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중 24호 이슈 2016.10.11]


    맘껏 즐겨라! 엄마의 새로운 시간

    - <엄마시간공작소>의 ‘맘껏 콘서트’와 팟캐스트 ‘엄마의 시간’  

      


    이수미 (ACT!)



      지난 8월 29일 오전, 서울 시민청은 평소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유모차를 끌고 가는 젊은 여성들의 무리, 엄마 곁에서 짧은 걸음을 내딛는 어린 아이들, 간간이 들리는 여인들의 웃음소리와 그 사이를 파고드는 아기 울음소리... 그 모든 수상쩍은 기운이 향하고 있는 곳은 지하 2층에 바스락홀. 로비에 내걸린 플랭카드의 문구는 더 수상했다. “딸엄마보다 빨리 죽는데. 힘내요, 아들엄마!” “우리가 돈이 없지, 딸이 없냐” “낳아라! 그리하면 열릴 것이다” “거참, 애 낳기 딱 좋은 날씨네” 도대체 무슨 일이 있기에... 미심쩍은 표정으로 안을 들여다 본 사람들은 의아해졌다. 홀 안에 즐비하게 세워진 유모차들의 대열, 매트 위에 앉아 아기에게 젖을 주거나 간식을 먹이는 젊은 엄마들. 그들의 시선이 향하고 있는 무대 위에서는 콘서트 준비가 한창이었다. 그러고 보니, 여기는 공연장이 아닌가?   

     

    ▲ '맘껏 콘서트'현장


    맘(mom)들의 ‘맘껏 콘서트’

      “미친 상상을 해 본거죠! 아이들을 다 데리고 가는 엄마들의 콘서트를 만들어보면 어떨까?” MC를 맡았던 김지혜 씨의 말이다. “엄마이기에 좋은 것도 있지만 제약받는 것도 많잖아요. 예전엔 콘서트도 자주 가고 그랬는데 엄마가 된 후에는 문화생활도 잘 못하고... 엄마라도 할 수 있는 것들을 늘려 가보자 하는 바람에서 시작하게 됐어요.” 무대에서 내려오자마자 김밥을 찾아든 그녀는 지쳐보였지만 밝은 표정으로 말했다. 


      “저희가 제일 참신했어요! 이런 공연은 존재하지 않거든요!” 더블MC를 한 김소향 씨가 조금 높은 톤으로 강조하자 팀원들이 까르르 웃음을 터뜨렸다. 대중음악공연기획 공모전에서 선정된 이유를 묻자 그녀가 내놓은 대답이었다. “컨셉이 참신하고 기획의 완성도가 높다는 심사평이었어요.” “공연의 시작부터 끝까지 PT에 잘 녹여냈다고 했어요. 아이들 다 재우고 하룻밤 새워서 만든 건데” “어, 못 믿겠다는 표정이네요?” 저마다 한 마디씩 보태자 분위기가 왁자해졌다. 


      그녀들은 방금 승전을 거두고 돌아온 병사들이었다. 눈은 빛났고 뺨은 상기되었으며 표정은 당당했다. 그녀들이 힘을 합쳐 승리를 거둔 전장은 일명, 맘껏 콘서트! 엄마들이, 엄마들을 위해, 엄마로서 치룬 첫 콘서트였다. 


     '맘껏 콘서트'현장

    맘껏 즐겨라, 엄마의 시간

      맘껏 콘서트는 ‘엄마의 시간’ 팟캐스트를 방송하는 <엄마시간공작소>가 기획한 무대였다. 육아와 살림에 지친 아기 엄마들의 삶을 공감하고 위안할 수 있는 콘텐츠를 고민하던 중 대중음악 공연기획 공모전인 ‘마이리얼 콘서트’에 최종 선정되어 무대를 열었다. 엄마들이 아기들을 데리고 갈 수 있는 공연, 기저귀도 갈고 수유도 하며 아이와 함께 즐길 수 있는 공연, 살림과 육아에 지친 엄마들을 위안하고 격려할 수 있는 공연! <엄마시간공작소> 구성원 모두가 육아를 하는 같은 엄마이기에 이해할 수 있는 엄마 맘이었고, 꿈꿀 수 있는 무대였다. 


