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 미디어, 그리고 청년



    요르 (용산FM)



     나는 올해 한국 나이로 서른이 되었고 ‘마을 미디어 청년 활동가’라는 긴 호칭을 얻었다. 아주 늙어버린 기분이었는데 새삼스럽게 청년이라고 불리게 되니 처음에는 왠지 어색했다. 잉게보르크 바흐만의 말처럼 “서른에 접어들었다고 해서 어느 누구도 그를 보고 젊다고 부르는 것을 그치지는 않는다. 그러나 스스로를 젊다고 내세우는 것이 어색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어느덧 정신없이 5개월이 지났고, 이젠 어색함 없이 나 자신을 ‘저는 마을 미디어 청년 활동가입니다’라고 소개하고 있다. 그런데 나는 내게 주어진 호칭의 의미를 아직도 곱씹고 있다. 



    마을, 미디어, 청년. 


     여기저기 귀동냥을 하고 공부를 하면 할수록 이 단어들이 하나하나가 만만치 않고, 논쟁적이며, 쉽사리 해답이 나지 않는 문제를 품고 있음을 실감했기 때문이다. 복잡한 3차 방정식이 적힌 칠판 앞에 선 기분이랄까.



    1. ‘마을’이라는 질문


    솔직히 내게 마을은 사전 속 오래된 단어에 불과했다. 내가 나고 자란 곳은 마을 공동체라고 할 만한 것이 존재하지 않는 아파트였고, 성인이 되자 집은 휴식과 수면을 위한 공간이 되었다. 그래서 ‘마을 공동체’와 ‘주민’이라는 말이 낯설었다. 게다가 가끔은 이런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예컨대 마을 공동체에서 주민으로 호명되는 자는 누구이고 이방인으로 배제되는 자는 누구일까? 이주민은 주민일까? 성소수자는? 마을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은? 1인가구는? 쪽방에 사는 사람은? 노숙인은? 물론 이 질문에 대해 ‘너희는 주민이 아니다’라고 대답하는 사람도 있다. 성북구 마을사업에서 성소수자의 존재가 지워지는 것처럼 말이다.

    (참고 : 갈홍식, 「“성소수자는 마을에서 전시회도 못 하나? - 서울시, “성소수자 관련 전시회 마을공동체 사업 불가” 통보, 성소수자 전시 결정한 마을공동체 자율권 침해“ 」, 『비마이너』, 2015.06.16., http://beminor.com/news/view.html?section=1&category=4&no=8460


     그러나 나는 주민이라는 개념이 좀 더 급진적일 수 있다고 믿는다. 마을에 살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주민으로 대접받고 모두 환대받을 수 있는 권리를 주장할 수 있다고 말이다 그렇지 않다면 마을은 ‘닫힌 사회’의 다른 말에 불과할 것이다. 나는 내가 하는 활동이 주민의 개념을 확장하는데 조금이라도 기여했으면 좋겠고 그런 방향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있다.





    2. ‘청년’이라는 질문


    내 활동을 규정짓는 또 하나의 단어는 ‘청년’이다. 그런데 이 말도 마냥 듣기 좋은 것만은 아니다. 나는 ‘청년’이 ‘활동가’를 수식하면서 무언가 청년이 응당 가져야 할 발랄함, 열정, 패기 같은 이미지들이 소환된다고 느낀다. 그러나 나는 이런 이미지들이 가끔 부담스럽고 위화감을 느낀다.

     그리고 ‘청년 활동가’는 왜 ‘청년 활동가’일까? 그 자신이 생물학적으로 청년이기 때문에? 아니면 청년 문제를 해결하는데 일조하기 때문일까? 그렇다면 ‘마을’에서 활동하는 ‘청년’ 활동가는 무엇을 해야 할까?


     내 짧은 관찰이긴 하지만 마을과 청년을 잇는 연결고리가 아직 튼튼한 것 같지는 않다. 경제적인 이유로 결혼 – 육아 – 출산의 사회적 재생산의 고리 바깥에서 서성이는 청년들은 기존 마을 공동체와 겉돌 가능성이 높을 것 같다. 마을에서 오래 산 시니어들과 청년들 사이의 세대장벽을 넘을 수 있는 방법도 역시 고민해야 할 것이다.




    3. ‘미디어’라는 질문


     내가 마을 미디어를 다른 누군가에게 설명할 때 항상 듣는 질문이 있다. “그거 누가 들어요?” 이젠 익숙할 법도 하지만 사실 이 질문은 여전히 당혹스럽다. 왜냐하면 나도 내가 만드는 방송을 누가 듣는지 잘 모르기 때문이다. 현재 용산FM의 모든 방송은 ‘팟빵’이라는 사이트를 통해 송출되고 있다. 하지만 팟빵은 제대로 된 통계를 제공하지 않기 때문에 누가 어디서 용산FM을 듣는지 확실히 파악되지 않는다.


