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까지의 10년, 그리고 앞으로의 10년

    - 성서공동체FM 10주년 기념행사 ‘잔치 잔치 열렸네’ 참관기


    성상민(ACT! 편집위원회)


     2005년, 한국 방송사에서 좀처럼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일이 전국 각지에서 벌어졌다. 비록 출력이 1w(와트) 밖에 되지 않아 들을 수 있는 사람은 너무나도 적었지만 기존에 존재하던 대형 언론, 지방 언론과 달리 동네 마을 사람들이 스스로 주인이 되어 운영하는 라디오 방송, ‘공동체라디오’의 첫 방송이 시작된 것이 바로 그 해였다.


     물론 쉬운 길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어려운 날들이 훨씬 많았다. 공동체라디오를 만들었지만 정부는 딱히 이렇다 할 후속 정책을 마련하지 않았다. 3년 주기로 방송통신위원회가 재허가 심사를 할 때를 제외하면 무관심 속에서 공동체라디오는 방치되었다. 아니, 오히려 정부는 가뜩이나 쉽지 않은 공동체라디오를 더욱 어렵게 만들기도 했다. 2009년 방송사들의 자율 경쟁을 촉진한다는 명목으로 방송법을 개정해 방송발전기금을 통한 지언이 중단되었기 때문이다. 대신 광고를 넣을 수 있게 했지만, 애초에 출력이 낮아 방송권역 또한 낮은 상황에서 광고를 받게 한다고 만사형통일 수는 없었다. 사실상 전국 각지의 공동체라디오 방송국으로 하여금 각자도생을 해야 한다고 선언한 꼴이 되고 말았다.


     이렇게 온갖 어려운 순간을 거쳐 전국 각지 총 7곳의 공동체라디오가 10주년을 맞이했다. 많은 부분들이 쉽지 않은 상황 속에서 각각의 공동체라디오들은 자신들이 할 수 있는 특성을 최대한 살리는 동시에 허리띠를 조여 가며 방송국을 일구어 왔다. 여전히 출력은 1w에 고정되어 있지만 10년의 세월 동안 공동체라디오는 자신들이 근간에 두고 있는 지역 사회에 각자의 방식을 통해 정착해왔다. 그리고 필자는 그 중 한 공동체라디오의 10주년을 눈으로 직접 볼 수 있게 되었다. 바로 대구에 위치한 성서공동체FM(이하 성서FM)이다.


     성서FM은 대구 달서구에 있는 공업단지인 성서공단에서 근무하는 이주노동자와 함께하는 방송임을 표방하며 전파를 송출했다. 이주노동자를 위한 방송이라는 말답게 처음에는 이주노동자들이 직접 DJ가 되어 진행하는 프로그램, 이주노동자들의 고향인 아시아 지역의 주간 소식을 살펴보는 프로그램, 이주노동자들을 위한 한국어 교육프로그램 등 다채로운 방송을 편성하기도 했지만 정부의 지원 중단은 성서FM으로 하여금 좀 더 다른 길을 모색하도록 만들었다. 이주노동자를 위한 방송은 계속 존재하지만 이주노동자 뿐만 아니라 성서공단 근처에 거주하는 마을 사람들과 최대한 함께 하려 노력했다. 또한 부설기관으로 마을기업 ‘동네인문학’을 세워 마을 사람들을 대상으로 인문학 강좌를 하거나 이번에 성서FM이 10주년을 맞아 출간한 책 <만만한 라디오>를 펴내는 등 수익사업을 하면서도 마을 공동체와 함께하는 길을 모색하고 있다.


     솔직히 말하자면 필자는 성서FM이 처음 출범할 무렵 이주노동자들을 위한 방송이라는 점이 독특해서 잠시 관심을 가진 적이 있었다. 하지만 대구는 필자에게 있어 너무나도 먼 공간이었고, 자연스럽게 관심은 멀어졌다. 그렇게 잊고 지내던 성서FM을 10주년 행사를 맞아 찾아가게 된다는 것이 한편으로는 영광스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쑥스러웠다. 또한 한편으로는 성서FM을 찾아가는 일 자체가 설레기도 하였다. 대구에 몇 번 찾아가본 적은 있었지만 대구역이나 동성로, 반월당 등 유명 중심가에만 머물렀을 뿐 성서공단 같이 실제 마을 사람들이 살며 숨 쉬는 곳에는 처음이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미안한 마음 반 기대되는 마음 반을 안고서 8월 21일, 성서FM이 위치한 달서구로 발걸음을 옮겼다.


