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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12월_ 이슈] 하루 종일 판을 벌이다: 2013 서울마을미디어축제 <마을미디어, 판을 벌이다> 취재기

by 공동체미디어 2014. 1. 13.

[서울마을미디어센터 뉴스레터 '마중' 2013.12.31]

 

하루 종일 판을 벌이다:
2013서울마을미디어축제 <마을미디어, 판을 벌이다> 취재기

 

스이 (<마중> 객원기자)


2013년 12월 6일, 연말 분위기에 접어들기 시작한 서울시청 시민청이 하루 종일 북적거렸다. 천장에 매달린 물고기 모양 장식등 사이로, 벽에 빼곡하게 붙여진 포스터들은 모두 같은 문장을보여주고 있었다 - "마을미디어, 판을 벌이다". 오늘은 시민청 곳곳에서 마을미디어 판이 벌어질 판인가보다. 한 해동안 서울시 곳곳에서 일을 벌였던 마을미디어 방송국들이 모두 모이는자리이니 얼마나 큰 판이 벌어질 지는 보지 않아도 짐작이 되었다. (순간 취재기를 쓰는 것이 얼마나 어려울지 깨닫고 그 자리에서 뒤돌아 나갈 뻔 했지만, 촬영도 한 꼭지 맡았기 때문에 행사장 중 하나였던 바스락홀로 직행해야 했다)

 

▲ ‘ 마을미디어, 판을 벌이다’ 중 전시 한판이 열렸던 시민청 활짝 라운지

 

 

이야기 한판: 마을미디어 리빙 라이브러리


오후 1시부터 저녁 9시까지 8시간(!)에 걸쳐 진행된 마을미디어 축제는 크게 네 개의 프로그램으로 짜여 있었다. 첫 번째 판은 '이야기한판'. 마을미디어 현장에 참여해온 주민 7명이 사람책이 되어 독자들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독자들과 함께 생각할 거리를 나누는 시간이었다. 일곱 개의 테이블에 앉은 일곱 권의 사람책들 주위로 책 제목을 보고 선택한 독자들이 몰려들었다.

 

 

 이야기한판 – 마을미디어 리빙라이브러리가 진행 중인 시민청 바스락홀

 

발표자가 무대 위 앞자리에 주욱 앉아서 한 방향을 보고 있는 청중들을 향해 이야기하는 패널 방식과 달리, 마치 한 권의 책을 둘러앉아 읽는 것처럼 사람책이 자신의 이야기를 하면 독자들이 이야기를 덧붙이면서 내용을 채워가는 방식이 흥미로웠다. 독자들에게 어디서 오셨는지를 묻는 사람책의 질문으로 시작하는 테이블도 있었다. 독자로 참여한 사람들은 멍하니 앉아있을 수만은 없는 분위기임을 재빨리 알아채고 사람책들에게 이것저것 묻기 시작하였다.

 

 

 ▲ 도봉 N 의 김대선 님. 떡집 사장님답게 이날 모든 설명을 떡으로 해냈다고 한다.

 

마을미디어에 푹빠진 동네 떡집 사장님'이라는 제목의 사람책으로 나선 김대선 님(도봉N)은, 마을에서 "떡집 아저씨"로 통한다고 했다. 떡집 사장님이 어떻게 마을미디어에 참여하게 되었는지로 시작된 그의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도봉N의 뒷이야기로 이어졌는데, 도봉N이 다양한 매체를 확보해온 과정에 대해 궁금해하던 독자들에게 '우리 이야기를 쓰기 위해 마을 신문을 시작하다보니 영상 미디어에 열정을 가진 사람들도 나타나면서 매체의 확장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부천 콩나물 신문 한효석님부천 콩나물 신문 한효석님



'협동조합으로 마을미디어 한다'는 제목으로 관심을 끌었던 한효석 님(부천 콩나물신문-사진)은 발행하고 있는 신문을 직접 들고와 보여주면서 신문의 색감과 디자인, 내용이 여러 사람의 피드백을 통해 결정되는 과정을 소개하였다. 독자들은신문을 뒤적이며 협동조합 방식의 마을신문 제작을 어떻게 진행해왔는지에 대한 이야기도 듣고, 이렇듯 파격적인 시도가 다른 마을미디어에도 적지 않은 영감을 줄 것 같다는 소감을 나누기도 하였다.

 

사람책 시간이 마무리되고 나서 잠깐 한숨 돌리는 동안, 마을미디어 연구자 이희랑 씨의 깜짝발표가 있었다. 스스로를 '미디어 교육하는 사람'이라고 소개한 이희랑 씨는 그 동안 참여연구방식으로 마을미디어를 연구해왔는데, 이번 발표는 그 중간 결과를 정리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마을미디어의 현황과 의미"라는 제목의 발표를 통해 그는 마을미디어를
만들어가는 이들이 누구인지, 마을미디어가 무엇인지, 마을 단위

로 미디어를 갖는다는 것의 의미가 무엇인지 차근차근 설명해내었다. 특히 '마을미디어에는 내가 있다'는 인상적인 말로 마을주민 개개인의 삶이 마을미디어에 녹아 들어있음을 시사하기도 하였다.

