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마중① 마을+미디어+나


    동키 (창신동라디오방송국 덤)



    편집자 주 : <마중>에서는 2015년 한 해 동안 각 마을미디어에서 활동하고 있는 청년활동가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담은 '청년마중' 시리즈를 연재할 계획입니다. 청년들이 미디어로 마을을 만나며 겪는 좌충우돌 시행착오, 희로애락, 깊어가는 고민들을 풀어낼 '청년마중'을 기대해주세요!



    자기소개 : 너 뭐하는 놈이야?


     마을미디어 현장에서 담당하고 있는 필자의 업무를 소개하기 전에, 본인 소개를 먼저 하는 것이 맞다는 생각이 든다. 필자의 이름은 조금 특이하다. 성(姓) 부분이 그러한데 요즘 필자와 같은 성을 쓰는 연예인들이 나름 잘 되고 있는 것 같아 왠지 기분이 좋다.


     같은 성씨의 연예인들 중 한 명은 장미여관의 멤버이자 예능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에서 많은 사랑을 받는 사람이다. 이쯤 되면 대충 힌트는 다 주어진 것 같다. 이름은 실을 재(載) 와 인륜 윤(倫)을 쓴다. 작명소 할아버지가 어떤 의도로 필자의 이름을 작명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만약 인생을 이름처럼 살라는 뜻으로 지었다면 지금 필자의 삶의 경로가 이름과는 딱히 어울리지는 않는 것 같다......

     자기소개 하면 빠질 수 없는 나이나 장래 희망 등은 이 글을 읽는 독자들도 별로 관심이 없을 테고, 너무나 식상한 자기소개의 루틴이니 제쳐두기로 하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본 필자의 상태는 고백하는 것은 필요한 일이겠다.


     필자는 마을미디어 공동체 중 하나이며 종로구 창신동의 지역 밀착형 라디오 방송국, ‘라디오 덤’에서 상근활동가로 근무하고 있다. 좀 더 공식적으로 말하자면 한량 또는 청년백수 정도 되겠다. 



    라디오 덤에서 하는 일은? 

     

     주로 하는 일은 녹음 오퍼레이팅, 녹음 일자 조정, 녹음된 음원을 편집 후 카페에 업로드하고 전용 어플과 팟캐스트에 xml 코딩 처리 후 업데이트하는 등의 일이다. 또 2015 마을미디어 활성화 사업 매체사업 관리도 맡고 있다. 주로 회계장부(우리은행 보조금 시스템 이용) 정리와 사업일지 작성, 증빙서류 작성 등의 일을 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추가적으로 방송국 인테리어, 방송기자재 구매·관리·유지·보수, 청소·미화(…) 등의 일도 한다. 그리고 창신동 활동가들의 모임인 ‘창신마을넷’의 정기회의에 참석하고, 꼭대기 장터(마을벼룩시장) 창신소식지 제작 등의 소소(?)한 사업들도 같이 챙기고 있으며, 작년 종로구 관광화 사업과 매체사업의 일환인 봉제공장 USB 방송 배포와 설치한 스피커 관리, 모니터링도 함께 맡고 있다. 이렇게 늘어놓으니 엄청 많은 일을 떠안고 있는 것 같아 어쩌나 싶지만, 막상 닥치면 어떻게든 처리하게 되는 것이 사람 일이니 과중하다고 느껴본 적은 별로 없는 것 같다. 물론 야근은 밥 먹듯이 한다.(근데 어차피 출근시간 자체가 좀 늦다. 보통 오후 1시)

     이외에도 녹음실의 분위기 메이커, 녹음실의 한석율, 창신마을활동가 계의 유세윤을 맡고 있으며 각종 드립과 슬랩스틱 등을 연마하고 있는 중이다.



    근데 라디오 덤이 뭐야? 


     라디오 덤은 강북FM이나 구로FM 같이 넓은 단위(구 단위)의 지역을 커버하는 곳과는 달리 종로구 창신1~3동과 숭인1동을 중점적으로 커버하는 소규모 동네 라디오 방송국이라고 보면 옳다. 2013년 처음 개국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는데, 그나마 그럴듯한 스튜디오로서 구색을 갖춘 것도 작년 여름부터다.