    남녀노소, 다양한 사람들이 성서FM을 함께하며 빛내다





    [사진 1] 8월 21일, 성서공동체FM 사무실이 입주한 성서빌딩 옥상에서 10주년 행사 ‘잔치 잔치 열렸네’가 열렸다. 빈자리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내빈들과 청취자들, 그리고 자원봉사자들이 참석해 성서FM의 10주년을 축하하였다.


     성서FM이 위치한 성서빌딩은 대로변에 위치하고 있었다. 공단과 주택가가 바로 근처이다 보니 일반적인 동네와 크게 다를 바 없는 모습들이 눈앞에 펼쳐졌다. 10주년을 축하하는 화환을 가슴에 안고서 부랴부랴 발걸음을 재촉해 성서FM이 위치한 빌딩에 올랐다. 행사는 오후 7시에 시작할 예정이었지만 좀 더 일찍 자리를 잡기 위해 10분 정도 일찍 성서FM에 도착했다. 하지만 벌써부터 성서FM의 사무실이 위치한 5층은 물론 행사가 벌어지는 옥상은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화환을 성서FM 관계자에게 전달하고 옥상에 오르자 아까는 전혀 상상할 수 없었던 풍경이 반겼다. 비록 화려하지는 않지만 정갈하게 꾸며진 무대와 객석이 마련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무대에서는 성서FM의 10주년을 축하하기 위해 찾아온 사람들이 공연을 준비하고 있었다. 옥상은 난간 역할을 하는 벽이 일반적인 빌딩에 비하면 무척이나 높은 것과 방송을 송출하기 위한 작은 안테나가 있다는 것을 빼면 일반적인 옥상과 큰 차이는 없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치 옥상정원에 놀러온 느낌이 벌써부터 들었다. 날씨 또한 쾌청해 밖에 있기에 딱 좋은 환경이었다. 바로 몇 시간 전에 비가 주룩주룩 내렸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자리에 앉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행사는 시작하였다. 꽤 넓었던 옥상은 어느덧 성서FM의 10주년을 축하하기 위해 온 사람들로 가득 차있었다. 그리고 그 행사는 그야말로 성서FM을 같이 만들고 청취한 DJ와 자원봉사자, 그리고 마을 주민들을 위한 행사로 펼쳐지게 되었다. 달서구청장을 비롯한 내빈의 소개와 축사가 끝난 뒤 약 2시간 동안 DJ와 청취자가 만드는 공연이 계속 이어졌다. 공연의 종류도 무척 다양했다. 대구도시철도공사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이 뭉쳐 만든 색소폰 동아리의 멋진 합주, 마을에 위치한 학교 역사 선생님의 국악 연주, 성서FM에서 주최한 인문학 강연의 강사로 참여한 테너 가수의 성악 공연… 좀처럼 한 자리에서 보기 힘들면서 멋진 공연이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이들이 모두 성서FM의 10주년을 축하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라는 것이 좀처럼 실감나지 않았다.


     단순히 공연만이 흥미로웠던 것은 아니었다. 축하 공연 사이사이에는 성서FM에서 현재 라디오 프로그램 DJ로 참석하거나, 오랫동안 성서FM을 좋아해왔던 마을 주민들의 축하 인사가 있었다. 성서FM의 근간이 된 이주 노동자를 성별, 나이, 장애 등등 다양한 면모를 가진 DJ들이 참여해 행사를 빛나게 하고 있었다. 공동체라디오가 메이저 매체에 비하면 독특하고 다채로운 색채를 가진 사람들을 위한 방송을 만드는 편이었지만 그런 모습을 눈으로 직접 확인하는 것은 너무나도 인상적이었다.


