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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9월_이슈] 마을미디어, 사례를 더하고 곱하고 나누다 - 꼬리에 꼬리를 무는 마을공동체 ‘미디어’ 교육 참관기

by 공동체미디어 2014. 9. 24.



마을미디어, 사례를 더하고 곱하고 나누다

- 꼬리에 꼬리를 무는 마을공동체 ‘미디어’ 교육 참관기



성상민(<마중> 객원필자)


 지금 이 글과 이 글이 게재된 뉴스레터의 글을 읽고 있는 사람은 이미 적극적으로 마을공동체나 마을미디어 활동을 하고 있는 사람이거나, 언론 혹은 주변 사람들로부터 마을공동체에 대해서 듣고 관련된 글을 찾아보다가 우연히 이 글을 보게 된 걸 것이다. 만약 후자의 케이스로 이 글을 보게 되었다면, 그만큼 한국에 마을공동체, 마을미디어에 대한 말은 많지만 정작 그게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 잘 모르고, 어떻게 할 수 있는지에 대한 테크닉이나 노하우가 부족하다는 뜻이리라. 물론 이미 예전부터 서울 성미산마을 등의 사례를 통해 ‘마을공동체’라는 개념이 서서히 퍼져왔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대부분은 몇 년 전부터 서울시가 본격적으로 마을공동체 및 마을미디어에 대한 지원 계획을 세운 것이 퍼지면서 ‘마을공동체’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것이다. ‘마을공동체’의 개념도 이렇게 겨우 알려졌는데 ‘마을미디어’는 오죽할까. 뭔가 혹하지만 내가 하기엔 쉽지 않아 보이고 딱히 세부적인 정보를 알 수 있는 통로도 마땅치 않다보니 지레 포기하게 된다. 마치 시민운동이 이러한 경로를 통해 결국 ‘하는 사람들만의 운동’으로 전락되고 만 것처럼 말이다.


 이러한 고민과 문제들을 서울시도 인식했던 것일까. 서울시의 마을공동체 정책을 담당하는 ‘서울시 마을공동체 종합지원센터’는 지난 8월 19일부터 11월 14일까지 불광역 근처에 있는 크리에이티브랩에서 마을공동체에 대한 6가지 주제로 교육 프로그램 ‘꼬리에 꼬리를 무는 마을공동체 교육’을 진행했다. 모집대상이 마을공동체 사업에 1회 이상 참여한 경험이 있는 마을사업지기로 한정되고, 한 주제 당 최대 30명밖에 듣지 못하는 것은 아쉽지만 다루는 주제들의 면면은 관심은 있어도 쉽게 사례나 이야기를 찾기 어려웠던 것들이어서 반갑다. 마을미디어, 공동육아, 놀이, 골목축제, 커뮤니티 공간, 마을경제가 바로 이번 교육 프로그램에서 다루는 주제들이다. 이 중 필자는 지난 8월 19일, 맨 처음으로 진행한 주제인 ‘마을미디어’에 대한 첫 번째 강연을 참관할 수 있었다.


▲ 서울마을미디어지원센터의 이주훈 센터장이 ‘꼬리에 꼬리는 무는 마을공동체 교육’의 첫 머리를 여는 강연을 시작하고 있다.

 

 평일 오전 10시라는 꽤 이른 시간에 진행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강의가 진행되는 크리에이티브랩에는 벌써 많은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그만큼 마을공동체, 그리고 마을미디어에 대한 관심이 많다는 뜻이 아니었을까. 강의는 서울마을미디어지원센터 이주훈 센터장의 강연으로 시작되었다. 이 센터장은 비용 문제를 이유로 통신망 설치를 거부당한 멕시코의 어느 한 산악마을에서 주민들이 직접 오픈소스 소프트웨어를 이용해 기지국을 세운 사례와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군부의 학살을 감추고 자신들의 투쟁을 왜곡해서 내보낸 제도권 언론사 사옥을 광주 시민들이 불태우고 스스로 언론을 만들었던 사건,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한국을 감싸고 있는 세월호 참사에서 기존 언론들이 제 역할을 못하는 대신 유가족들과 대안 언론이 직접 현장의 이야기를 알렸던 사례들을 전했다. 이 사례들은 주류 언론이 모든 부분을 담당할 수 없고 한계 지점이 극명함을 보이는 한편 시민들이 스스로 만든 대안 매체의 역할이 분명해짐을 드러낸다.

