하는 삶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길잡이 역할을 한다. 그밖에도 다양한 삶과 시선을 다루는 프로그램들이 구로FM에 존재하고,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 생기고 있다.

 

구로FM, 지금도 앞으로도 쭉

 

이렇게 다채로운 방송을 진행하고 만드는 사람들은 특별한 이들이 아니다. 방송을 원활하게 진행하기 위해 간단하게 교육을 받은 것을 제외하면 다들 구로에서 평범하게 살고 있는 보통 사람들이다. 변변한 공간도 없고 상근자도 없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 계속 프로그램을 만들고 새로운 프로그램이 나올 수 있는 요인은 아이러니하게도 그래서 일지도 모른다. 각자 다른 색의 삶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사는 동네가 있지만 거대 방송은 그들에 대해서는 다루지 않기에. 그래서 우리의 이야기를 담을 수 있는 방송을 듣고 싶기에 손수 시간을 들여 직접 방송을 만드는 것이리라.

 

아직 구로FM은 채 한 살도 먹지 않았다. 앞으로 구로FM이 어떻게 굴러가고 어떤 모습으로 자라날지 아무도 모를 것이다. 때로는 다른 마을미디어가 그랬던 것처럼 고난과 위기에 처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구로FM이 더 지역 주민들의 다양한 소리를 담아내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방송에 대한 관심이 늘어난다면 구로FM은 더욱 지역에 튼튼히 뿌리를 내리고 마을 사람들이 원하는 모습대로 무럭무럭 자라날 것이다. 그러니 만약 구로에 사는 사람이라면 한 번 즈음 인터넷에 접속해 구로FM을 들어보는 것은 어떨까. 약간은 투박할지라도 말이다. 그렇게 관심을 주기 시작한다면 언젠가 컴퓨터나 스마트폰이 아닌 라디오로 구로FM을 정겹게 들을 수 있는 날이 올 수 있을 것이다.

 

 

▲ 구로FM 라디오 부스

 

구로FMhttp://gurofm.net/에서 들을 수 있으며, 페이스북 페이지 http://www.facebook.com/gurofm 를 통해서도 소식을 접하고 의견을 전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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