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라디오로 던지는 질문, "당신은 장애를 아는가"
- 노들장애인야학 인터뷰
이세린 (구로FM)
"당신은 장애를 아는가(당.장.아)"라는 제목. 장애인권 문제에 관심을 가져본 이라면 한번 쯤 들어봤을 법한 책 제목이다. 독자에게 던지는 질문으로 제목을 정한 이 책은, 두께는 얇지만 가볍지 않은 화두들을 던지는 장애인권 입문서이다. 그런데 여기, 같은 제목을 사용하고 있는 팟캐스트 라디오가 있다. 바로 노들야학이 만드는 팟캐스트 라디오이다. 이미 알고 계시는 분들이 많겠지만, 노들장애인야학은 1993년 설립되어 장애인을 대상으로 자립을 위한 교육을 진행하고 장애인권에 대한 사회적 이슈에 참여해온 단체이다. 그런 노들야학이 팟캐스트를? 미처 모르셨던 분들도 있을 듯 하다. 이런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 방송에 참여하고 계시는 노들야학의 배승천 씨와 정민구 씨를 인터뷰했다.
- 자기 소개를 부탁드린다. 팟캐스트를 비롯해 노들야학에서 어떤 역할을 맡고 계시는지도 궁금하다.
정민구 (이하 '정') : 노들야학 교사를 하고 있고, 맡고 있는 업무는 다양한데, 주로 하는 일은 장애인 인권 교육 사업과 마을미디어 사업, ‘노들바람’ 편집위원회 등이다.
배승천 (이하 '배') : 노들야학에는 학생회와 교사회가 있는데, 그 중 교사회 대표이다. 교사와 학생 분들이 학교에 잘 나올 수 있도록 하는 역할을 한다. 하는 일이 (정민구 씨와) 많이 겹친다.
정 : 사실 교사 대표를 하다 보면 자잘한 일들이 굉장히 많다. 안 나오는 학생분들 면담도 해야 하고, 돌아오도록 설득도 하고. 교사가 휴직하려고 하면 못하게 막기도 하고.
배 : 안 막는데. (웃음)
▲ 지난 10월 17일 있었던 '2014 노란들판의 꿈' 행사에 열린 '당.장.아' 부스
- 이렇게 많은 일들을 하고 계시는데 어떻게 마을미디어 사업까지 하게 되셨나.
정 : 사실 마을미디어 사업으로 지원받기 전에 이미 준비방송을 시작했었다. 2013년에 ‘듣거나 말거나 노들바람’이라는 이름으로 10회간 방송을 내보냈고, 그 때부터 승천과 함께했다. 그러던 중 우연찮게 마을미디어 사업이 있다는 것을 알게 돼서 지원을 받게 된 거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잘 만들어가는 동네가 대학로가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있었고, 이런 이야기를 다가가기 편하게 하기에는 팟캐스트가 좋을 것 같았다.
하지만 이 공간의 특성 상 그런 목표를 달성하기가 어려운 것 같다. 주거 공간이 없지는 않지만 유동인구가 훨씬 많은 지역이라서. 그래도 노력은 하고 있다. 예를 들면 근처에 이음책방이라고 있는데, 거기 사장님이 우연찮게 저희 방송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런 곳에 내가 빠질 수 없다”며 초대해달라고 해주셔서 다음번에 녹음을 같이 하기로 하고 스케줄을 잡고 있다. 아직은 지역방송으로서 자리매김하고 있다고는 보기 어렵지만, 이렇게 조금씩 조금씩 같이 만들어나가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접하는 매스미디어에서 장애와 관련된 이야기를 접하기는 쉽지 않다. 설령 접할 수 있더라도 그 내용은 깊이나 방향 면에서 여전히 편협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상황에서 노들야학이 만드는 팟캐스트는 참 귀한 미디어다. 한편으로, 최근 몇 년 사이 각광받게 된 '마을공동체‘에는 사회적 소수자들의 자리가 없다는 비판이 있어 왔다. 장애인을 비롯한 소수자와 마을미디어의 만남은 그래서 꼭 필요한 것이기도 하다. ‘장애’라는 주제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물론 ‘대학로’라는 지역에서 살아가는 사람도 함께 듣는 방송을 만들겠다는 도전은, 어려운 것이지만 그럼에도 설레는 것이 아닐 수 없다.
- ‘당신은 장애를 아는가(당.장.아)’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설명해 달라.
