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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11월_이슈] 마을미디어라는 이름으로 함께 1년을 좌충우돌한 그 친구에게 -성북마을 방송 와보숑TV 경어인의 편지

by 공동체미디어 2013. 12. 3.

[서울마을미디어센터 뉴스레터 마중’ 2013.11.31]


편집자 주. 지난 11월 23~24일, 성북마을방송 와보숑TV는 경기도 양평에 있는 한 수련원으로 워크숍을 다녀왔습니다. 워크숍은 와보숑TV가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다시 짚어보고, 앞 날을 모색하는 시간이었습니다. 마중 편집진은 와보숑TV의 현재 고민이 비단 와보숑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마을미디어 활동을 하는 모든 활동가들이 공유할 수 있는 고민이라 생각되어 다음의 글을 부탁드렸습니다.




마을미디어라는 이름으로 함께 1년을 좌충우돌한 그 친구에게

-성북마을 방송 와보숑TV 경어인의 편지

 

鏡於人(와보숑 TV)


이보게 친구...,

기억나는가? 자네에게 와보숑TV라는 한글도, 불어도 아닌 국적불명의 모호한 이름을 붙여놓고 감히 ‘마을방송국’이라는 걸 해보자고 작당한 게 작년 이맘 때 쯤의 일이였으니 함께 지구라는 별을 타고 태양을 한바퀴 돌아오는 긴 여행을 함께한 꼴이군....

 

돌이켜 보면 그저 무모할 정도로 막무가내로 좌충우돌하며 달려온 자네와의 지난 1년을 서울마을미디어센터에서는 뭐 볼게 있다고 자네와의 이야기를 정리해 달라고 하는지, 마지못해 컴퓨터 앞에 앉기는 했네만 나로서는 참 난감한 일이자 아주 고민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네.

 

자네도 알다시피 내세울 것도 없고, 그렇다고 충분한 고민도 없이 시작한 아주 저렴한 우리의 밑천을 다 내보이자니 신비감 떨어지는 민망하기 그지없는 일 아니겠는가?….ㅡ.ㅡ;;;

 

 그래도 우리처럼 뭔가 마을에서 미디어라는 걸 해보고자 하는 또 다른 누군가에게 최소한 저런 사람들도 하고 있는데, 우리라고 못할까 하는 작은 ‘희망의 근거’와 반면교사의 이야기쯤은 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어 정말 쑥쓰럽긴 하지만 자네와의 지난 1년을 돌이켜 정리 해보려하네….

 


 

무식해서 용감했고, 없는 게 메리트였던 시작.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나? 자네와의 시작은 딱 이말 한마디로 정리되는 것을…

마을미디어 지원사업의 일환이었던 ‘시끌시끌 성북이야기’ 참여자들이 모여서 카메라 한 대 없이 마을방송국을 시작하자던 그 ‘극강의 무모함’과 동영상 촬영이란 걸 제대로 한번 해 본적이 없는 사람, 편집이란 작업을 감히 범접할 수 없는 미지의 세계로 생각했던 사람이 거의 절대다수인 최악의 상황에서 어떻게 지금까지 자네와 함께 할 수 있었는지 지금 생각해도 나로서는 아주 미스터리한 일일세.



 그래서 그렇게나마 고군분투하며 기를 쓰고 만들어낸 자네의 프로그램들을 어디선가 보시고서 심각한 착각으로 견학을 오고 싶다고 하는 연락이 오면 나로서는 그저‘대략 난감의 맨붕’이 올 따름이지 뭔가. ㅡㅡ;; (특히, 이상한 색안경을 쓰고 찾아오시는 정치인 분들에겐 정말이지 방문을 극구 말리고 싶네....)

 

그래도 지금 돌이켜보면 그런 초라한 시작이 자네와 우리가 여기까지 함께 올 수 있었던 원동력이 아니었겠나?