    다양한 사람들, 색다른 프로그램, 성서FM을 다채롭게 만들다



    ▲ 성서FM의 10주년 기념 행사에서 대구도시철도공사에서 근무하는 

    노동자들이 만든 색소폰 동아리가 흥겹게 노래를 연주하고 있다.


     대체 성서FM은 어떻게 이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나갈 수 있었을까. 그 실마리는 10주년 행사에 맞춰 성서FM이 펴낸 책 <만만한 라디오>에서 찾을 수 있었다. <만만한 라디오>는 성서FM과 함께했던 총 23개의 프로그램, 그리고 함께 방송을 듣고 만들었던 수많은 DJ와 자원봉사자, 그리고 청취자의 에세이로 구성되어 있는 일종의 연대기이다. 그리고 방송을 만들며 겪었던 다양한 희노애락이 담긴 10년간의 기록이기도 하다.


     다른 공동체라디오가 그랬듯 성서FM 역시 전문적으로 방송을 만들었던 사람은 거의 없었지만 기존 방송에서는 주인이 될 수 없었던 사람들이 전면에 나서서 방송을 만드는 흥미로운 특성은 좁은 송출 권역에도 불구하고 공동체라디오를 마을 주민들과 소외 받던 사람들을 위한 방송국으로 만드는 매우 큰 매력이 되었다. 또한 성서FM 역시 처음부터 지역 시만사회단체와 컨소시엄을 꾸려 방송을 제작함으로써 적극적으로 다양한 이들과 함께 하기 위해 노력을 해왔었다. 이러한 특징은 10주년 행사에서 시각적으로 드러났듯 가지각색의 사람들이 성서FM과 함께 발걸음을 걷는 계기를 만들게 되었다.


     그 결과 지나치게 청장년층에 타겟을 맞추고, 연예인들의 수다를 나누는 프로그램에 밀려 시사-교양 프로그램이 점차 사라지는 일반적인 라디오 방송과 달리 성서FM은 독특한 특색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지역 주민들이 방송의 주인이 되어 직접 프로그램을 만드는 특징은 <주민발언대>처럼 성서 지역에 도서관을 건립하게 만드는 등 공중파 프로그램 못지않은 일을 만들기도 했다. <월배를 찾아서>나 <달려라 성서 891> 같이 마을 사람들의 일상이나 삶의 역사를 듣는 재미도 있다. <수성주민광장> 같이 달서구나 성서공단 근처에 사는 사람은 아니지만, 마을 미디어라는 목표로 함께하는 프로그램도 존재한다.


     다양한 사람들이 참여하는 특성은 다양한 사람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낳는 것에도 기여했다. 성서FM의 출발점인 인도네시아를 비롯해 총 6개 아시아 국가에서 온 이주 노동자가 매일 돌아가면서 진행하는 <Migrant Worker’s Programs>(이주노동자 방송)을 비롯해 사회복지사가 만드는 <꿈이 들리는 라디오>, 장애인들이 만드는 <나 이런 사람이야>, 장애인 자식을 기르는 부모가 만드는 <담장 허무는 엄마들>, 국가인권위원회 대구사무소에서 인권기자단으로 활동하는 사람들이 만드는 <산소 같은 인권 톡톡>, 노인들이 만드는 <실버스튜디오>와 <브라보 마이 라이프>, 사회적 기업을 만드는 청년들이 만든 <공존공생 분투기>, 성서공단의 다양한 영서 공장에서 근무하는 노동자가 만드는 <작업복의 희망을 싣고>, 청소년이 만드는 <열여덟의 낭랑매거진> 등등 실제 삶에서는 존재하지만 방송에서는 좀처럼 찾아볼 수 없는 사람들이 다양한 방송국을 만들고 있었다.


    성서FM, 앞으로의 10년도 잘 부탁해!