                   

 

 

 마을미디어의 현황과 의미라는 주제로 발표 중인 이희랑 님


곧이어 계속된 모둠 토론 시간. 참여자들은 마을미디어 활동에서 느꼈던 고민을 질문 형식으로 쪽지에 써서 무대 앞 벽에 붙였다. 이 쪽지들은 마을미디어활동가의 생계, 마을방송국의 지속가능성, 마을미디어를 위한 세대별 교육, 콘텐츠의 수준에 대한 고민 등 네 가지 주제로 분류되었고, 참여자들은 각자 관심사인 주제의 테이블에 가서 앉았다. 갑작스럽게 주어진 토론 시간에 주저하던 것도 잠시, 참여자들은 이내 자신들의 고민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마을라디오 활동을 너무 재미있게 했지만 생계를 위한 일과 장기간 병행하는 것은 어렵다는 이야기에서부터 마을미디어에서 어르신들이 소외되지 않게 미디어교육이 충분히 주어지면 좋겠다는 의견까지, 마을미디어 활동을 했다면 한 번쯤은 겪어봤을 법한 고민들이 테이블 위에 놓인 종이(와 H4N녹음기)에 빼곡이 채워졌다.


마을미디어를 꾸려낸 초기의 열정이 지나간 자리에 콘텐츠를 어떻게 채워나갈지, 어떻게 이 활동을 지속할 수 있을지, 마을미디어활동을 하면서 생계도 해결하는 방법이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남는다는 점은 모두에게 주어진 공통의 과제인 듯 보였다. 이는 미디어센터의 지원을 받는 단계를 지나 그 이후에는 어떤 모델로 살아남을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기도 했다.

마을미디어를 만들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이제 조금씩 모이고 있는 현 단계에서 다음 단계의 생존까지 고민해야 하는 상황이 일견 가혹한 듯 하지만, 마을 곳곳에서 만들어지고 있는 공동체와 함께 살아내는 방법을 모색하는 것도 전혀 불가능해보이지는 않았다. 진행을 맡은 도봉N 활동가 이창림 씨의 마무리멘트처럼 '미디어를 만드는 사람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미디어의 메세지를 들어주는 사람'인 만큼, 마을미디어에 귀를 기울이는 마을 사람들을 찾아내고 관계를 유지하면서 마을미디어의 활로를 만들어갈 필요가 있어 보였다.


토론 시간이 길지 않아서 충분한 해답을 얻지는 못했지만, 참여자들 사이에는 같은 고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만났다는 안도감과 공감대가 흐르고 있었다. 3시간 넘게 진행된 이야기 한판에 참여하고나서 피곤할 법도 한데, 참여자들은 이야기를 더 하고 싶어했고 다른 이들의 생각을 더 듣고 싶어했다. 이처럼 절실함에서 비롯된 공감대는 마을미디어 지원정책 개선을 위한 착안점이 될 뿐 아니라, 이후 각 마을에서 활동하는 미디어활동가들 간의 연대를 위한 기반이 되어줄 것이라는 기대감이 생겼다.


 

뽐내기 한판: 2013 마을미디어 대상


어떻게 살아나갈 것인지 걱정은 잠깐 멈춤. 저녁 6시부터는 올해 벌여온 일들을 뽐내고 칭찬받는 뽐내기 한판이 열렸다. 뽐내기 한판은 '우리마을 미디어를 뽐내는 시간'(이하 '마뽐시') 5분동안 20장의 슬라이드를 보여주며 마을방송국 이야기를 전하는 '이그나이트'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마뽐시에는 10개의 마을방송국이 참가했는데, 서울만 해도 얼마나 다양한 종류의 마을미디어가 있는지 한 눈에 볼 수 있었다. 각 마을의 방송국들은 초등학생(금천 아이엔)부터 청소년 ((사)열린사회시민연합 강동송파지부), 청년(노원 창의미디어이니셔티브), 60대 어르신(관악 미디어나눔모임 마루)까지 거의 전 세대를 아우르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장애인(은평 거북이라디오), 봉제 노동자(종로 창신동라디오방송국 덤), 정신장애인(송파 한아름방송국) 등 다양한 계층이 만들어내는 마을미디어도 적지 않았다.