아는 게 없고 갖춘 게 없다는 사실은 잃을게 없으니 그냥 질러보자는 무모한 용기의 원천이 되었고 하다가 엎어지더라도 x팔리지 않을 수 있는 훌륭한 핑계거리가 되어주었던 게 아니었겠나? 고만고만한 사람들이 모였으니 저마다의 상황과 처지에 맞게 자신의 역할을 맡아 할 수 있는 그야말로 수평적 네트워크의 기반이 되어 주었고, 괜한 욕심과 오버(OVER)에 맞선 철저한 현실인식과 절제의 미덕을 알려준 훌륭한 스승이 되어주었던 게 아니었겠나? ㅋㅋㅋ

 

결국 누구의 노래 말마따나 ‘없는 게 메리트’였던 게지.

 

 하긴 뭐, 마을방송하자고 A부터 Z까지 다 갖춰놓고 한다는 것이 가능하기나 할지, 다 갖춘다는 것이 어떤 건지 나로서는 알지 못하겠네만 이러한 부족함을 유쾌하고 재미있게 극복하고자 했던 노력들이 자네와 우리들의 지난 1년의 모습이 아니었겠나?

 

혹시라도 마을방송 해보시겠다고 고민하고 게시는 분들께 자네가 이야기 좀 해주시게나. 그냥 고민하지 말고 마을에 다 있으니 그냥 질러보시라고…..우리도 이러고 했는데 뭘.....

 



새로운 현실과 마주하게된 빈 머리 뜨거운 가슴

자네와 함께한 지난 1년 동안 좌충우돌하며 만들어낸 프로그램 몇 개를 너무나 감사하게도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져주시고 좋은 평가를 해주시니 그저 우리로서는 성은이 망극한 일이지. 그런 관심들이 이어져 작게나마 수익사업도 할 수 있었고, 상도 받는 행운이 있었으니 그야말로 창전벽해 같은 상황이 아니겠나...하하하

 

그래도 친구,

 

 이제와서 고백건데 그런 관심과 성과만큼이나 우리에겐 고민도 깊어진 것도 사실이었다네. 잘하고 있는데, 도대체 무슨 고민이 있냐고?

 


흠....글쎄, 무엇보다 가장 큰 고민은 역시 사람의 문제겠지.

모두가 본업을 가지고 있는 생활인이 대부분인 와보숑 식구 10여명이 마을 곳곳의 이야기들을 담아낸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떻게 가능한 일이겠는가?

더욱 많은 사람들이 마을 곳곳의 이야기들을 담아 낼 수 있다면 더욱 풍성한 기획과 제작이 가능하겠지만, 아무 대가없이 자신의 시간을 여기에 투여할 수 있는 분들을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더군. 마을에서 우리와 함께할 수 있는 분들을 어떻게 찾을 수 있을지, 함께하고자 하시는 분들에게 어떻게 하면 우리의 생각과 현실을 제대로 설명드리고 동의를 구할 수 있을지 우리에겐 가장 큰 숙제가 아닐 수 없는 상황이라네.

 

또 하나는 자네와 우리의 관계의 문제가 아닐까 싶네.

해야 할 일들이 늘어나는 만큼의 책임과 역할이 명확해야하는데, 자네와 우리의 관계가 명확하지 않으니 일을 조율하고 진행하는 데 상당한 어려움이 생기는 경우가 종종 있었지 않았는가?

어떤 역할을 한다해도 그 만큼의 대가를 지불하기 힘들고, 그저 개인의 사명감과 헌신을 강요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우리 대표님께서 역할분담 때문에 중간에서 남모를 고생 꽤나 하셨더랬지.

자네와 우리가, 그리고 우리 개개인이 어떻게 하면 지속가능하고 발전적인 관계로 거듭날 수 있는지가 우리에겐 또 하나의 중요한 숙제겠지.

 

세번째는 ‘왜(why)’의 문제가 아닐까 싶네.

우리는 항상 ‘어떻게(How)’의 문제를 치열하게 고민했지만, 그만큼의 ‘왜(why)’라는 문제를 고민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나만의 생각일까?