배 : 방송은 격주 정도로 나가고 있다. 다양한 프로그램을 돌아가며 만드는 형태다. 첫 번째 프로그램은 ‘장판 핫이슈’. ‘비마이너’라는 장애인 언론사가 있는데, 녹음 당시 장애 관련 핫이슈가 담긴 기사를 기자님이 가지고 오면 거기에 대해 함께 이야기한다. 두 번째는 ‘장애 읽기’라고 해서 장애이슈와 관련된 책이나 영화를 지정해서 소개도 하고 함께 이야기도 하는 프로그램이다. 세 번째는 ‘욱하는 여자’. 장애인 당사자가 겪는 차별의 상황을 극화해서 만드는 프로그램이다. 당사자분들의 사연과 연기로 만들어지고 있다. 라디오 시트콤 같은 짧은 극 다음에 그 상황에 대한 이야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우동우동’은 마을미디어인데 지역성이 두드러지지 않은 것 같아서 지역성을 찾아보자는 의미에서 만들어졌다. 지역의 주제를 가지고 찾아가서 이야기하는 코너다. 예를 들어 노들야학 뒤편에 있는 장수마을에 대해 다룬 적이 있다. 일종의 달동네인데, 재개발 문제를 공동체가 잘 해결해서 살고 있는 동네다. 그 마을에 대해서 녹음실에서 이야기도 나누고, 찾아가서 현장 녹음도 진행했다.
▲ 질문에 열심히 답해주시는 배승천 씨
- 라디오를 만들다보면 내용에 대해서 고민되는 지점들도 있을 것 같다.
배 : 내용의 깊이에 대한 고민이 있다. 장애인의 삶이 더 나아져야 한다는데 이미 동의하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는 것과, 장애인에 대한 얘기를 처음 들어보는 분들과 이야기하는 것과의 간극이 좀 있어서. 예를 들어 활동보조인과 장애인과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가 여기 해당될 것 같다. 제도적으로는 뭔가 되고 있지만, 만들어진지 이제 막 몇 년 된 제도라 장애인과 활동보조가 어떻게 함께 지내야 하는지에 대한 방법론은 아직 부족한 상황이다. 저희는 이런 문제에 대해서 의견을 나누고 싶다. 그런데 이런 문제에 대한 내용이 장애 문제에 전혀 관심이 없었던 사람이 듣기에는 너무 성급한 내용일 수 있다는 것이다. 너무 자세하고 복잡한 이야기를 듣다가 지치거나 “에이, 그냥 이런 제도 없어져야 되겠다”는 식으로 반응할까봐 걱정이 된다.
- 녹음 공간은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정 : 노들야학이 있는 건물 6층에 민중가요를 하시는 ‘일과 노래’라는 분들이 녹음실 겸 작업실로 쓰고 계시는 공간이 있다. 거기에 녹음시설이나 장비들이 다 돼 있어 임대해서 사용하고 있다.
배 : 저희 입장에서는 좋다. 휠체어가 들어갈 수 있는 녹음실이 거의 없으니까. 이런 상황에서 우리와 굉장히 가까운 곳에 있는 이런 공간을 빌릴 수 있어 좋다.
- 녹음실에 휠체어가 들어올 수 있어야 한다는 걸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정말 중요한 문제인데…….
정 : 다른 공간들도 마찬가지다. 대학로에도 장애인 접근이 되는 소극장이 제가 아는 바로는 없고, 아르코 예술극장 같이 큰 대형 극장 정도가 휠체어 접근이 가능할 거다. 밥집이나 술집도 마찬가지고. 그래서 매번 뒤풀이할 때도 가는 곳들만 주로 가게 된다. 휠체어 접근이 가능한 곳이 제한적이니까. 이런 주제들을 방송에서도 많이 다루고 있다. 예를 들면 욱녀(욱하는 여자)에서 장애인 이동권과 관련해서 욱하는 상황을 상황극으로 연출해서 녹음했었다.