 


▲ 마뽐시 한 장면. 도봉 N 의 고현숙 님(좌)과 채널강서발전소의 김순규 님(우)

 

10명의 참가자들은 떨리는 목소리로 연기하기도 하고 프로 성우 같은 목소리로 대본을 읽기도 하면서, 다양한 세대와 계층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 했지만, 사실은 다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미디어를 직접 만들게 된 사람들의 이야기, 자기의 삶으로 매체를 채우는 그 즐거운 경험을 반복해서 들려주고 있었던 것이다.

 

 ▲ 마뽐시 열기를 식히기 위해 중간중간 마을 아마추어들의 축하공연이 있었다. 왼쪽 위부터 시계 반대 방향으로

'매력있어'(구로FM), 2집 앨범에 빛나는 방승호 님(중화고등학교 교장), 멋진 목소리를 뽐낸 '조 앤 조르바'
(창신동공동체라디오 덤), 지난 마을미디어콘서트에 이어 이번에도 아름다운 노래들을 들려준 '시, 책, 평화를
노래하는 화모니'((사)열린사회시민연합 강동송파지부).


주류 미디어에서는 볼 수 없는 이야기와 사람들로 채워진 마뽐시 발표를 들으며, 마을미디어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당사자성'이 마을미디어의 가장 큰 동력임을 알 수 있었다. 마을미디어 콘텐츠의 대부분은 그 마을에 사는 사람들의 자기 이야기이고, 내 목소리가 라디오를 통해 흘러나올 때의 기쁨과 신기함이 마을 방송을 계속하게 하는 피드백이 된다. 누군가가 만들어낸 누군가의 이야기를 늘 듣고 보기만 하던 것에 익숙해있던 사람들이 이제는 제작자가 되어 자기 이야기를 주변 사람들과 나누기 시작하고 있다. 이렇게 즐거운 변화가 서울에서 일어나고 있다니.

 

마뽐시의 열띤 자랑질(!)이 한 시간 여에 걸쳐 마무리 된 후, '재미로 하는 마을미디어 시상식'이 열렸다. 어르신들을 위한 '이 나이에 내가 하리'상, 어린이들을 위한 '어린 놈이 뭘 알아서'상, 즐겁게 방송하는 이들을 위한 '깔깔깔'상, 가장 많은 이들이 참여하는 마을방송국에 주는 '줄줄이 사탕'상, 마을 곳곳을 누비고 다녔던 활동가들에게 주는 '최대발품팔이'상, 미디어카페를 가장 많이 이용한 이들에게 주는 '카페가 나는 좋아'상 등 들어본 적도 없는 이름의 상들이 커피믹스, 핸드크림, 사탕과 초콜릿, 돼지저금통 등 소박한 부상과 함께 각 마을방송국들에게 선물처럼 주어졌다. 한 해 동안 수고한 모든 마을방송국들을 위한 맞춤형 시상식 덕분에 모두가 즐거워졌다.

 

 

▲ 재미로 하는 마을시상식을 거치며 참가자와 관객들 모두 흐뭇해하는 가운데, 2013 마을미디어대상은 '할머니들의 매일매일이 화양연화 같다'며 큰 하트를 날렸던 송금순 님(관악 미디어나눔모임 마루)과 '방방놀이터 때문에 시작했던 방송이 우리의 힐링캠프가 되었다'고 했던 우정, 이서현 어린이(금천아이엔)에게 돌아갔다.

 

'서울 사람' 이전에 '마을 사람'


 

한 해 동안의 마을미디어 활동을 결산하기 위한 자리였던 이번 2013 마을미디어축제에서 그 곳을 채우고 있었던 것은 '마을'과 '사람'이었다. 미디어는 말 그대로 매개일 뿐, 그것을 매개로 모인 사람들과 그 사람들이 이뤄내고 있는 공동체가 그 곳에 있었다. 담장을 넘어 서로의 이야기를 듣고 나누면서 사람들은 그렇게 마을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콘크리트 도시의 대표격이었던 서울 곳곳에서 이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신기해하면서, 오늘 장장 8시간 동안 함께 했던 마을미디어 활동가들과 내년에도 만날 수 있길, 더 많은 방송국들이 생겨나길, 더 즐거운 판을 벌여 모일 수 있길 바라며 이미 어두워진 시민청 밖으로 나섰다.


 

덧붙이기. 이야기한판과 뽐내기 한판이 벌어지는 동안, 시민청 활짝라운지와 워크숍룸에서는 '전시한판'과 '놀이터 한판'이 열렸다. '전시한판'에는 마을미디어 장비들을 전시하는 부스와 각 마을미디어방송국이 소개된 담벼락이, '놀이터 한판'에는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한 사진놀이 프로그램이 매시간 열렸다는데 촬영과 취재를 함께 하느라 그 판들은 놓치고 이후 사진을 통해서만 볼 수 있었다. 매우 아쉽게도.




▲ 2013 서울마을미디어축제 "마을미디어, 판을 벌이다" 스케치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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