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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7월_인터뷰] 마을과 예술이 만나는 미디어 공간, '프로젝트 이리'를 엿보다

by 공동체미디어 2014. 7. 28.



마을과 예술이 만나는 미디어 공간,  '프로젝트 이리'를 엿보다


이은비(미디어를 공부하는 사람)



  마포구 상수동 당인리발전소 주변 골목을 거닐다 보면 책과 그림들이 가득히 쌓여있는 '이리(YRI)'라는 간판의 카페가 눈에 들어온다. 그러나 이 곳 '이리카페'는 단순히 커피와 술을 파는 공간이 아니다. 이리카페는 예술가, 지식인, 예술을 사랑하는 일반인들이 모여 사회, 문화관련 토론에서부터 잡담에 이르기까지 많은 대화를 나누는 공간이며, 때로는 재즈공연, 시낭송, 그림전시가 이루어지는 문화공간이기도 하다. 19세기 파리에서 예술인과 지식인들이 모여 대화를 나누던 '살롱(Salon)'의 분위기와 흡사한 아우라를 갖고 있는 이곳은, 10년 가까이 홍대의 예술 공간으로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그리고 최근 이 곳 이리에서는 '프로젝트 이리'라는 이름 아래, 잡지와 팟캐스트를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미디어 실험을 진행하고 있다. 평소, 이리카페에 앉아 이리 잡지를 탐독하던 필자에게 '프로젝트 이리'라는 미디어 실험은 강한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용기를 내어, 월간이리의 발행인 이훈보님에게 인터뷰를 요청했다.


 은비: 우선, 프로젝트 이리에 대한 짤막한 소개 부탁드릴게요.


 훈보: 안녕하세요, 마포구 홍대와 상수동을 중심으로 예술과 마을을 어우르기 위한 활동을 하고 있는 '프로젝트 이리'입니다. 프로젝트 이리는 현재 '월간이리'와 팟캐스트 '이리오너라'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월간이리의 경우는 2011년부터 현재까지 오프라인 잡지와 온라인 웹진을 통해 배포되고 있는 무크지이고요. '이리오너라'는 2014년 6월부터 홍대 주변의 마을 사람들과 함께 대화하기 위해 시작하는 팟캐스트 형태입니다.


  왜, 카페와 프로젝트 모두 '이리'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을까? 우선, 이리카페는 독일 소설가 헤르만 헤세의 <황야의 이리>에서 나오는 주인공의 캐릭터에 착안해 '이리'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래서인지 이리카페의 메뉴에는 위 소설 주인공인 해리할러(Harry haller)의 이미지를 형상화한 반인간/이리 그림이 그려져 있고, 티슈에도 이리 얼굴이 그려져 있다.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이리의 역사로 흘러갔다.




<이리카페 메뉴판을 장식하고 있는 그림>



 은비: 팟캐스트의 경우 최근에 시작한 것으로 알고 있고, 이리카페, 월간이리의 역사가 궁금해요. 특히, 예술가들의 잡지 월간이리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훈보: 원래 이리카페가 이 곳 말고, 산울림 소극장 근처에 위치해 있었어요. 그땐 연극배우, 시인, 화가 등 정말 다양한 문화예술인들이 많이 모였고, 가끔 공연이나 연극이 열리기도 했어요. 제가 여기서 직원으로 일하기 전에도 손님으로 이리에 자주 들렸어요.  어느 날 밤에 이리에 앉아 있다가 연극배우들이 시낭송을 하고 단편소설을 읽어주는 공연을 하는 걸 우연히 보게 되었어요. 관람하고 있는데, 너무 재미가 없는 거죠. '이 정도는 나도 하겠다'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웃음). 그래서 누구나 예술을 할 수 있는 잡지를 만들어보자는 생각에 즉흥적으로 시작하게 되었어요. 물론, 저는 그 전에도 인디잡지를 만들어 본 경험이 있고요. 그 경험들에 착안해 보완할 점들을 찾아 지금의 월간이리를 시작하게 되었어요. 월간이리의 기본적인 컨셉은 '누구나 예술을 하고 생각을 표현할 수 있는 그 시작점을 만들자'라는 거예요.


 은비: 지금 현재 월간이리는 표지부터 안에 내용까지 다른 인디잡지와는 다르게 남다른 점이 많은 것 같아요. 이 수묵화 같은 느낌의 표지부터, 안에 내용도 굉장히 다양하고요.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들이 실리는지, 그리고 어떤 분들이 월간이리 안에 글을 싣고 계시는지요?