6월부터 방송을 시작해 벌써 10회차를 넘긴 ‘당.장.아’. 형식 면에서 장애 이슈, 문화 컨텐츠, 극을 넘나드는 풍부한 구성이 돋보였다. 한편 마을미디어들을 인터뷰하면서 비슷한 고민들을 만났는데, '당.장.아‘의 고민은 조금 새로웠다. 지역 주민에게 어떻게 다가갈 것인가, 녹음 공간은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 같은 것들은 마을미디어 전체가 공유하는 질문이지만, ’어려운 주제로‘ 주민에게 다가가는 것과 ’휠체어가 들어갈 수 있는‘ 공간에 대한 고민은 분명 다른 고민과 결의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문득, 지금 활동하는 마을미디어들도 “당신은 장애를 아는가”라는 물음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용하는 라디오 스튜디오에 과연 휠체어가 들어갈 수 있을까? 이런 고민에 대해 두 분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종종 사용하던 ‘누구나 함께할 수 있는 라디오 방송국’이라는 슬로건이 더욱 무겁게 다가오게 되었다.
- 분위기를 바꿔서, 방송을 하면서 즐거웠던 순간이 있다면 언제인가.
배 : 다양한 사람들과 다양한 이야기를 나눈다는 것이 즐거운 것 같다. 장애읽기 프로그램 진행할 때 정신장애 영역을 다룬 작품을 쭉 이야기한 적이 있다. 그 때 정신장애에 관심이 많으신 당사자 분과 당사자와 함께 살고 계신 분 등이 오셨는데, 미처 알지 못했던 다양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서 흥미롭고 재미있었다.
정 : 전혀 다른 자리에서 제 소개도 안 했는데 ‘혹시 팟캐스트 녹음하지 않느냐’고 물어 오시는 분들도 있었다. 방송을 들었다면서. 또 어떤 시각장애 당사자 분을 만났는데, 시각장애가 있으시니까 귀로 듣는 것을 좋아하실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 저희 방송을 추천해드린 적이 있다. 그 분을 몇 주 후에 다시 만났을 때 굉장히 재미있게 듣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 그 때 정말 뿌듯했다.
- 이야기를 듣고 보니, 시각장애인 분들에게는 라디오가 더 특별한 의미가 될 수도 있겠다.
배 : 저희가 작년에 준비방송으로 팟캐스트를 처음 시작할 때는 월간 ‘노들바람’의 한 꼭지를 읽어드리고, 그 주제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방식이었다. 저희 학교 다니는 분들 중 많은 수가 글씨를 읽기 어려워하시는데, 그런 분들에게도 노들바람에 실린 글을 들려드리고 싶다는 것이 그렇게 했던 이유 중에 큰 부분이었다. 지금은 라디오를 그렇게 진행하지 않지만, 다시 그것도 하면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정 : 노들야학에는 난독증이 있는 분들도 있고, 글을 모르시는 분들도 있는데, 책은 읽어보고 싶고 하니 녹음해줬으면 좋겠다고 학생 분들이 실제로 이야기를 하셨다. 올해 노들에서 나온 책이 두 권인데, 그 중 교장선생님이 쓰신 ‘지금이 나는 더 행복하다’라는 책을 쭉 읽어서 녹음하고 있기도 하다.
라디오라는 매체의 장점을 이야기할 때 주로 진입장벽이 낮다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해외 공동체라디오 사례를 얘기하며 문맹률이 높은 지역 사람들이 라디오로 소통한다는 예시를 흔히 들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는 우리와 별 관계없는 이야기라고 은연중에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마을라디오를 함께할 사람들로 시각장애인, 난독증을 가진 사람, 글을 배우지 못한 사람을 생각해본 적이 있을까. 그런 상상을 시작하게 되었을 때 마을라디오가 얼마나 풍부해질 수 있을까. ‘당.장.아’에 대한 질문으로 시작된 인터뷰가 마을미디어에 대한 새로운 고민으로 마무리되게 되었다. 장애 이슈에 관심이 있는 사람, 대학로 근처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뿐 아니라 마을미디어를 하고 있는 당신에게도 ‘당신은 장애를 아는가’를 함께 듣자고 말하고 싶다.
▲ 인터뷰를 마무리하고, 노들야학의 배승천 씨(좌)와 인터뷰를 진행한 이세린(우)
p.s 인터뷰는 팟캐스트 라디오를 위주로 진행되어 많이 다루지 못했지만, 노들야학은 이번에 라디오 뿐 아니라 영상 제작을 진행하고 있기도 하다. 활동보조인과 장애인 당사자의 이야기, 전동휠체어가 나오는 추격전 등을 담은 영상을 준비중이다. 촬영과 편집이 한창이라고 하니, 앞으로의 ‘당.장.아’와 함께 작품을 기대해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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