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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11월_이슈]"왜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싶나요?" - 김명준 감독 특강<소통하는 다큐/공감하는 다큐>

by 공동체미디어 2013. 12. 3.

[서울마을미디어센터 뉴스레터 마중’ 2013.11.31]

 

"왜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싶나요?"

 - 김명준 감독 특강 <소통하는 다큐/공감하는 다큐> 강좌 취재

 

 이선화(<마중>객원기자)


전공이나 업으로 하려는 사람이 아니면, 사실 다큐멘터리를 하고 싶다고 말하면 말리고 싶어요. 그래서 강의를 제안받았을 때, 왜 마을 미디어를 하시는 분들이 다큐멘터리를 하시고 싶은지 가장 먼저 질문 드리고 싶더라고요.”

 

 김명준 씨는 으레 전공자들이 비전공자들에게 말 거는 방식으로 강의를 시작했다. 다큐멘터리를 배우고 싶다는 열정이 도화선이 되어 이례적으로 미디엑트가 아닌 강서영상미디어센터에서 열린 강의를 들으러 가는 길이 낯설었다. 장소의 낯섦만큼 강사인 그가 대면한 이 낯선 상황에서 어떤 강의를 할지 내심 궁금하기도 했다. 그가 던진 첫 질문은 다큐멘터리 제작에 따르는 현실적 어려움과 장애물에 관한 일종의 경고라기보다는, 이 짧은 시간 안에 다큐멘터리를 가르친다는 것이 불가능함을 뜻했다. 3시간 안에 다큐멘터리를 배우고 싶은 사람들에게 어떤 가르침을 줄 수 있다면 확실히 기이한 일일 것이다. 그래서 이날 강의는 어떻게가 아닌 어떤 태도로 라는 부분에 초점이 맞춰줘서 진행되었다. 마치 도구를 꺼내기 전에 책상 위를 확인하듯이 어떤 마음가짐이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데 필요한지에 대해서 중점을 둔 강의였다.


김명준 감독 특강 <소통하는 다큐/공감하는 다큐>

 

 이날 강의에는 준비물이 한 가지가 있었는데, 김명준 씨의 <우리 학교> <서칭 포 슈가맨>을 보고 오라는 당부가 그것이었다. 주인공들을 긍정적으로 그려냈고 감동을 자아낸다는 공통점 외에 두 영화의 접점을 찾을 수 없어서 의문이 들었다. 그러나 강의 전반을 차지했던 신뢰에 관한 이야기가 달라 보이는 두 영화를 묶어주었다.

 

 그는 다큐멘터리가 사실을 전한다고 보통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고 하였다. 영화라는 장르 자체가 삶의 생생한 순간들을 프레임에 가두기 때문에, 어떤 식으로든 조작이 가해지기 마련이라고 한다. 다만 극영화의 경우에 배우를 통해 타인의 삶을 대신 살아보는 것이고, 다큐멘터리의 경우에는 실제 타인의 삶에 카메라가 들어가는 차이가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영화에는 진실은 있지만, 리얼은 없다. 그렇기에 감독이 타인의 삶에 들어가 찍고 그것이 대중에게 상영되는 다큐멘터리를 선택할 경우, 조작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신뢰를 쌓는 과정이 중요하다. 또한 그 과정과 함께 영화가 그들의 삶에 끼칠 수 있는 영향에 대해 민감하게 고민해야 함을 거듭 강조했다. 그의 영화, <우리 학교> 제작 과정에서 어떻게 우리 학교 아이들과 친해지고 선생님들과 신뢰를 쌓아갔는지 개인적인 일화들을 예로 들었는데 꽤 흥미로웠다.

 

 카메라에 찍히는 것이 익숙한 사람은 직업적으로 훈련받는 경우가 아니면 드물다. 그래서 타인의 일상적인 모습을 담아내야 하는 다큐멘터리는 카메라와 찍는 사람의 존재 자체를 친숙하게 만들기 위한 여러 가지 노력이 필요하다. 그가 카메라로 찍은 결과물을 바로 보여주고, 어떻게 찍는지 아이들에게 알려주는 과정, 그리고 아예 찍히는 대상에게 카메라를 맡기는 과정이 그러했다. 가장 간단하게는 함께 하는 시간의 양이 늘어나면서 그들과 자연스럽게 섞이는 과정이었다. 수업 시간에 들어가서 자주 찍으니까 아이들도, 선생님도 점점 긴장하지 않고 그의 존재를 편안하게 여기다 못해, 나중에는 왜 재밌는 일이 있었는데 수업 시간에 찍으러 안 왔느냐고 핀잔 받았다는 일화가 그랬다. 이러한 지난한 과정으로 구축된 신뢰를 잘 보여주는 장면은 영화 속에서 수학여행 때, 현실적인 제약도 있었지만, 아이들에게 카메라를 맡겨서 북한 여행의 모습을 담은 부분이었다. 수강생들이 어떻게 가능했느냐고 다시 한 번 질문할 정도로 그가 강조했던 오랜 시간을 통한 신뢰 관계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로 보였다.

