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중 24호 인터뷰 2016.10.11]
동네가 사는 소리, 용산FM에서 만나요!
이한솔(남산골 해방촌)
동네를 걷다가 그곳을 처음 보았다. ‘종점수다방’이라는 정겹고도 낯선 이름의 현수막이 붙어있었다. 궁금증을 못 이겨, 건물 계단을 올라가 빼꼼히 문을 열고 몇 마디 건넸던 것 같기도 하다. 동네에서 살아간다는 게 뭘까, 내가 15년 넘게 머물고 있는 후암동에는 대체 어떤 사람들이 살고 있을까 호기심만 가득하던 때였다.
어느 날 그곳엔 ‘용산FM’이라는 이름이 하나 더 생겼다. 해방촌 잡지 ‘남산골 해방촌’을 같이 만드는 마을 젊은청년 K군이 음악방송을 하고 있다는 얘기도 들었다. 어린이부터 어르신까지,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물론 방송을 듣는 것만으로도 충분하겠지만, 어떤 사람들이 용산FM을 만들고 목소리를 계속 이어가고 있는지 궁금했다. 아직 풀리지 않은 궁금증들을 해결하기 위해 용산FM의 시작부터 지금까지 운영을 도맡아온 황혜원 대표, 일당백 든든한 청년활동가 막내를 만났다. 두 분과 함께 우리 동네가 살아가는 소리, 동네가 살아나는 소리의 정체를 밝혀본다.
마중: 용산FM에 대해 간단히 소개 부탁드린다. 언제부터 시작하셨는지? 예전에 종점수다방이라는 이름도 본 기억이 있다.
황혜원 대표(이하 혜원): 종점수다방은 2011년 9월에 주민들 사랑방 격으로 만들어진 공간이다. 처음에는 마을미디어가 아니라 공방이나 부모커뮤니티 사업 등 여러 활동을 하는 곳이었다. 용산FM이라는 이름으로 마을미디어 활동을 하게 된 건 그 다음이다. 2012년 우리마을미디어문화교실 지원을 받아 라디오 팟캐스트 교육을 했는데, 해보니까 제가 할 수 있을 정도면 누구라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되었다.
마중: 당시 종점수다방에 함께하던 분들하고 라디오도 같이 하신 건가?
혜원: 그렇다. 초반에는 주로 동네 어머니들과 했었다. 몇 회쯤 하다 없어진 방송들도 있지만 ‘왕언니가 왔다’ 방송은 지금도 하고 있다. 진행자 두 분 중 한 분인 이준 언니도 2012년도 교육에 직접 찾아오셨던 분이다.
2013년부터 시작한 ‘엄마와 딸의 동상이몽’은 저를 포함한 두 엄마와 딸들이 진행하던 프로인데, 아이의 성장과 진로를 주제로 잡았다. 이 방송은 작년 4월말까지 거의 80회 가까이 진행했는데, 우리 애가 고3이 되어서 작년부터 쉬고, 올해는 또 다른 아이가 또 고3이 되고 해서 더 이어가지 못했다. 같이 하던 엄마는 좀 서운해 했지만 그래도 어쩌겠나.
마중: 이야기 들어보니 지속적으로 함께하는 분들이 많은 것 같다.
혜원: 그렇긴 하다. ‘음악잇수다 시즌2’ 방송 하고 있는 K군도 꽤 오래 됐는데, 이것도 지금 마무리 단계다. 또 붙잡아 계속 같이 하자고 해야 하는데 (웃음)
마중: 막내도 본인 소개와 함께 용산FM과는 어떻게 인연이 닿으셨는지 말씀해 달라.
활동가 막내(이하 막내): 저는 용산FM 청년활동가 ‘막내’라고 한다. 용산FM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된 건 작년 겨울이었다. 근처에 살고 있는데, 지나가다가 음악학원이 있기에(바로 옆에서 여전히 성업 중이다) 드럼 배우려고 이 건물에 올라온 적이 있다. 바로 옆에 종점수다방이 있는 걸 보고, ‘뭐하는 곳인가’ 궁금하게 생각만 하다 돌아갔던 기억이 있다.
어느 날 같은 동네 사는 좌인이라는 친구가 본인이 방송 진행하고 있는 용산FM이라는 곳에서 프로그램별 소개 그림을 그려줄 일러스트레이터를 찾는다고 제안을 해왔다. 그래서 작년 겨울에 딱 왔는데, 와보니까 그 때 지나쳤던 여기였다. 지금 올라가 있는 이미지들 중에 십대별곡 빼고는 다 제가 그린 것들이다. 일이 끝나고는 1년간 일할 활동가를 구한다는 소식을 듣고 다시 지원해서 지금까지 오게 됐다.
마중: 홍보 쪽의 일을 주로 담당하고 계신 건가?
막내: 그런 건 아니고 방송 녹음, 편집, 업로드까지 다 한다. SNS도 관리하고. 워크숍 참여도 하고, 포스터나 리플릿 디자인도 한다.
마중: 거의 만능 수준이다. 방송 진행은 안하나?
