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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중' 편지

[9월_편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 스물네 번째 마중 나갑니다

by 공동체미디어 2016. 10. 7.

[마중 24호 편지 2016.10.11]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이경진 (서울마을미디어지원센터)





 지진에 태풍에 하수상한 요즘, 모두 안녕들 하신가요? 엊그제만 해도 낮 시간에 30도 가까이 올라가던 기온이 오늘 아침은 10도 아래로 뚝 떨어졌네요. 아직 겨울을 맞이할 준비가 여러모로 안 되었는데, 이상기온이 마음마저 급하게 하는 듯합니다.

 얼마 전 울산과 경주에서 발생한 5.8도 규모의 지진이 한국을 불안에 휩싸이게 했죠. 사실 서울 사는 둔탱이 필자는 지진이 온 줄도 몰랐지만, 당시 모바일 메신저나 휴대폰 통화 및 문자가 일시적으로 마비되면서 주변 사람들의 우려 섞인 연락이 한동안 이어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번 지진을 겪으며 우리를 더욱 불안하게 했던 건, 세월호 이후 여전히 달라진 것 없는 재난 대응과 안전망이기도 했습니다. 한여름 폭염주의보로 시도 때도 없이 알람을 울려대던 스마트폰 긴급재난문자는 관측 이래 한반도 역대 최대 규모의 지진 상황에는 조용하기만 했고, 이런 상황에 대처해야 할 국민안전처 홈페이지는 당시는 물론 이후로도 한참이나 접속 불능 상태였으니 말입니다. 심지어 부산의 한 고교 3학년 심모군이 페이스북에 “저희 학교는 1, 2학년만 귀가시킨 후 그대로 자습을 강요했다”고 밝혔고, 부산의 또 다른 학교는 학생들에게 “방금 잠깐 여진이 있었으나 공부하는 데는 지장이 없으니 자습을 마저 하라”고 했다는 보도가 잇따랐다네요. 2016년 대한민국은 여전히 ‘안전’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지진 발생 일주일 후인 9월 19일 저녁, 한 개발자가 지진 알림 시스템을 직접 만들어 화제를 모았습니다. 바로 ‘지진희 알림’인데요. 이 시스템은 스마트폰 메신저 어플리케이션인 텔레그램을 깔고 가입 주소(https://telegram.me/jijinhee_noti)로 들어가면 지진 발생 시 알림을 받을 수 있다고 합니다. 원리는 이렇습니다. 인터넷 사용자들이 지진이 발생하면(본인이 지진을 느끼거나 그 소식을 접하면) 온라인 커뮤니티인 ‘DC인사이드’ 게시판 중 탤런트 ‘지진’희 갤러리에 집중적으로 글을 올린다는 점에 착안해, 이 갤러리를 30초마다 검사해서 1분 안에 글 20개가 올라오면 이상 상황으로 간주하고 텔레그램 메시지를 보내는 것입니다. 실제로 국민안전처가 12일 지진 발생 당시 긴급재난문자를 12분이나 지난 시점에 발송했고, 그마저도 받지 못한 사람들이 많은 데 반해 지진희 알림은 지진 발생 최소 2분 안에 ‘이상 상황’임을 알릴 수 있다고 합니다.




▲ 지진희 알림 (출처 : 노컷뉴스)


 물론 이 민간 알림(?)은 오보의 가능성도 적지 않고, 정확히 어디에서 지진이 발생했는지 등 정확한 정보를 제공할 수도 없습니다. 개발자는 “지진이 일어나면 TV 뉴스 속보나 국민안전처 재난 문자메시지보다 지진희 갤러리가 더 빠르다는 인터넷의 떠도는 우스갯소리를 실제로 구현해본 것”이라며, “이런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한다는 점에 우선 안타까움을 느낀다”고 밝혔습니다.(*주1)


 그런데 이렇게 민간에서 직접 미디어를 통해 재난에 대응한 사례는 세계 곳곳에 있습니다. 한국보다 훨씬 일찍 지진의 위협에 직면했고, 덕분에 각종 대책도 잘 마련되어 있는 일본, 하지만 일본에서도 1995년 고베 대지진 당시에는 우왕좌왕 하고 있었습니다.


 “지진이 나자 지역에서 각종 소문과 유언비어가 난무했어요. 지진에 대한 정확한 소식을 한국어, 베트남어로 알려주는 것이 우리 방송의 목적이었지요. 하지만 저희는 방송면허가 없는 50와트(w)의 해적방송이었어요. 그러나 누구도 이 방송을 말릴 수 없었습니다. 왜? 일본사람 뿐 아니라 외국 사람에 대해 구체적 정보를 가지고 있는 건 FM와이와이 뿐이었으니까요.”