     이렇게 성서FM은 주류 미디어에서는 쉽게 할 수 없는 일을 하며 마을 사람들, 그리고 공동체라디오라는 뜻에 함께하는 사람들과 함께 손을 맞잡으며 10년 간 방송을 만들어왔다. 물론 앞서 살펴봤듯 여전히 상황이 좋지는 않다. 성서FM의 정수경 대표가 책의 머리말에서 밝혔듯, 공동체라디오의 1w 출력은 무전기의 5w 출력에도 미치지 못한다. 방송통신위원회가 허가한 가청권역 반경 5km에 전혀 도달할 수 없는 출력이다. 성서공단의 총면적이 약 11.46㎢이므로 성서공단에 머무는 사람들은 이론상 모든 이들이 라디오를 통해 성서FM을 접할 수 있지만, 달서구의 면적은 62.26㎢임을 생각하면 방송국이 위치한 달서구 마을 주민 대부분은 라디오가 아니라 인터넷을 통해 방송을 접해야만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인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방송통신위원회는 공동체라디오의 출력을 늘리는 대신 오히려 광고로 먹고 살라며 지원금 지급까지 오래 전에 중단한 마당이다. 들을 수 있는 사람이 무척이나 한정적인 가운데 그런 매체에 돈을 주며 광고를 집행하려는 기업이나 단체들은 무척이나 드물 수밖엔 없다. 결국 다른 공동체라디오가 그렇듯 제작진과 자원봉사자들의 헌신과 희생, 그리고 마을기업 ‘동네인문학’ 등 방송 이외 다양한 사업을 모색하면서 성서FM은 10년간 버텨왔다. 하지만 성서FM을 둘러싼 제도와 상황이 변하지 않는다면 성서FM은 언제 폐국해도 이상하지 않을 위기에 계속 놓여있는 셈이다.




    ▲ 성서FM이 10주년 행사에 맞춰 펴내기 위해 기획된 책 <만만한 라디오>는 

    약 한 달 동안의 모금 기간 동안 원래 목표했던 금액을 넘겨 총 839만원을 모금 받게 되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서FM은 결코 포기 하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성서FM의 10주년 행사에서 느낄 수 있었던 뜨거운 열기와 호응은 공동체라디오에 대한 사람들의 열의가 얼마나 굳건한 것인지를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10주년 행사에 맞춰 펴낸 책 <만만한 라디오>에 대한 제작비 모금 역시 목표액 5백만원을 넘겨 총 839만원을 모을 정도로 분명 성서FM에 대한 사람들의 애정은 무척이나 강해 보인다. 행사 당일 축사를 한 정수경 대표 역시 “10년 동안 함께 해주셔서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지금까지 걸어온 것처럼 다시 10년을 걸어 나갈 것이다.”면서 계속 방송을 만들어 나갈 것이라는 의지를 엿보였다. 그 의지는 분명 오랜 세월 동안 다져온 방송에 대한 애정이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었다.


     모든 식순이 끝나고 행사가 마무리될 때 즈음, 10주년 행사에 찾아온 한 참석자에게 간단히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녀가 사는 집에서는 비록 성서FM이 나오지 않지만, 생협 활동을 하면서 공동체라디오에 관심을 가지고 오랜 시간 동안 인터넷을 통해 방송을 들어왔던 열혈 애청자였다. 그녀는 성서FM이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을 좋아하고 있었다. “앞으로도 계속, 지금 모습 변치 않고 방송을 잘 만드셨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오늘 같은 행사도 계속 열고 함께 축하했으면 합니다.” 그 마음 그대로, 성서FM이 앞으로의 10년도 많은 사람들과 함께 하기를, 그리고 더욱 발전하기를 빌 뿐이었다. ■




    [필자소개] 성상민 (<마중>객원필자)


     2005년 만화언론 <만>의 객원필진으로 데뷔한 이후 2006년 부천국제만화축제(BICOF) 강풀 특별전 전시 기획 참여와 <인터넷뉴스 바이러스>에서 2009년 문화부 기자 생활을 하며 본격적으로 글을 쓰게 되었다. 현재는 <미디어스>에서 정기적으로 만화 및 문화 평론을 하고 있다. 또한 학점 관리에 큰 문제가 생겨 경희대 사회학과를 1년 더 다니는 게 최근 확정됐다. 트위터 주소는 @skyjets_



    Posted by 마중 서울마을미디어지원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