     시작은 동네에 있는 ‘청암교회’(현재는 라디오 덤의 기본 베이스캠프로 쓰이고 있다)라는 민중교회의 허름한 쪽방이었다. 천장에서 한 방울씩 똑..똑 떨어지는 빗방울, 얄궂게 핀 곰팡이와 사투(?)를 벌여야 했지만, 그곳에서 게스트를 모셔 녹음도 하고 방송 송출도 했다고 한다. 개국멤버인 ‘동대문그여자’, ‘같이가면’, ‘조르바’의 열정이 새삼 느껴지는 대목이다.


     라디오 덤의 대표성과 특성을 한 문장으로 정리하자면, “라디오를 통해 창신동 주민들의 자기표현의 장과 커뮤니티 기회를 제공하고, 덤으로 행복까지 얻어 가는 공간”이 되겠다. 아! 깜빡하고 넘어갈 뻔 했는데 라디오 덤의 멤버들은 대부분 본명보다는 닉네임을 사용한다. ‘같이가면’은 조은형 국장, ‘조르바’는 조은형 국장님 인생의 동반자이자 라디오 덤의 정신적 지주와도 같은 박준만 님이다.(이름으로 불리기 싫어하신다) ‘동대문그여자’는 창신동에서 30년 넘게 봉제일을 하시는 김종임 선생님의 닉네임이다.



    라디오덤 과의 인연 그리고 지금까지의 소회

     : 마을미디어, 어디까지 가 봤니?


     마을미디어라는 단어를 처음 들었을 때 익숙하면서도 낮선, 양가적인 인상을 받았다. 그도 그럴 것이 마을과 미디어 각각은 우리에게 친숙한 단어지만, 이 둘을 서로 묶었을 때 풍기는 낯선 냄새는 언뜻 상상이 잘 안 가기 때문이리라. 작년 7월 동네에 라디오 방송국이 들어섰다는 소식을 처음 접했을 때도, 실제로 방송국 문을 두드리고 처음 나만의 방송을 만들어 나가는 기쁨을 누리게 될 때까지도, 마을미디어는 내게 어쩐지 멀게 느껴지는 단어였다. 개인적으로 마을과 미디어를 묶어서 생각해 본적도 없거니와 ‘마을’과 ‘미디어’란 단어를 각각 두고 봐도 표면적 의미 이상으로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다만 미디어의 경우 사회학을 전공한 만큼 잘 알지도 못하면서 비판적 의식만 그득했던 것도 사실이다.


     마을미디어에 대해 본격적으로 고민하기 시작한 것은 작년 여름 마을미디어 네트워크를 통해서였다. 이때도 라디오 덤과 방송으로 함께하게 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각 마을미디어 활동가들을 실제로 대면해서 함께 (술을..) 먹고 마시며 진솔한 이야기를 듣다 보니 활동가들의 고민과 희로애락을 공유하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마을활동가, 그 중에서도 마을미디어 라는 새로운 개념에 매력을 느끼고 점차 흥미를 가지게 되었던 것 같다.


     솔직한 말로, 처음 라디오 덤에서 방송을 하게 되었을 때는 덤의 스튜디오를 단순히 녹음하는 공간 이상으로는 생각하지 않았었다. 그땐 내 방송을 가지게 된 것에, 그리고 그것을 내가 책임지고 진행한다는 것에 남다른 자부심을 느꼈고 꽤 신이 나 있었다. 하지만 2014년도 2학기 종강을 하고 올해 2월부터 라디오 덤에 정식 상근활동가로서 결합하게 되었을 때, 새로운 세상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새로운 세상은 법인과 비영리 법인의 차이는 뭔지, CMS 등록에 필요한 서류, 거버넌스(governance)의 역할, 저작권법 같은 자잘하면서도 세상을 살며 꼭 알아야 할 내용들과 함께 펼쳐졌다. 그리고 심지어 사람을 설득하는 법, 부드럽게 말하는 법 등 대인관계에 관한 내용까지 포함된다. 모르는 것을 배워간다는 것 자체가 새로운 세상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필자에게는 ‘새로운 세상’ 같은 추상적인 표현 끝에는 항상 이렇게 구구절절하게 구체적 설명을 덧붙이는 버릇이 있는 점 양해 바란다. 물론 그 새로운 세상에 오퍼레이팅과 녹음파일 편집, 음향에 관한 전반적인 지식의 습득이 기본으로 깔려 있음은 두말하면 입 아프다.