 - 히비노 준이치(일본 공동체라디오 FM와이와이 당시 대표)


 방송면허도 없이 시작한 50w의 해적방송은 1년 후에 중앙정부로부터 방송허가를 받게 됩니다. 부탁한 게 아니라 중앙정부가 먼저 허가를 내 주었다는데요. 왜 정부가 불법 해적방송에게 허가를 해줬을까요? 준이치 대표는 공동체 라디오가 재난 상황에서 큰 역할을 한다는 것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라고 강조합니다. 고베 대지진을 계기로 몇 개 되지 않았던 공동체 라디오는 일본 전역으로 확대되었고, 2011년까지 248개로 늘어난 바 있습니다.

 미국에서도 재난 상황에서 공동체 라디오는 큰 역할을 했습니다. 2005년 초대형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미국 남부 지역을 강타했을 당시, 전국 규모 방송사들이 음악방송을 내보낼 때 공동체 라디오 방송국들은 전기가 끊기고 물이 차오르는 환경에서도 재난방송을 계속했으며, 영어가 아닌 제3세계 언어권의 이주민들에게도 그 나라 언어로 재난방송을 실시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지난 10월 5일, 배덕광 새누리당 의원은 YTN 라디오 인터뷰를 통해 ‘라디오방송을 수신할 수 있는 장치를 휴대폰에 의무화’하는 법안을 발의했다고 밝혔습니다. 배 의원은 “모든 스마트폰에는 라디오 수신이 가능한 하드웨어가 되어 있지만, 한국은 이동통신사들이 이 기능을 작동하지 않도록 해놓은 것”이라며,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만으로 라디오 수신이 가능케 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주3)




▲ 전국 공동체라디오 지도

(출처 : 진보적 미디어운동 연구저널 ACT! 95호 특집 http://actmediact.tistory.com/285)



 2016년 10월 현재 주파수를 보유하고 활동 중인 지역 공동체 라디오는 전국에 단 7개뿐입니다.(*주4) 이 숫자는 11년 전인 2005년 시범사업으로 시작했던 8개에서 오히려 한 개 줄어든 숫자로, 그 동안 단 한 곳도 늘어나지 않았습니다. 물론 마을미디어라는 이름으로 라디오 방송 제작 활동을 하고 있는 매체는 서울에만 수십 개에 달하지만, 마포FM과 관악FM을 제외하고는 모두 주파수 없이 온라인 팟캐스트로만 방송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물론 이 수십 개(전국 규모로 보면 아마도 훨씬 많은 수)의 마을라디오 대부분이 아직은 12시간, 혹은 24시간 상시 방송이 불가능한 소규모 방송국입니다. 그러니 마을 공동체 라디오와 주파수, 재난방송은 우리 모두의 숙제로 남아 있다고 볼 수도 있겠지요.

 중앙에서 일괄적으로 쏘는 방송이 아닌, 내가 속한 공동체의 피부에 와 닿는 정보를 평소에도, 재난 상황에도,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가장 빠르게 접할 수 있는 통로로서의 ‘마을미디어’. 위에서는 라디오 주파수를 중심으로 적었지만, TV, 인터넷, SNS, 신문, 잡지, 게시판 등 어떤 매체를 사용하든 마찬가지입니다. 작은 단위에서 구성원의 필요 정보를 가장 빠르고 가깝게 전달할 수 있는 콘텐츠 생산과 소통 역시 마을미디어의 역할이라면,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머네요.


 태풍이 한 발짝 지나간 자리에서, 마을미디어의 역할을 다시 돌아보고, 또 앞으로를 내다보며, 스물 네 번째 마중 나갑니다. □




*주1 [연합뉴스] “안전처 못 믿겠다”... 네티즌이 새 지진 알림시스템 개발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6/09/20/0200000000AKR20160920126400004.HTML


*주2 [진보적 미디어운동 연구저널 ACT! 76호] [이슈와 현장] 지금이 재난이다! - ‘지역 재난방송과 공동체 라디오’ 국제 토론회를 마치고...

https://www.mediact.org/web/media/act.php?mode=emailzine&flag=emailzine&subno=2610&subTitle=%C0%CC%BD%B4%BF%CD+%C7%F6%C0%E5&keyno=2624


*주3 [YTN 라디오(FM 94.5)] 신율의 출발 새아침 - 배덕광 “지진, 태풍 대형재난 대비, 휴대폰 라디오 수신 기능 절실”

http://www.ytn.co.kr/_ln/0101_201610050905155297


*주4 [진보적 미디어운동 연구저널 ACT! 95호] [특집] 공동체라디오, 백 개의 역사

http://actmediact.tistory.com/2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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