      상상의 무대가 열린 것은 8월29일 낮 12시, 서울 시민청 바스락홀. 싱어송라이터 ‘김연수’와 인디밴드 ‘좋아서 하는 밴드’의 공연이 있었고 엄마 공감 토크쇼가 진행됐다. 공연기획에 있어 무엇보다 중요한 기준은 아이와 엄마에 대한 배려. 엄마와 아이가 오기 좋은 시간과 장소, 엄마들의 맘과 교감할 수 있는 출연진, 공연장 내에서의 수유, 이유식 먹이기, 기저귀 갈기 등이 가능해야 했다. 공연장은 1호선 시청역과 연결되는 시민청으로 하고 공연시간도 영유아들을 데리고 이동하기 좋은 시간대로 정했다. 홀 바닥에는 매트를 깔아 아이들이 눕거나 움직이기 좋은 공간을 마련하고 아기돌봄 서비스를 제공했다. 그 결과, 공연은 예매를 통해 전석이 매진됐다. 당일 홀을 가득 메운 젊은 엄마들과 공연기획자들은 이전과는 다른 색다른 문화경험을 할 수 있었다.   


     '맘껏 콘서트'현장


    엄마, 그 두려운 미지의 영역

      아이를 키워본 사람이라면 안다. 육아란 참 미지의 영역이다. 달걀바구니를 들고 어두운 자갈길을 걷듯 한시도 마음을 놓을 수가 없다. 육아 전문서적과 인터넷에서는 찾을 수 없는 수많은 변수와 위급상황이 하루에도 몇 번씩 수시로 발생한다. 대부분의 초보엄마들에게 가정이란 쉼이 이루어지는 아늑한 공간이 아니라 시시각각 엄마의 능력을 입증해야하는 시험장이자, 하루하루 새로운 전투가 벌어지는 전쟁터다. 


      가정이라는 고립된 노동환경에서 엄마 개인의 몫으로 돌려지는 육아노동은 하루 24시간, 수면 중에도 이루어진다. 월차나 병가, 생리휴가가 있을 리 없고, 2교대를 기대하기도 힘들다. 직장 맘이라고 형편이 다르지 않다. 회사에서 가정으로 돌아오는 순간 업무가 바뀔 뿐이다. 아이와의 교감에서 오는 정서적 충만감이나 아이의 성장을 지켜보는 기쁨을 만끽할 여유도 없이 엄마들에게 출산 후 36개월은 사회에서 소외된 채 낯선 노동을 감당해야하는 길고 어두운 터널이 된다. 


       그러나 산후우울증과 사회적 고립감을 극복하고 육아기를 끝냈다고 해서 엄마에게 지워진 과제가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자녀의 교육과 입시, 취업, 결혼, 심지어 외모까지, 자녀 인생의 성공여부는 엄마의 몫으로 남는다. 그것도 덕이기 보다 탓이 되기 십상이다. 그래서 엄마는 늘 긴장상태다. 혹시라도 자신의 무능으로 인해 아이가 경쟁사회에서 낙오될까 두렵기 때문이다. 이 사회에서 자녀의 성적, 학교, 회사는 모성의 품질을 평가하는 잣대이자 여성 개인의 존재를 입증하는 절대적 평가치가 된다. 그래서 여성은 엄마라는 말에서 두려움과 함께 죄책감을 먼저 느낀다.


     '맘껏 콘서트'현장


    엄마, 미디어의 주체가 되다

      “남편도, 아이도, 밀린 설거지도, 잠시 잊어버리세요. 지금은 오로지 우리 자신만을 생각하기로 해요~ 팟캐스트, 엄마의 시간!” 

      ‘엄마의 시간’ 진행자들이 오프닝 멘트를 합창한다. 엄마라는 이름으로 뭉친, 스스로를 엄마 어벤져스라고 부르는 <엄마시간공작소>는 자신들의 방송을 이렇게 정의한다. “아이의 이야기를 쏙 뺀 엄마들만의 이야기, 진행자도 게스트도 청취자도 모두 엄마인, 엄마가 주인공인 방송!”(엄마의 시간-1화)


      팟캐스트 ‘엄마의 시간’은 2016년 5월에 첫 화 ‘엄마라는 직업’을 방송한 이후 9월 29일 현재 20-3화, ‘시댁을 부탁해’까지 방송되었다. 여성 모임은 엄마 모임이고, 엄마 모임은 학부모 모임인 사회에서 자식 이야기를 뺀 여성의 모임은 앙꼬 없는 찐빵과 같다. 이것이 이 사회의 모성규범이다. 엄마들이 모여 엄마 자신들의 이야기만을 하겠다는 뚝심은 그래서 반란이다. 가정을 사적공간으로 배제하고, 육아와 교육을 엄마의 문제로, 여성 개인의 책임으로 몰아가는 남성중심적 사회구조와 이를 조장하는 미디어환경에 대한 반란이다!