     새로운 세상 ‘NEW’ 월드가 이제 나에게 열렸다. 이 세상을 나의 세계관으로 재창조하느냐 마느냐는 온전히 나에게 달린 것이다. 그래서 마을미디어가 더욱 매력적이다.



    마을과 미디어 우리 결혼 할 수 있을까요?

     : 그 쌍곡선에서 마주치는 교차점의 아름다운 포물선을 생각하며...


     개인적인 이야기를 먼저 하자면, 필자의 마을미디어 활동가로서의 경력은 이제 3개월 정도다.(마을미디어를 알게 된 것은 작년 여름부터니까 이제 갓 돌이 지난 셈이다) 업무에 어느 정도 익숙해지면서 마을미디어가 무엇인지 이제야 조금씩 감을 잡아가는 시점인 것 같다. 아무래도 여유가 좀 생겼다는 거다.


     그래서 그런지 예전에는 안하던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마을과 미디어가 만났을 때의 이질감에 대한 고민부터, 어느 샌가 외부인과 원주민을 분리해서 생각하는 나의 모습까지. 수많은 고민이 필자의 새벽잠을 물리치게 만드는 요즘이다.(물론 여기엔 한드‧미드‧일드 등 각종 ‘드’들과 쓰잘데기 없는 인터넷 웹서핑이 80%를 차지하긴 한다, 사람은 솔직해야 한다고 아버지는 말하셨다) 


     하지만 필자는 이런 고민들을 하는 것 자체를 걱정하지는 않는다. 예전 광고 카피처럼 “걱정하는 것을 걱정하지 않는 자세”, 바로 이 자세야말로 마을미디어 내공을 쌓는 운기조식 제 첫 초식에 해당된다고 생각한다.


     옛말에 애들은 싸우면서 큰다고 했다. 이 말은 특히 미디어 같은 전문분야에서 활동하는 이들에게 해당되는 말인 것 같은데, 이유는 끊임없는 자기 내면과의 싸움이 반드시 따라오기 때문이다. 그 싸움은 끊임없는 자기고민이 될 수도 있고, 자신들의 고민을 활동가끼리 허심탄회하게 털어놓는 대화의 장이 될 수도 있다. 아니면 그냥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실험해 보는 실험 정신일 수도 있겠다. 모두 각자의 방식대로 치열하게 싸우면서 성장하면 되리라 생각한다. 노파심에서 덧붙이자면 이 글을 읽는 분들이 문자 그대로 정말 애들처럼 서로 치고 박고 싸우란 말로 이해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마을과 미디어, 우리 결혼할 수 있을까요, 라는 말로 마지막 문단을 시작했다. 사실 마을과 미디어는 결혼까지 생각할 수는 없는 단계이다. 시쳇말로 이제 좀 서로 썸(Some)을 타는 단계라고 필자는 판단한다. 원래 사랑이라는 것이 감정의 산물이지 냉철한 이성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님을 우리는 익히 알고 있다. 마을과 미디어의 연애에도 똑같은 공식으로 접근하자.


     마을 만들기, 그리고 마을 안의 미디어 활동은 결코 ‘사업’이 되어서는 안 된다. 마을미디어로 가꾸어 나가는 마을 만들기는 그저 서로 느끼고 살아가는 방식인 것이다. □






    [필자소개] 동키


    창신동에서 믹서가지고 꼼지락 대는 청년






    Posted by 마중 서울마을미디어지원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