 훈보: 우선, 표지 같은 경우는 화가 이주용님께서 그려주고 계시고요. 굳이 잡지가 수묵화처럼 흑백으로 나오는 이유는, 사실 모든 공동체미디어가 갖고 있는 문제점 중 하나인 예산 때문이에요. 사람들에게 이목을 끌기 위해서는 칼라로 인쇄되어서 나오는 게 가장 좋지만, 우리와 같은 작은 예산으로 운영하는 미디어들은 쉽지 않지요. 그래서 오프라인으로 발행되는 잡지는 흑백으로 발행되고요, 다만 인터넷상에서 볼 수 있는 웹진의 경우는 화려한 컬러들을 많이 사용하고 있어요. 그리고 월간이리에 글을 써주시는 분은 완전하게 열려있어요. 누구나 글을 쓸 수 있는 거죠. 연재의 경우는 3개월 이상은 쓸 수 없도록 규칙을 정했고요. 그 외에 매달 싣는 전통문화, 대중문화, 시, 그림 등은 정말 각계 다양한 사람들의 생각이나 솜씨를 반영한 거예요. 그리고 발행인이 제가 블로그나 다른 매체를 통해서 글을 보다가 '어, 이사람 이 쪽 분야로 뭘 좀 아네, 그림에 재주가 있네' 라고 생각되는 사람이 있으면, 제가 직접 섭외하기도 해요. 그래서 월간 이리의 페이지를 담당하는 사람들은 고등학생, 대학생부터 서울, 먼 지역에 사는 사람까지 다양하게 구성됩니다. 그리고 매 달마다 그 호의 커버, 주제가 따로 정해져 있지도 않고요.

 


    

 <출처: 월간이리/ http://postyri.blogspot.kr >

  


  월간이리 안의 내용들을 살펴보면, 잡지에 실리는 사람들의 언어와 그림들은 특별하지 않다. 보통 사람들의 삶에서 이루어지는 일, 사건, 단상, 감정들이 글과 그림으로 녹여졌고, 월간이리 라는 잡지를 통해 세상과 공유되고 있었다. 이와 같은 월간이리의 행보는 고급예술 및 대중문화를 전달하는 주류미디어의 힘에 비해서는 보잘 것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기존에 미디어를 평가하던 시각에서 벗어나 이 잡지를 보면, 월간이리는 지식인, 예술인의 영역으로 간주되던 예술의 층위를 한 단계 격하시킬 뿐 아니라, 보통 사람들이 예술 활동에 참여하고, 사회에 표현될 수 있는 기회들을 창출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최근 월간이리는 '이리오너라' 라는 팟캐스트와 함께 '프로젝트 이리'라는 새로운 미디어 실험을 모색 중에 있다. 이는 서울마을미디어지원센터의 지원 및 활동을 통해 기획, 운영된다.


 은비: 마을미디어 활동은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나요?


 훈보: 사실, 월간이리는 마을미디어와의 성격과는 조금 달라요. 왜냐면 마을미디어는 한 마을, 마포구, 상수동 같은 지리적 특성에 기점을 두고 있지만 저희는 온라인/오프라인을 통해 누구든지 저희 잡지에 콘텐츠를 실을 수 있거든요. 하지만 다양한 사람들이 목소리를 내고 글을 실을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한다는 것에 있어서는 분명히 마을미디어가 추구하는 바와 접점이 있지요. 그래서 마을미디어에 관심 갖고 계신 과거 필진 분께서 마을미디어와 함께 하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하셨고, 그 때 인연으로 계속해서 관심을 갖고 마을미디어 분들과 여러 가지를 나누고 있습니다. 그리고 올해부터는 마을미디어 원점의 성격에 맞추어서 팟캐스트 '이리오너라'가 기획되었고, 6월부터 시작되었어요. 


 은비: 그렇다면, 팟캐스트 이리오너라와 월간이리의 차이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훈보: 월간이리와 팟캐스트 이리오너라는 기본적으로 다른 매체에 다른 성향을 갖고 있습니다. 마을 미디어의 원점의 성격에는 ‘이리오너라’가 가까운 형태이고 발전형 형태는 월간이리가 모색 중이라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은비: 이리오너라가 홍대에서 예술인들이 모이는 이리카페라는 장소적 기반을 통해서 마을사람들과 예술이 융합할 수 있는 기회들을 만들고 있고, 월간이리는 조금 더 발전된 형태로서 지역적 기반을 넘어 다양한 사람들이 예술을 공유할 수 있는 창구, 이렇게 해석해도 될까요? (웃음). 그런데 월간이리가 지역의 예술가들 중심으로 이루어지다 보니 마을과 융합되는 부분은 잘 모르겠다는 혹자의 평이 있어요.