막내: 방송 하고 있는 건 없다. 사실 하고 싶은 것이 있긴 한데. 남들이 안 들을 것 같아서 생각만 하고 있다. 동네에서 아무 소리나 녹음해서 30분 동안 그 소리만 트는 거다. 할머니들이 길에 앉아있으면 30분 동안 슬쩍 녹음하고, 나중에 허락 받아가지고 방송에 튼다거나? 놀이터 애들 소리일 수도 있고.
마중: 재미있을 것 같다. “용산의 소리를 찾아서” 같은 느낌? 아카이브로도 의미가 있을 것 같다.
혜원: 시간은 많이 들겠지만, 해보면 의미 있는 결과가 나올 것 같다.
활동가 막내의 정성어린 그림이 가득 담긴 용산FM 홍보물을 받아보았다. 마을라디오를 같이 해보자는 말을 재미나게 건네는 ‘용둘기’(무려 용산 사는 비둘기가 홍보의 주인공이다!), 가지각색 방송의 특성에 맞는 그림들이 아기자기하게 담겨있다. 그림이 궁금하신 분들은 용산FM 페이스북 페이지에서 만나보시라. (www.facebook.com/yongsancommunityradio)
마중: 리플릿에는 9개 방송이 실려 있는데, 더 생겨난 방송은 없나?
혜원: ‘내가 사랑한 문장들’은 종방을 했고, ‘책 읽는 엄마’는 구성원에 변동이 좀 있다. ‘굿바이 용산화상경마장’은 일단 올해까지 방송하기로 되어 있다. 그 사이 ‘수다스러운 쌍둥이’라는 방송이 새로 시작했다. 해방촌에서 나고 자란 남성 두 분인데, 쌍둥이다. 두 분 다 애 아빠인데, 시사 이슈를 포함한 다양한 이야기를 수다 떠는 방송이다.
현재 용산FM은 주로 주민들 각자가 원하는 방송을 하도록 지원하고 있다. 더불어 앞으로는 녹색(환경) 의제를 다루는 방송이나 용산에서 마을 활동이나 이런 저런 활동을 하고 있는 분들을 초대해서 인터뷰하는 방송 등을 해보고 싶다.
마중: 사실 인터뷰 오기 전에 방송을 좀 들어보고 와야지 했는데, 생각보다 방송이 많더라.
혜원: 그게 참 쉽지 않은 일이다. 요즘은 TV도 ‘무슨 프로그램 봐야지’ 생각하다가도 툭하면 놓치고 못 챙겨보지 않나. 특히 주파수 있는 라디오 방송은 켜놓으면 계속 나오는 거지만, 우리 같은 팟캐스트는 굉장한 마니아 아니면 사실은 찾아서 듣는다는 게 참 힘든 거다.
마중: 용산FM을 듣는 분들은 어떤 분들인지, 또 얼마나 되나?
혜원: 그건 영업비밀인데... (웃음) 사실 지금 용산FM은 일종의 개편기다. 새로 시작하는 마음으로 새로운 진행자들을 찾아나서야 할 때인 것 같다.
올해의 목표가 개별 방송들을 띄워주자는 거였다. 예를들면 아무리 용산FM을 자주 듣는 분이라도 ‘책 읽는 엄마’ 방송을 보고 오는 사람은 거의 그것만 듣는다. 따라서 방송국 자체의 인지도를 올리는 것도 효과가 있지만, 개별 방송의 파워도 중요하다. 그러려면 진행자들이 자기 방송 홍보를 많이 해줘야 한다. 우리 같은 데는 직접 하지 않으면 아무도 해주지 않는다. 각자 진행자가 해야 할 역할이 크다. 본인이 블로그도 올리고, 지인들한테 알리고, 그런 노력이 중요하다. 계속 주변에 들어보라고 제안도 하고.
마중: 주민들, 청취자들을 직접 만나기가 쉽지는 않을 것 같다. 저희 잡지처럼 손에 잡히는 콘텐츠면 나눠주기라도 하는데.
혜원: 지난번에 공개방송을 도서관하고 같이 하니까 공간도 확보 되고 무엇보다 홍보가 잘 돼서 좋더라. 그런 의미에서 물론 쉽지는 않지만 지역의 기관과 뭔가 함께하는 게 확실히 이점이 있긴 하다.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이곳의 이름이 왜 ‘종점수다방’이었는지 알 것 같다. 어제 본 영화, 좋아하는 음악, 아이에게 읽어주던 동화책 등 동네 사람들이 살아가는 소소한 이야기에서부터 화상경마장, 남산 공원, 도시재생 등 지역의 이슈에 대한 의견들까지 다양한 얘기를 펼쳐놓을 수 있는 곳이 바로 이 곳 ‘용산FM’이다.
마중: 처음 활동을 시작할 때 상상했던 용산FM의 모습이 있었을 텐데, 지금 돌이켜보면 어떠신지?
혜원: 앞으로 남겨진 과제가 많다는 생각이 든다. 나름 활동 햇수가 좀 되다 보니, 이제는 즐거움만으로 가는 건 아닌 것 같다. 아직은 개별 방송 진행자들의 의지와 욕구에 많이 기대서 하고 있지만, 앞으로는 지역의 미디어로서 소통의 창구로서 기능을 해야 할 것이다. 작지만 지금도 노력하고 있고. 그러려면 방송국 체계나 공간도 제대로 갖춰야 할 텐데, 고민이 많다.