 

김명준 감독 특강 <소통하는 다큐/공감하는 다큐>

 

 또한 함께 하는 시간의 양과 솔직하게 영화의 과정을 보여주는 노력으로 신뢰를 얻는 방법뿐만이 아니라 그 사람들의 일상 안에서 필요한 존재가 됨으로써 관계를 쌓아갈 수 있었다. 학교 선생님에게 진로 상담을 해달라는 요청을 받는다든지, 졸업식에 관한 아이디어를 요청 받아서 졸업식 계획을 같이 세운 일처럼 그들의 일상 안에서 역할을 부여받고 함께 행동할 때 그들과 더 깊은 관계를 맺을 수 있게 되고, 이것이 쭉 이어져서 이후 작업의 원동력이 된다고 했다. 이처럼 시나리오를 공개하면서 그 주체들의 협력을 구할 때, 누군가의 삶을 폭력적으로 결과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타인과의 신뢰를 쌓는 과정에 중점을 둘 때야말로 좋은 다큐멘터리를 만들 수 있고, 감독 자신도 새로운 것을 알아가는 충격과 즐거움이 있다고 한다. 영화가 그 자신의 것이 아니라 영화에 등장한 모두의 영화가 되는 것, 감독의 입장에서는 그들 모두가 제작진일 때, 좋은 다큐멘터리라고 할 수 있다는 문장이 와 닿았다.

 

 한편 신뢰를 쌓아가는 과정에서 늘 좋은 일만 있는 것이 아니다. <서칭 포 슈가맨>의 뛰어난 점 중 하나는 주인공인 로드리게스와 안 좋게 끝났던 과거 레코드사 사장과의 인터뷰에서도 불편함보다는 자연스럽고 솔직함이 묻어난다는 것이다. 이것은 제작진이 제작 의도를 그에게 다 알려주고, 그도 제작진이 만드는 영화의 방향에 공감하는 관계를 형성했음을 보여준다고 한다. 설사 영화의 편집 방향이나 의도에 반대되는 입장이거나 그것을 납득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을지라도 그들에게 계속 보여주고 설득하면서 함께 이야기하는 노력도 신뢰를 쌓아가는 과정 중 하나라는 것이다. 설사 영화 속에서 그 인물을 좋지 않게 그리게 될지라도 그 영화를 만드는 이유에 대해서 그가 이해하고 합의한 상태여야 한다는 것이다.     

 

 신뢰가 다큐멘터리 제작 과정 전체에 퍼져 있다면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태도가 공부하는 태도라고 한다. 앞서 언급했듯이 영화 자체가 조작이기 때문에, 그 조작이 타인의 삶을 왜곡하지 않으려면 주인공들의 일상을 치밀하게 관찰하고 알아가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즉 프레임과 편집이라는 조작과 연출이 가해지는 과정에서 자연스러운 모습을 잘 보여주기 위해서는 제작자가 그들의 행동, 습관, 일상적인 대화를 잘 알아야 거짓이 아닌 진실을 전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감독 자신의 사례에 의하면, 조선학교 아이들이지만 일상적으로는 일본어를 쓰기에, 아이들의 더 편한 모습을 알기 위해 일본어를 공부한 것부터 조선학교에 대해 이제는 강의하러 다닐 정도로 자료조사와 공부를 했다고 한다. 그래야 있는 그대로는 아닐지라도 타인의 삶을 진실하게 표현할 수 있고, 제작 과정에서 소재에 대해 많이 아는 만큼 전체 콘티를 짜고 계획을 짜는데 힘들지 않다는 조언이 뒤따랐다. 카메라를 들기 전에 자신이 찍으려는 소재를 조사하는 기간만을 3년간 진행했다는 그의 말이 앞에서 다큐멘터리를 만든다는 것이 왜 힘들고 어려운 일인지 새삼 환기할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도 다큐멘터리를 통해 말하고 싶은 것, 소재를 정하는 일이다. 그가 생각하기에 자신이 느끼는 문제의식, 간절히 말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면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길고 힘든 과정을 완수하지 못할 거라 이야기했다. 감독 자신도 일본과 한국을 왔다갔다하며 영화를 찍으면서, 더 많은 사람이 우리 학교에 대해서 알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영화를 완성하는데 큰 추동력이 되었다고 한다. 이처럼 자신이 무엇을 사람들에게 전달하고 싶은지 고민해서 결정하지 않으면 과정 자체에 동기 부여도 힘들고, 당연한 일이지만 즐거움도 반감된다는 것이다.    

       

 강의가 끝난 후, 곰곰이 생각해보니 사실 이 세 가지 지점은 연결되어 있다. 자신이 관심 있는 것을 찾기 위해서는 사전 조사와 공부와 필요하고, 공부하기 위해서는 책만 들춰볼 것이 아니라 그것과 직접 연관 있거나 그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야 하고, 그들에게 진솔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는 시간을 들여서 관계를 형성해 나가야 한다. 그렇다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왜 이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싶을까, 혹은 만들어야 할까?”라는 질문을 하게 되지 않을까. 다큐멘터리를 만들 수 있는 여러 기술과 환경도 중요하지만, 지금 막 다큐멘터리에 도전하려는 이들에게 가장 궁금한 것은 그들이 하고 싶은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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