 

만드는 사람도, 보는 사람도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아야 하는 방송이라는 매체에서 이 ‘왜(why)’라는 문제는 끊임없이 갈구해야하는 문제는 아닐까? 우리가 어떤 방향과 어떤 꿈으로 더 큰 내일을 향해 나아갈 수 있을지에 대한 실마리가 바로 여기 있는 거라 생각하는데 나로서는 아직 그 길이 보이지 않아 좀 답답하군 그래...

 

 마지막은 관점의 문제.지역에서 하는 일이다 보니 정말 다양한 분들이 참여하고 계시고, 다양한 분들이 우리 프로그램들을 봐 주시고 있다보니 정치적인 입장들에 대해 소극적으로 다루거나 가급적 회피해야하는 일이 생기거든.

지금도 우리의 생각이나 관점들이 일부 반영되는 부분이 있다고는 하지만, 언젠가는 우리의 관점과 생각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을 때가 분명히 생길 것 같기에 미리 대략적인 정리와 합의를 하고 가야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고민이 드는군.

 

그래도 결국 답은 사람과 마을에......

뭔가? 지금 그 표정은...

오호...이런 푸념과 고민들이 그저 배부른 소리라는 표정이군....

하긴 뭔가 새로운 재미를 추구하며 불나방처럼 덤벼들었던 이 일이 이젠 그런 재미만을 추구할 수 없는 현실을 직시한 내 전두엽이 괴리감과 부담감이라는 강한 충격을 받았을테니 이런 고민이 방어기제로 튀어나왔다고 부인하지는 못하겠네...ㅋㅋㅋㅋ

그래. 친구. 언젠가 자네가 나에게 말했었지?

마을에서 시작한 일이니 답은 마을에 있을 테고, 사람들과 함께 시작한 일이니 사람들과 함께 답을 찾아가라는 이야기.... 자네 말대로 처음의 시작이 그랬듯이 그저 이 길 가다보면 발 딛은 그곳에 해답이 있겠거니 하면서 또 가봐야 하는 거겠지.

지금으로서는 더욱 많은 분들을 만나 이야기해보고 조금이라도 힘을 더해줄 수 있는 사람들을 찾아 마을에서 열심히 발품과 시간품을 들여봐야 하는 게 필요한 시간인듯 싶네.

 

우리 지금 오늘은 비록 가진 것 없고 어설픈 미생(未生)이나 제대로 된 완생(完生)을 향해 더욱 즐겁고 유쾌하게 사람들과 동행하면 또 다른 즐거움이 펼쳐지지 않을까?


 별다른 내용도 없는 푸념이 주저리 주저리 길었군.

마지막으로 지금의 우리의 처지에 딱 맞는 이 노래를 선물로 주면서, 내일도 출근과 함께 시작될 희망을 위해 조금이라도 눈을 붙여야 겠네.

행쇼~




2013년의 마지막달 새벽녘에 긴급 편집분량 받아 든 기분으로 컴퓨터 앞에서 허리와 목디스크의 위협을 느끼며....

 

 PS) 혹시라도 이 글을 읽고 와보숑TV에 함께하고 싶으신 무모한 분들이 게시다면 성북구 마을만들기 지원센터 (927-9501)로 정말 과감하고 부담없이 연락 부탁드립니다. (이 글에 대한 항의전화는 사절하겠습니다.ㅡㅡ;;;)

 

이 유치찬란한 편지를 보낸 장본인은 동대문구에 거주하면서 성북구의 마을방송국 와보숑TV에서 활동하는 ‘마을방송 위장전입자’로서, 누구나 들이대는 저렴한 방송을 지향하며 시작했던 자칭 인기프로그램(?) ‘아빠들의 수다’의 진행을 맡았던 경력이 있습니다. 밤에는 방송인으로의 일탈을, 낮에는 밤의 일탈로 인해 평균 이하의 직장인으로 살아가는 이상과 현실속을 헤메고 다니는 경계인이자 아들딸들에게 일탈을 적극 권장하는 사랑스런 세아이의 아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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