일단 녹음실 없이 지금까지 활동을 하고 있는데, 이게 참 힘들다. 녹음 중에 문 열고 들어오는 사람들 있으면 조용히 시켜야 한다. 올해 공간 문제를 해결 못한 게 참 아쉽다. 한 편으로는 이 동네에서 우리가 원하는 공간을 얻을 수 있을까 걱정도 된다. 이 동네 월세가 너무 올라서.
지금 운영진이 제대로 구성이 안 되어 있는 것도 문제다. 2014년도까지만 해도 방송 진행자 전체가 모여서 식사도 하고, 미래에 대해서 이야기도 나눴는데, 올해는 그렇게 못했다. 공간 문제나 앞으로 계획에 대해 같이 고민할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
마중: 고민이 많으시겠다. 내부적으로 구조를 만들고 운영해나갈 사람 찾기도 힘든데, 지역 안으로 확장하는 것에 대한 고민도 있고. 그래도 무엇보다 사람 찾는 게 급할 것 같다. 막내는 1년쯤 같이 하셨는데 용산에 사는 사람, 또 일하는 입장에서 용산FM은 어떤 곳인가?
막내: 개인적으로는, 아깝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용산FM이 있다는 것 자체를 모르는 사람이 너무 많다. 처음 소개시켜 준 친구가 말해주지 않았다면 나도 몰랐을 테고. 작은 방송국이지만 나름 방송 하실 때 다들 공부도 많이 하시고 준비 열심히 하는데, 방송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아서 너무 아쉽다. 용산FM에서 ‘내가 사랑하는 문장들’ 방송 진행하던 분은 이거 하다가 작가의 꿈이 생겨 지금은 아카데미 들어가셨다. 그런 걸 보면 용산FM은 마을의 미디어라는 큰 역할도 있지만 주민들의 취미이기도 하고, 각자의 자아 성취에도 정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마중: 막내는 앞으로도 용산FM 활동을 계속 하실 계획인가?
막내: 저는 12월 말까지. 제 경우에는 앞으로 그림 쪽 일을 더 하고 싶어서 활동을 마무리할 예정이다. 하지만 방송 쪽에 관심 있는 친구들이 이런 저런 경험을 해보기에 1년은 너무 짧다. 방송국 입장에서도 힘을 좀 받을만하면 사람이 바뀌니까 좋지 않다. 활동가들이 적어도 2-3년은 함께할 수 있도록 활동기간을 보장해줄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마중: 마지막으로 용산FM과 황대표님의 앞으로의 계획은?
혜원: 공간문제도 해결해야 하고, 방송을 새로 시작하는 마음으로 진행자 모아서 새 활력, 에너지를 찾아야 할 것 같다. 또 용산FM이 기획하는 용산FM만의 방송을 더 많이 만들어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기본적으로는 용산 지역 내에서의 소통부터가 해결과제다. 내년에는 용산의 젠트리피케이션 문제와 관련한 방송을 해보면 어떨까 구상 중이다. 물론 지역의 민감한 주제를 미디어에서 다룬다는 것이 쉽지만은 않겠지만, 소소하게 다양한 목소리를 전해주는 것도 우리 역할 중 하나 아닐까 한다. □
동네 모퉁이 공간에 끌려 우연히 찾아온 사람이 벌써 둘이다. 인터뷰 내용을 꼼꼼하게 읽어보신 분들은 아실 테지만 필자와 막내가 그랬다. 막내는 활동가가 되어 용산FM과 깊은 인연을 맺었고, 필자도 앞으로 ‘해방촌이다’ 꼭지에 진행자로 참여할 예정이다. 이렇듯 용산FM은 앞으로도 많은 사람의 호기심을 자극하며, 더 많은 사람들의 목소리를 전할 것이다. 마을 활동의 즐거움을 유지하면서도 지역방송의 정체성을 모색하며 말이다. 마지막으로 황혜원 대표의 말씀처럼 다양한 소리의 의미를 고찰한 책의 한 구절을 인용하며 글을 마치고자 한다.
“이렇듯 지구는 섬세하게 균형을 이루며 퍼져가는 소리들로 활기가 넘친다. 다양한 동식물들이 자리 잡은 모든 곳이 공연장이며, 어디에서든지 각각의 종이 특정 파트를 연주하는 독특한 자연의 오케스트라를 만날 수 있다. 고도로 진화되고 단련된 자연의 걸작이다.”
- 『자연의 노래를 들어라』 (버니 크라우스 著, 장호연 譯)
[필자소개] 이한솔(한도리) (남산골 해방촌)
타고난 호기심 덕분에 죽기 전에 백가지 일 정도는 해봐야지 하며 다사다난한 인생을 경험하고 있다. 후암동 주민 경력 20여 년, 옆동네 해방촌 동네잡지 <남산골 해방촌>을 함께 만들어 왔으며 최근에는 지역에 발붙이고 살아가는 연습을 톡톡히 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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