 

 이미 일본에서는 각 지역마다 공동체 라디오가 활발하게 운영되며 후쿠시마 참사 당시에도 지역 주민들의 소식을 모으거나 공동체 라디오가 주체가 되어 중앙 정부와 소통을 한 전례가 있다. 미국에서는 법적으로 케이블 회사의 매출액 중 일정 부분을 지자체가 환수해 해당 지자체에 속한 공동체 방송국에 지원하고 동시에 케이블 회사로 하여금 공동체 방송의 송출을 의무화하고 있다. 또한 남미에서는 더 급진적인 정책이 추진 중이다. 베네수엘라를 시작으로 에콰도르, 아르헨티나. 볼리비아, 우루과이 등의 국가에서 미디어법을 새롭게 제정하며 공동체와 비영리 영역에 주파수와 채널의 ⅓을 할당토록 했다. 한국에서 공동체 TV 방송은커녕 공동체 라디오조차도 겨우 1kw의 출력만 허가받은 채 근근이 운영되는 것에 비하면 이미 세계적으로는 공동체 방송의 중요성이 인정받고 있는 셈이다. 이 센터장은 이러한 국제적 경향이 어떻게 벌어지고 있는지를 짚었다. 바로 전파의 공공성에 대한 인식에서 이러한 경향은 출발하고 있었다. 전파는 특정인이나 기업의 소유가 아니라 모두의 것이기 때문이다. 전파의 공공성에 대한 인식이 현저히 떨어지는 한국에서도 방송통신위원회의 주도로 정기적인 전파 재허가가 이루어지는 것도 이 전파의 공공성에 기인한다.

  


 전파가 공공성을 가진다는 것은 한편으로 전파에 시민이 소통할 수 있는 권리가 담겨야 한다는 뜻으로도 볼 수 있다. 바로 그것이 ‘미디어'의 진정한 의미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한국에서 미디어는 직업이나 취미의 영역으로만 여겨졌던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미디어는 언어와 커뮤니케이션을 전달하는 중요한 창구이기도 하다. 이 센터장은 이러한 지점을 지적하며 전파를 공공성의 영역에서 봐야하는 것처럼 미디어 역시 시민들의 보편적인 권리에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 교육은 단순히 미디어가 무엇인지를 이해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시민들 스스로 미디어를 사용할 수 있는 영역으로 확장된다. 법적으로 보장된 ‘표현의 자유’를 실질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장이기 때문이다. 특히 개인이 원자화되고 고립되는 한국 사회의 상황에서 개인의 권리를 살리는 동시에 탈원자화를 위해 마을공동체를 활성화시키는 차원에서 마을미디어의 중요성은 더욱 중요할 수밖에 없다. 이 센터장은 이에 관해 설명하며 현재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는 마을미디어 중 한 곳인 ‘창신동라디오 덤’을 소개했다. 봉제공장이 밀집되어 있는 창신동의 특성상 참여하는 이들 역시 봉제 노동자들로 구성된 ‘창신동라디오 덤’은 자체적으로 마을 콩트를 만들거나 마을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시를 받는 등 고립되기 쉬운 공장지대를 활기가 넘치는 마을로 만들고 있었다. 현재 서울시에서 추진되고 있는 마을미디어 지원 사업 역시 이러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하나의 모색인 셈이다.


▲ [금천in]의 이성호 편집장이 협동조합 ‘건강한 농부’와 [금천in]이 진행했던 마을미디어의 사례에 대해 강연을 하고 있다.

 센터장의 강연이 끝나고 잠시 쉬는 시간을 가진 뒤 실제 마을미디어를 꾸려나가고 있는 두 분의 강연이 이어졌다. 처음으로 강연을 한 사람은 금천구에서 마을미디어 [금천in]을 만들고 있는 이성호 편집장이었다. 원래 강연을 하기로 되어 있던 사람은 [금천in]과 함께 마을미디어 운동을 하고 있는 단체 ‘건강한 농부’였으나 부득의한 사정으로 인해 참석하지 못해 이 편집장이 대신 강연을 하게 되었다. 그가 말한 금천구의 사례는 무척이나 흥미로웠다. 텃밭 대신 공장으로 가득 차 있을 것 같은 금천구에 우연하게 생긴 텃밭이 마을미디어를 만든 시발점이 되었기 때문이다. 원래 대한전선의 공장 부지였던 공간이었지만 사정상 계속 매각되며 탄생한 ‘한내 텃밭’은 곧 금천구 주민들이 주말농장을 지으러 모이는 만남의 광장이 되었다. 단순히 농사를 이유로 만났던 주민들은 농사 이외에 다른 활동을 하고 싶어 했고, 또한 농사를 짓는 방법이나 요령을 잘 모르는 마을 사람들에게 궁금한 내용들을 알릴 수 있는 창구도 필요했다. 그렇게 2010년 텃밭 현장방송을 하기 위한 목적으로 ‘건강한 농부’의 전신인 ‘금천도시농업네트워크’가 탄생했다.


