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과 뉴미디어를 잇는 상상

    뉴미디어 특강 후기

    양제열 (용산F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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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젠가 소설가 아서 C. 클라크는 “충분히 발달한 과학은 마법과 구분할 수 없다.”고 말했다. 맞는 말이다. 기술이 우리의 이해를 넘어서지만 분명히 작동할 때, 우리 눈에 기술은 마법으로 보인다. 자명종을 처음 본 우리 조상들은 그것을 도깨비의 장난이라고 여기지 않았을까? “상상을 불어넣는 뉴미디어 특강”을 보는 내 심정도 그랬다. 


    하얀 방과 가구에 프로젝터 빔을 쏘이자 색색의 무늬로 물드는 광경(프로젝션 맵핑), 거대한 건물 외벽이 디스플레이가 되어서 야경을 밝히는 모습(미디어 파사드), 증강/가상 현실을 이용한 이케아의 광고까지 눈을 의심하게 하는 기술들이 끊임없이 소개 되었다. 거기에 요즘 얼리 어답터들에게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드론과 VR 체험 안경 같은 예까지, 뉴미디어의 종류를 짧은 시간 안에 일별할 수 있었다. 이런 뉴미디어들은 우리가 믿는 현실과 가상의 엄격한 구별을 흩으려 놓는 것이 목적인 것처럼 보였다.


    강의의 화룡점정은 프랑스 낭트에 정착한 뉴미디어 활동가들의 작품이었다. 그들은 뉴미디어를 낭트의 관광물로 탄생시켰고 여전히 활발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고 했다. 프랑스-중국 수교를 기념하는 로봇 용의 생동감 있는 모습보다, 예술과 일상이 마을이라는 생활 공간에서 함께 숨쉬는 것이 참 부러웠다. 




    ▲ 뉴미디어 특강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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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강연을 들으면서 슬며시 의구심이 들었다. 당장 마을미디어 활동가들이 마을에서 이런 기술들을 얼마나 활용할 수 있을까? 마을 미디어가 처음 시작했을 때 영상이 수적으로 우세했지만 지금은 라디오가  더 많이 살아남고, 새로 진입하는 마을미디어 가운데 라디오가 다수인 데에는 기술의 진입장벽이라는 요소가 분명 작용했다. 영상은 라디오보다 품이 많이 들고 더 많은 기술이 필요로 하기 때문에 이 턱을 넘지 못하는 일이 많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영상보다 더 많은 기술과 프로그램 숙달이 필요한 뉴미디어는 얼마나 마을에 뿌리 내릴 수 있을까? (이날 최석영 강사님은 이런 기술을 구현하기 위해 필요한 프로그램 이름을 줄줄이 나열했다.)


    이에 대해 강사님은 뉴미디어를 통해 마을미디어가 이슈를 만들 수 있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또한 소개한 뉴미디어 가운데 특히 가상 현실, 증강 현실이 마을과 뉴미디어를 잇는 고리가 될 수 있을 것 같으며 잘 찾아보면 뉴미디어를 알려주는 강좌들과 학습 사이트가 많다는 말도 덧붙였다. 한편으로 마을미디어가 보이는 라디오 등을 시도하여 유튜브 같은 주류 플랫폼으로 나왔으면 좋겠다는 충고도 함께.


    완전히 수긍이 가지는 않았지만 분명 일리 있는 지적이었다. 2010년대가 되자 스마트폰이 폭발적으로 보급되었던 것처럼 뉴미디어 기술 가운데 어떤 것들은 분명 우리 일상을 파고 들 것이다. 더구나 라디오는 기술 장벽이 낮은 대신 영상의 폭발력을 갖추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기술은 바이러스와 같아서 최신 기술이 기존의 기술을 완전히 몰아내는 일은 잘 일어나지 않는다. 사람들은 텔레비전이 등장하자 라디오가 사라질 것이라고, 혹은 인터넷이 등장하자 라디오가 사라질 것이라고 떠들었지만 라디오는 살아남았다. 되레 라디오는 우울한 예언과는 달리 신기술과 접목되어 인터넷 라디오나 보이는 라디오 같은 형태로 새로운 생명력을 얻었다. 결국은 뉴미디어가 어떻게 올드미디어를 변화시킬지, 그리고 그것이 마을과 어떤 관계를 맺을지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 뉴미디어 특강 중 로봇 시연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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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 다른 소설가 윌리엄 깁슨은 "미래는 이미 와 있다. 단지 널리 퍼져있지 않을 뿐이다."라고 말했다. 멋진 말이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이 주장을 다음과 같이 고쳐 읽어야 한다. 미래는 이미 우리 곁에 와 있다. 그러나 하나의 미래가 아니라 여러 개의 미래가 와 있으며 어느 미래가 궁극적으로 널리 퍼질지 우리는 알 수 없다. 


    다시 말해, 이 날 소개받은 여러 뉴미디어 중 어느 것이 라디오나 텔레비전, 페이스북처럼 우리 삶을 파고들지, 아니면 끝내 너드(nerd)들의 장난감으로 남을지 우리는 아직 모른다. 


    그럼에도 뉴미디어가 마을과 어떻게 접합될 수 있을지 상상해보는 것 역시 필요하다. 두 손 놓고 변화가 닥치기만을 기다릴 수는 없으니까. 게다가 뉴미디어가 마을과 만나는 방식은 어느 정도는 전문적인 뉴미디어 아티스트 뿐 아니라 마을에서 활동하는 마을미디어 활동가에게도 달려 있을 것이다. 새로운 현실을 상상하는 힘뿐 아니라 마을을 살피는 애정 역시 중요할 것이므로. 예컨대 마을 상공을 나는 드론이 영상을 실시간으로 중계한다거나, 미디어 파사드로 마을 축제의 분위기를 띄우거나, 혹은 프로젝트 맵핑으로 마을 모형에 마을의 변화를 투사한다거나…… 한국에도 낭트와 같은 마을이 생기지 말라는 법은 없으니까……


    이날, 하루 종일 느릿느릿한 몽상이 꼬물꼬물 피어올랐다.




    [필자 소개] 요르 


    용산2가동(이른바 “해방촌”)에 위치한 용산FM에서 재밌게 활동하는 마을미디어 활동가. 과거에는 무엇보다 책을 읽는 것이 제일 좋았던 수줍은 사람이었다. 그런데 어찌어찌 마을미디어 운동에 발을 들이게 되었다. 이제는 타인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의 매력을 차츰 깨닫는 중. 잠시 책을 덮고 다른 사람의 노래를 잘 전달하는 통로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Posted by 마중 서울마을미디어지원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