     거칠게나마 ‘마을 주민들이 만들고 마을 주민이 듣습니다.’라고 설명하긴 하지만, 이것은 아직 이상일 뿐이고 마을 주민이 만드는 방송과 마을 주민이 듣는 방송이 꼭 일치하는 것 같지도 않다. 마을 방송으로서의 지향을 확실히 정하지 않으면 자칫 사담(私談)을 늘어놓는 방송을 만들고 자기만족에 그칠 위험도 있다.


     결국 마을 미디어의 생존 여부도 앞서 말한 ‘마을’이라는 공동체를 얼마나 성공적으로 복원하느냐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마을이 정말 역동적인 공동체로 자리매김하고 역량 있는 주민들이 계속 발굴된다면, 주민들이 만들고 주민이 듣는 마을 미디어 역시 명분을 얻고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역시 팟캐스트라는 플랫폼이 마을 라디오의 역량을 가두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만약 방송법을 개정해서 소출력 주파수를 가질 수 있다면 마을 라디오의 활동 범위는 비약적으로 늘어날 것이다. 소출력 주파수를 통해 마을 라디오는 실시간 방송을 세 개의 동에 걸쳐 할 수 있고 지역 광고도 편성할 수 있다. 또한 인터넷에 접속하기 어려운 어르신들도 포함하여 훨씬 더 많은 지역 주민을 청취자로 만나게 된다. 


     그러므로 서울 각지의 마을 미디어들은 서로 연대해서 관련 제도를 정비하고 역량을 키우는 활동을 병행했으면 좋겠다. 여러모로 지금은 마을 미디어들에게 있어 도약을 준비하는 기간인 것 같다.



    4. 가능성에 배팅하기


     이렇게 아직도 많은 것들에 대해 확신을 가지고 있지 못하지만 그동안 배운 것도 많다. 용산에 별다른 연고도 없는 나였지만 뻔질나게 이곳저곳을 다니면서 어느새 정이 많이 들었다. 그러다보니 용산은 한국 사회의 축소판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윌리엄 블레이크의 말처럼 “한 알의 모래에서 우주를 보고, 한 송이 꽃에서 천국을 본다.” 마찬가지로 용산의 다양한 현안들은 한국 사회 전체와 연결되어 있다. 나는 용산FM 활동을 통해 이런저런 현안들을 직간접적으로 접할 수 있었고 이는 큰 행운이었다.


     지난 7월 11일은 바람이 드문 더운 날이었다. 이날 용산FM은 화상경마장 반대 운동 800일 기념 공개방송을 했다. 800일 동안 용산 주민들은 화상경마장 건물 앞에서 반대 피켓을 들었고 535일 동안 천막 농성을 했다. 그로부터 2주후에는 동자동 쪽방촌을 다녀왔다. 사람이 살고 있는데 철거 공사를 강행한 황망한 사건 앞에서 쪽방촌 주민은 당당하게 자신의 입장을 밝혀주었다.







     나는 전문적인 기술을 가진 기자도, PD도 아니지만, 다른 미디어 회사 소속이었다면 이렇게 가장 가까운 곳에서 주민들의 목소리를 담지는 못했을 것이다. 


     요즘 용산FM은 라디오라는 도구를 가지고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새로운 시도를 모색하고 있다. 용산2가동(일명 “해방촌”) 도시재생을 위한 토론장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이주민 방송을 더 늘리면 어떨까, 용산의 역사를 통해 한국근현대사를 다시 살펴 볼 수 있지 않을까, 라디오 방송을 기반으로 다른 콘텐츠를 만들 수는 없을까 등등.


     불확실한 미래가 막막하긴 하지만 아직은 하고 싶은 것, 할 수 있는 것들을 매일 매일 발견하고 힘을 얻는다. 지난 5개월을 돌이켜보면 나는 확신하기 보다는 주저하고 고민하면서 게걸음으로 걸어왔다. 그래도 처음 가는 길인만큼 이렇게 조심스럽게 발을 내딛는 것도 나쁜 것 같지 않다. 


     무엇보다 가능성에 미래를 걸 수 있어서 다행이다. □






    [필자소개] 요르 (용산FM)

    용산2가동(이른바 “해방촌”)에 위치한 용산FM에서 재밌게 활동하는 마을미디어 활동가. 과거에는 무엇보다 책을 읽는 것이 제일 좋았던 수줍은 사람이었다. 그런데 어찌어찌 마을미디어 운동에 발을 들이게 되었다. 이제는 타인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의 매력을 차츰 깨닫는 중. 잠시 책을 덮고 다른 사람의 노래를 잘 전달하는 통로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Posted by 마중 서울마을미디어지원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