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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중' 편지

[5월_편지] 일곱 번째 마중편지 - 스스로가 미디어가 되자

by 공동체미디어 2014. 5. 14.



스스로가 미디어가 되자



 이주훈 (서울마을미디어지원센터 센터장)


  지금으로부터 34년 전 광주에서 국민의 군대가 자국민을 총칼로 무자비하게 학살하던 전대미문의 사태가 발생했습니다. 민주주의를 요구한 국민들에게 국가가 응답한 방식이었지요. 그런데 광주시민들은 이러한 학살을 자행하는 국가에 대해서도 저항했지만 이런 초유의 학살극을 교묘히 은폐하고 왜곡보도하며 광주학살의 참상을 외면하던 언론에 대해서도 커다란 분노를 표출하였습니다. 그리하여 광주시민들은 광주 MBC 사옥에 불을 지르는 상징적 행위를 통해  주류미디어의 왜곡보도에 응징을 가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언론이라 여기지 않고 광주시민 스스로가 대자보가 되고, 확성기가 되어 소식을 알려나가고, 정보를 수집하고, 대안을 찾고 향후 과제를 점검하는 역할을 하였습니다. 광주시민 스스로가 미디어가 된 것입니다. 

  34년이 지난 오늘. 장밋빛 미래로 넘실거리던 21세기에 들어선 지도 한참이 지났지만 우리는 또 다시 무고한 국민들의 억울한 죽음을 지켜봐야 했습니다. 세월호 참사는 사람보다 돈을 앞세우는 사회시스템의 변화가 원인을 제공했고, 무능력하고 무책임한 대한민국 정부에 의해 참사로 발전했습니다. 살릴 수도 있었을 소중한 꽃들을 바다에 수장시키는 믿을 수 없는 현장을 실시간으로 지켜봐야하는 끔찍한 사건이었습니다. 희생자 가족들과 국민들은 이러한 무능력한 정부에 분노를 표출함과 동시에 사고의 원인과 대처과정에서 보여준 정부의 무능과 구조실패의 책임을 은폐시키려는 주류미디어의 행태에 대해 기자들의 카메라를 뺏고 가자들을 기레기(기자+쓰레기)라 지칭하며 현장에서 내쫓는 것으로 분노를 표현했습니다. 34년 전 광주에서의 미디어와 34년 후 진도 팽목항에서의 미디어는 이렇게 평행이론처럼 만나고 있습니다. 진도 팽목항에서도 광주에서처럼 유가족들이 스스로 미디어가 되어야 했을까요? 그것만이 침몰하는 세월호를 멈춰 세워 그 안에 있는 아이들을 구조할 수 있는 길이였을까요?


  쉽지 않은 질문이지만 지금의 언론 문제에 대처하는 방법은 크게 네 가지가 있을 듯합니다.

  첫 번째로는 언론장악음모를 숨기지 않고 있는 정부를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최근 발표된 미국의 보수적 언론단체 프리덤 하우스에서 발표한 세계 언론자유지수에서 한국의 순위는 세계 68위였습니다. 이제 한국은 ‘언론자유국가’가 아니라 ‘부분적 언론자유국가’입니다. 참으로 창피스러운 일입니다. 국민들의 단합된 힘이 필요할 때죠.

  두 번째는 여전히 엄청난 매체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주류미디어에 대한 개혁투쟁입니다. 공영방송과 국가기간통신사, 그리고 상업미디어에 대한 감시와 견제를 통해 이들이 건강한 언론으로 제자리를 잡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합니다.

세 번째는 이른바 전문적인 독립미디어를 지지하고 응원하는 일입니다. <뉴스타파> ,<국민TV>, <팩트TV>, <고발뉴스>... 이외에도 수많은 독립미디어들이 온몸으로 진실을 마주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들의 활동이 더 활발하게 이루어지도록 하는 일이 필요합니다.

  마지막으로는 국민들 스스로 미디어가 되는 것입니다. 광주민중항쟁 당시 시민들이 그러하였듯이, 목마른 자가 우물을 파야합니다. 스스로 자신들의 이야기를 전달하고 중지를 모아가는 행위를 통해 자신과 지역사회의 변화를 이끌어내야 합니다. 마을미디어의 활성화가 바로 그것입니다.


  마을미디어는 국민들 스스로 미디어가 되는 바로 그 길 위에 있습니다. 언론을 감싸고 있는 정치환경의 변화도, 주류언론이 저널리즘 본연의 역할에 충실한 것도, 대안언론이 전문적인 역할을 하는 것도 다 중요합니다만, 마을미디어가 활성화되고 곳곳에 마을방송국이 생겨나는 것도 못지않게 중요한 일입니다.

  지난 2011년 동일본 대지진과 쓰나미가 발생했을 때, 그리고 이후 수습과정에서 지역의 공동체라디오(긴급라디오)는 상상이상으로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이재민의 행방에 관한 소식, 구호물자의 배급처 및 수령방법, 지원봉사 그룹간의 협조 및 피해자들에 대한 외상치료를 위한 프로그램 제공, 구호활동 향상을 위한 지자체와의 교섭 등을 진행하여 실질적인 구호활동이 전개되도록 역할을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재난관리의 4단계라고 하는 <초기경고-긴급대처-재건 및 복구-미래 재난의 피해완화와 대비>의 모든 단계에서 해당 지역 이해당사자들이 정보를 공유하고, 의사소통과 토론을 통해 의사결정을 할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또한 유엔지역개발센터(UNCRD)에서도 2002년부터 지역에 기반을 둔 재난대책관리 (Community Based Disaster Management, CBDM)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재난대책관리의 가장 강력한 도구로서 지역공동체의 임파워먼트와 지속가능성을 드는데, 바로 마을미디어가 이 역할을 가장 잘 할 수 있습니다. 즉, 재난을 예방하거나 위험을 줄이고, 재난이 발생했을 때에도 그 피해를 최소화하는 가장 훌륭한 방법이 바로 마을미디어라는 것입니다.


  세월호 참사라는 참혹한 현실을 마주하며 우리는 다시금 국가와 언론이 왜, 무엇 때문에 그리고 누구를 위해서 존재하는지 질문하게 됩니다. 세월호 참사로 아들을 잃은 고 박수현군의 아버님이 아들에게 보내는 가슴 절절한 편지는 이렇게 마무리됩니다. “추신. 그곳에서는 대한민국의 언론을 듣지도 믿지도 말아라, 절대.” 이 안타까운 현실을, 이 비루한 질서를 바꾸는 것, 그것이 바로 아이들을 바다에 묻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 가슴에 묻고 다시는 이런 비극을 되풀이 하지 않겠다는 약속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제 곧 있으면 지방자치선거와 월드컵 시즌이 다가옵니다. 씨랜드 화재참사도, 대구지하철 참사도 그렇게 잊혀져갔습니다. 불행히도 참사의 피해자와 유족들은 여전히 고통 받고 있고, 우리는 어떤 교훈도 얻지 못했습니다. 이제는 달라져야 하고 그럴 수 있습니다. 상처받은 사람들이 그들의 내밀한 언어로 서로의 상처를 보듬고, 희생자들을 기억하며, 그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게 감시하고 참여하여 사고의 재발을 방지하도록 하는 활동이 필요합니다. 일본의 사례에서 보듯이 지역의 공동체미디어인 마을미디어는 그런 역할을 훌륭히 수행할 수 있을 것입니다.


  부디 우리 모두가 좌절하지 않기를, 실패하지 않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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