 ‘텃밭 라디오’라는 이름의 현장방송은 구에서 지원한 라디오 부스를 바탕으로 진행되었다. 비슷한 시기에 탄생한 [금천in]과 함께 방송은 팟캐스트 형식으로 텃밭 외부에도 퍼지기 시작했고, 이후 매스컴이 취재를 하면서 더 많은 사람들이 방송을 알게 되고 방송을 만드는 이들은 더 많은 피드백을 들을 수 있게 되었다. [금천in]은 이러한 성과를 바탕으로 다른 지역 내 단체와도 손을 잡고 방송 활동을 시작했다. 비록 의지만 있을 뿐 미디어가 무엇인지 잘 모르는 사람들이 대다수였지만 모른다는 이유도 주저하는 사람들을 돕자는 마음에서 [금천in]은 공동 활동을 계속 진행하였다.


 시간이 지나고, 한내 텃밭은 다시 다른 회사로 소유권이 넘어가 사라졌다. 텃밭이 사라지며 정기적으로 모일 수 있는 공간이 사라진 금천도시농업네트워크 역시 서울시에서 제공하는 남부여성발전센터 안에 위치한 여성창업지원센터에 입주하여 협동조합 ‘건강한 농부’로 탈바꿈했다. 비록 텃밭은 사라졌지만 여전히 이들은 텃밭 농사를 짓는 사람들을 위한 정보와 그들 간의 이야기를 공유하는 방송을 계속 진행 중이다. 이 편집장 역시 이러한 모습에 짐짓 흐뭇해했지만, 이어 현재의 활동에 대한 한계지점도 짚었다. 각 단체가 직접 미디어를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금천in] 같은 미디어 단체에서 제안, 주도하는 방식이다 보니 방송의 주체성에서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고 [금천in] 역시 다양한 단체의 미디어를 만들다보니 업무가 과중되어 지칠 수밖에 없었다. 또한 미디어 활동을 시도하려는 마을공동체의 경우 너무 문턱을 높게 잡거나 자신들의 업무에 신경을 쓰느라 미디어에 관심을 덜 주다보니 쓸만한 콘텐츠가 적게 나오는 문제가 발생했다. 현재 [금천in]은 마을미디어 제작, 배포를 적극적으로 주도하던 예전의 형식에서 탈피해 후방에서 돕는 시스템으로 변화를 꾀한 상태다. 이 편집장은 마을공동체와 마을미디어가 각각 개별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간의 선순환이 이루어지는 존재가 돼야한다는 말로 강연을 마쳤다.



▲ 금천구에서 엄마들끼리 만든 마을미디어공동체 ‘너너들이’의 대표 박연경 씨가 자신이 속한 모임에 겪고 진행하고 고민했던 점들에 대해 강연을 진행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강연을 한 사람은 이성호 편집장이 활동하고 있는 금천구에서 엄마들끼리 뭉친 마을공동체 ‘너나들이’의 박연경 대표였다. 너나들이의 사례는 건강한 농부와 [금천in]의 사례만큼이나 흥미로웠다. 원래 너나들이는 본격적인 마을공동체가 아니라 금천구 안에서 공동육아에 관심이 많은 네다섯명의 주부들이 뭉친 모임에서 시작했다. 공동육아를 위해 뭉친 모임이다보니 자연스레 마을 활동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어느새 눈이 높아지며 모임 구성원 대부분이 지역 생협에 가입도 하게 되었다. 또한 공동육아에 대한 공부를 하면서 모임에 참여한 사람들끼리 글을 쓰고 이해하는 능력의 필요성을 인식하게 되었다. 마침 모임에 참여한 주부들 중에서 국문과 교수가 있었다. 원래부터 마을 내에서 글쓰기 교실을 열고 싶던 분이기도 했는데, 교수의 말에 따르면 마을에 거주하는 주부 대부분이 글을 쓰고 배우고 싶은 욕구가 있다는 것이었다. 단순히 글을 쓰고 배워보자는 생각은 어느새 교수가 바람을 잡으면서 본격적으로 마을공동체 사업에 지원해보자는 길로 나가게 되었다.