     


    ‘엄마’라는 존재의 재구성

      우리 사회에서 ‘엄마’라는 존재는 돌봄과 헌신의 아이콘에서 치맛바람과 맘충(mom蟲)으로 상징되는 혐오의 대상까지 극단의 위치에 서 있다. 그리고 좋은엄마와 나쁜엄마 사이에는 소비자본주의에 의해 제도화된 모성이 존재한다. 이 사회에서 여성은 임신과 함께 단계별 엄마규범과 그에 따른 소비 스케줄을 부여받는다.  생후 몇 개월에 어떤 이유식, 어떤 완구, 어떤 유모차, 어떤 학습지를 구매하느냐에 따라 ‘좋은엄마’, ‘능력 있는 엄마’라는 평가가 내려진다. 부족하면 나태하고 무능한 엄마가, 지나치면 치맛바람 일으키는 맘충이, 힘들다고 하면 “세상에 혼자만 애 낳아 키우는 것처럼 징징대는” 별난 여자가 된다.


      가습기살균제 사건이나 잇따라 발생하는 어린이집 사고에서 볼 수 있듯 육아와 교육에 있어 사회적 안전장치는 빗장이 풀렸다. 소비를 통한 좋은엄마 노릇은 잠깐의 위안과 안도감을 줄뿐 가정과 아이를 지켜낼 수 없다. 여성들 스스로 서로의 경험을 공유하고, 공감하고, 소통하는 과정을 통해 보다 근본적으로 문제에 다가가고 함께 해결방안을 찾아가는 집단적 모성이 필요하다. 그리고 미디어는 이러한 과정과 공간으로서 새로운 대안적 가치를 갖는다.  



    ‘새로운 엄마의 시간’을 만드는 <엄마시간공작소>

       ‘맘껏 콘서트’가 끝난 후 <엄마시간 공작소>에게 이번 공연에 대한 소감을 물어보았다. 


      “사실 이렇게 많은 분들이 올 거라고는 상상을 못했어요. 아무도 모르는 우리들이 기획한 콘서트에 누가 와줄까 생각했는데, 이렇게 시간 맞춰 자리해주신 분들이 실제로 있고 서로 만났다는 것만으로도 큰 소득이 아니었나싶어요” (디자인 담당, 김미애)

      “저희가 이런 공연은 처음 하다보니까 진행상의 보완사항은 굉장히 많을 거 같고요. 티켓이 나가긴할까 두근두근 하는 마음이었는데 그래도 이렇게 전석 매진되었고 엄마들로 홀을 꽉 채웠잖아요. 그래서 의미 있고 뿌듯했던 순간이었고 앞을 기대해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진행, 김지혜)

      “엄준한 잣대로 평가해보면 콘서트가 어수선하고 부족해요. 하지만 육아를 하며 혼자라고 느꼈던 아기엄마들이 팟캐스트 ‘엄마의 시간’을 들으며 혼자라도 웃을 수 있었고, 이렇게 콘서트를 통해서 함께 모일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저는 큰 의미가 있었다고 생각해요” (작가, 정유미)

      “저희가 준비한 것보다는 잘 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예상한 만큼은 성공적으로 끝났다고 생각하구요. 저희가 ‘엄마의 시간’ 팟캐스트를 통해서 이 자리를 마련했기 때문에 좀 더 많은 분들이 ‘엄마의 시간’을 들을 수 있도록 홍보 했어야하는데 그러지 못한 것이 아쉬워요.” (마케팅 담당, 박신애)

      “엄마에게도 음악이 필요하고, 안식이 필요하고, 엄마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어요. 그 장을 우선 만들어보자. 그것이 미흡하고 어수선하고, 이전에 공연장에서 느꼈던 전문화된 것은 아니지만 우선 그 장을 펼치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구요. 저희를 보며 엄마들이 자신의 삶에 안주하는 것이 아니라 나도 뭔가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볼 수 있다는 것이 중요한 거 같아요.” (PD, 김소향) 


      각 가정에 고립된 채 육아노동을 하는 엄마들이 서로 소통하고, 그 과정을 통해 스스로의 가치를 되찾고, 독립된 자아로서 엄마로서의 정체성을 재구성하는 공간으로서 <엄마시간공작소>가 중심이 되기를 바란다. 배제된 여성의 목소리를 담아내고 여성의 문제를 사회적 의제로 확장하여 사회로부터 주어진 ‘엄마의 시간’이 아닌, 엄마 스스로 만들어가는 ‘엄마의 새로운 시간’이 만들어지기를 기대한다! □ 


     [필자 소개] 이수미(ACT!)

      진보적미디어운동 연구저널 ACT! 편집위원. 미디어와 글쓰기를 오가며 가르치는 일을 하고 있다. 

      언젠가는 산골 라디오에서 DJ 할머니로 늙는 것이 꿈이다.


    ■ 참고도서 : 

    [엄마의 탄생](2014) 김보성, 김향수, 안미선/ 오월의봄 

    [엄마도 아프다-이 시대의 엄마 노릇](2016) 나임윤경, 김고연주, 로리주희, 박진숙 /이후

    Posted by 마중 서울마을미디어지원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