 훈보: 틀린 평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마을의 개념을 다르게 해석하는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오해나 갈등이라고 생각됩니다. 그 부분들은 계속 고민해 나가야 할 부분이고 필자들이 보다 풍부해 진다면 얼마든지 해결될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은비: 마을미디어 활동을 하면서 고민되거나 힘든 점이 있으신가요?


 훈보: 마을미디어가 갈 길에 장애물이 되지 않고 뒤에서 밀어주는 바람이 되고 싶습니다. 도움을 받고 있고 함께 활동을 진행하면서 많이 배우고 있어요. 처음에는 반신반의 하면서 들어왔지만 지금은 정말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은비: 앞으로, 이리 프로젝트에서 하고 싶은 일, 계획하는 일이 있다면요? 석관동에도 이리카페가 생겼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훈보: 우선, 월간이리에서는 의학, 무속과 같은 주제에 대해 한번 다루고 싶은데, 집필해 주실 분을 구하는 게 쉽지 않네요. 계속 가능한 분은 찾아봐야죠. 최근 이리카페가 석관동에도 생겼는데요, 석관동. 성북동 주변의 개발에 의한 불안정한 공간에 안정을 주기 위한 하나의 행동이라고 보시면 될 것 같아요. 저희 이리카페도 홍대의 치솟는 월세를 감당하지 못해 상수동으로 밀려난 케이스잖아요. 그리고 현재 저희 프로젝트 이리가 하는 것처럼 석관동에서도 마을 미디어 활동을 진행할 생각인데, 석관동 마을사람들과는 어떤 식으로 융화해 나갈지 고민하는 중이예요. 그리고 프로젝트 이리의 전체적인 측면에서는 보다 자유롭고 예술적이면서 시기하지 않는 것들을 많이 만들어내고 싶어요.   




<이리카페에서 진행된 인터뷰 모습>



  1시간 반의 인터뷰를 마치고, 앞으로 마을미디어를 통해 자주 만나자고 인사를 나눈 후, 상수동 이리카페에서 홍익대 정문 방향으로 길을 나섰다. 마침, 인터뷰를 나눈 날짜가 공휴일 전날이여서 그런지 이른 시간부터 홍대 주변 길에서는 젊음의 느낌이 강하게 밀려들어왔다. 곳곳에서 들리는 전자음악, 다양한 옷차림과 헤어스타일로 한껏 멋을 부린 청춘남녀들의 수다와 웃음, 해가 지기도 전에 이 거리에는 소비와 향락의 기운이 짙게 내리고 있었다. 이러한 홍대 앞 풍경에 대해 혹자는 '기(氣)는 사라지고, 끼만 남은 곳'이라 폄하하기도 하며, 또 다른 이는 '경쟁사회에 잠식당한 젊은이들의 욕망이 술과 고성으로 흩어지고 쓰레기만 뒹구는 텅 빈 공간'이라고 비판한다. 그러나 여전히 홍대 곳곳에서는 다양한 예술적 실험을 행하는 사람들의 상상력과 욕망의 흐름들이 존재하고 있었다. 물론, 현재 많은 예술가들은 홍대 앞 정문 지역을 짓누르는 도시문화의 논리에 밀려, 홍대 외곽 상수동, 망원동 주변을 배회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이들은 여전히 홍대를 찾으며, 함께 숨 쉴 수 있는 '이리'공간에 머물고 있었다. 그리고 이리는 홍대(마을)+예술+미디어라는 접점을 통해 콘크리트 마을 안에 작은 소통의 균열을 낼 수 있는 기회들을 마련하고 있었다. 이리 안에서 예술은 저 먼 곳에 있는 이데아도 아니었고, 예술가 역시 다른 사회적 지위를 갖는 인물이 아니었다. 이리는 홍대를 기점으로 다양한 사람들이 예술을 하고, 미디어를 통해 표현할 수 있는 기회들을 창출하면서 사회 내에 작은 공명을 만들고 있었다. 이리는 어떠한 새로운 미디어 실험들을 시작할까? 앞으로 이들의 행보가 더욱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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