 단순히 허겁지겁 진행된 결정은 아니었다. 이미 모임 구성원 대부분이 생협 활동을 하면서 마을에 대해 더 큰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고, 서울시 안에서도 소외되어 있는 금천구 안에서 다시 소외된 여성들에 대한 고민에서 내린 결정이었다. 자신들뿐만 아니라 금천구에 사는 여성들의 글을 쓰고 이해하는 ‘리터러시’(literacy)에 대한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마을신문 만들기, 그리고 마을공동체와 네트워크 꾸려보기. 이렇게 그녀들은 마을미디어 사업에 지원을 결심하게 되었다. 물론 쉬운 길은 아니었다. 내야할 서류들은 많은데 어떻게 써야할지 몰라 막막했다. 특히 예산 작성에 대한 서류가 그랬다. 다행히 그녀들이 공동 육아를 고민하다가 모인 것처럼, 눈앞에 봉착한 문제 역시 협업을 통해 풀 수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어렵게 준비한 지원 신청이 통과되었다. 선정이 된 이후 이들은 자신들이 활동한 지역 생협, 구청 같은 주민공간과 마을공동체종합지원센터 등을 중심으로 홍보물을 배포했다. 그렇게 홍보를 한 결과 총 15명의 사람들이 모였다. 매주 한 번 씩 생협에 모여 직접 공동육아를 해보고 배우는 한편 서서히 마을미디어를 만드는 준비를 하게 되었다. 박 대표는 그때를 생각하며 아이들을 데리고 한 주에 한 번 모이는 것이 어려운데, 그러한 어려움에도 계속 모이는 엄마들의 열의가 새삼 대단했다고 소회를 밝혔다.


 그렇게 작년에 열심히 공부를 했던 그녀들은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마을미디어를 만드는 활동에 착수했다. 또한 모임에 참가하는 사람도 다양해졌다. 작년에는 30-40대 주부와 생협, 마을활동가들이 위주였다면 올해에는 50-70대의 사람들은 물론 주부뿐만 아니라 직장인, 팟캐스트 활동가 등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하는 사람들도 함께하게 되었다. 이들은 이미 작년 [금천in]과 연계해 마을신문 [금천여우] 500부를 발간했다. 이제 이 경험을 바탕으로 10월을 목표로 전문필진과 함께 웹진 [플랫슈즈]를 창간할 예정이다. 웹진을 만들기 위해 모임에 참가한 사람들은 컴퓨터를 활용하는 법에 대해서도 배워야 했다. 박 대표는 작년에 만들었던 신문에서 선회해 웹진을 만드는 이유로 ‘접근성’을 들었다. 시간, 비용에 대한 한계도 있고 마침 모임에 웹진 기자분이 참여한 것도 컸지만 이미 주부를 포함한 많은 이들이 블로그, 페이스북, 카페, 카카오스토리를 통해 소식을 접하고 글을 쓰고 있는 것에 주목했다. 또한 마을 ‘신문’은 배포되는 매체를 받아보기 쉬운 마을 내에서 머물다 끝나는 반면 웹진은 마을 밖 사람들도 보고 참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러한 고민 끝에 박 대표와 모임에 참여한 사람들은 웹진으로 마을미디어를 만들기로 결정했다. 박 대표는 강연을 마치면서 마을미디어의 본질은 결국 글을 쓰는 것에 있으며, 그에 대한 욕구와 꿈을 주목해야만 한다고 지적했다. 동시에 단순히 한 차례, 두 차례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손을 떼어도 지속가능한 매체가 될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렇게 박 대표의 강연을 끝으로 그 날의 교육 프로그램은 모두 마무리되었다. 강연에 참석한 사람들은 단순히 강연자의 발언을 듣기만 하는 대신 자신이 평소에 가졌던 마을공동체, 마을미디어에 대한 경험과 고민을 바탕으로 활발하게 질문과 의견을 던졌다. 그만큼 자신들의 고민을 해결해줄 통로나 사례가 부족했다는 뜻이리라. 물론 지원센터의 활동가들이 상시적으로 도움을 주고 매년 사례집을 펴내는 중이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자리를 계속 정기적으로 마련하고, 장기적으로는 이미 활동에 참여한 사람들이 아니라 관심을 가지고 있는 모두가 와서 참여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해야하지 않을까. 그것이 마을공동체, 그리고 마을미디어를 지속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 하나의 조건이 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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