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미디어, 새로운 역사 쓰기
- 미디액트 개관 12주년 기념 라운드테이블, 전국 마을미디어 팔도유람
이수미 (<마중>객원기자)
지난 7월 25일, 개관 12주년을 맞은 <미디액트>가 팔도에서 손님들을 모시고 개관 12주년 기념행사를 열었다. 라운드테이블에 오른 의제는 최근 공동체미디어운동의 새로운 모델로 떠오르고 있는 마을미디어! 2002년에 국내 최초의 영상미디어센터로 출범하여 미디어공공성 실현을 위해 꾸준히 노력해온 <미디액트>가 지속과 변화의 기점에서 선택한 기제인 ‘마을미디어’는 어떠한 의미와 과제를 안고 있을까?
미디액트 개관 12주년 기념 라운드테이블 날짜: 2014년 7월 25일 / 시간: 오후 2:00 – 6:30 / 장소: 미디액트 대강의실
-섹션1- 마을미디어 현황 공유 [사회] 김명준 (미디액트 소장) [기조발제] 김희영(미디액트 마을미디어교육실장) 황민호(옥천신문), 정수경(대구성서FM), 윤혜숙(성남미디어센터)
-섹션2- 마을미디어 라운드테이블 [사회] 이주훈 (미디액트 부소장) 박민욱(전국미디어센터협의회), 양승렬(동작공동체라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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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디액트 개관 12주년 기념 라운드테이블, 전국 마을미디어 팔도유람
마을, 미디어를 만나다
2012년, 서울시 마을공동체 사업의 일환으로 시작된 마을미디어는 현재 서울뿐만 아니라 지역 미디어센터를 거점으로 확산 일로에 있다. 서울에만 18개 구에서 30여개 마을미디어들이 TV, 신문, 라디오 등을 통해 주민자치의 미디어 활동을 벌이고 있으며, 전국 7개 지역의 공동체라디오와 기타 크고 작은 단위의 마을신문이 그동안 주류미디어로부터 소외되었던 마을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여기에 전국 30여 곳의 미디어센터를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는 제작단, 동아리까지 합하면 실로 전국 곳곳에서 민중미디어의 변혁이 일어나는 중이다.
[전국 마을미디어 팔도유람]이라는 제목으로 열린 이번 토론회에는 전국의 마을미디어를 이끌어가고 있는 ‘창신동라디오 덤’, ‘성북마을방송 와보숑TV’, ‘옥천신문’, ‘성서공동체FM’ 등이 초대되어 마을미디어의 현재 모습을 소개하고 현장에서 부딪히는 고민을 함께 나누었다. 또 김종휘(성북문화재단), 이동연(한국예술종합학교), 윤혜숙(성남미디어센터), 박민욱(전국미디어센터협의회), 양승렬(동작공동체라디오)이 참석해 마을미디어가 안고 있는 과제와 전망에 대해 논의했다.
기조발제를 한 김희영(미디액트 마을미디어교육실장)은 마을미디어의 등장을 수용자운동에서 퍼블릭액세스, 공동체미디어로 이어지는 미디어운동의 맥락에서 설명한다. 1980-90년대에 걸쳐 진행된 수신료 거부 운동, TV 안보기 운동 등 수용자 운동은 시청자 주권을 주요 이슈로 등장시키고, 2000년 통합방송법 개정으로 퍼블릭액세스 개념이 제도화 되며 <KBS 열린채널>과 <시민방송 RTV>가 생겨난다. 2002년에는 국내 최초 영상미디어센터 <미디액트>가 개관하고, 2000년대 중반부터 전국적으로 지역미디어센터가 건립되며 지역 공동체 중심의 미디어교육과 활동이 확산된다. 또한 대구성서공동체FM을 비롯하여 현재 전국에 7개가 존재하는 공동체라디오는 시민이 미디어의 주인이 되는 공동체미디어의 장을 열게 된다. 결국 오늘의 마을미디어는 기존의 시민 중심 미디어운동이 축적된 결과라 볼 수 있다고 김희영(미디액트)은 말한다.
예상치 못한 찬란함
서울 종로구의 창신동은 동대문패션타운에 의류를 납품하는 작은 봉제공장들이 밀집되어 있다. 봉제업을 하는 주민들은 라디오를 들으며 긴 노동의 무료함과 고단함을 달랜다. ‘창신동라디오 덤’은 이러한 지역 특색을 고려하여 만들어졌다. 조은형(창신동라디오 덤)은 마을에서 만나는 미디어의 의미를 멍석효과라는 말로 대신한다.
“예상치 못한 찬란함을 봤어요. 멍석이 깔렸을 때 발산되는 자기만의 향기 같은. 내 삶의 경험을 처음부터 끝까지 이야기로 짓는 경험, 그때 반짝이는 눈... 마을라디오를 통해 사람들은 자신이 어떻게 사회에 비춰지는지를 보며 즐기는 것 같아요. 이런 것들이 주민들이 사회성을 발현하는데 힘을 주는 것 같습니다.”
▲ 창신동라디오 덤 조은형 방송국장
그러나 교육과 지원이 끝난 후 마을미디어로서 자립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다. 적은 인력으로 방송을 이어가야하는 부담감도 있지만, 드러나지 않는 내부 갈등이 실질적인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회의를 진행하며 느낀 점은 우리가 민주적인 논의를 하는 훈련이 잘 안되어 있다는 거예요. 반대 의견은 회의시간에 내놓아야하고, 함께 결정했으면 따라야 하고... 이러한 기본적 훈련이 안 되어 있었죠. 게다가 인간관계에서의 문제는 더 복합해요. 질투, 기질의 차이가 활동에 그대로 영향을 미쳤어요. 우리는 권력을 나눠 갖는 것에 대한 경험과 훈련이 안 되어 있었어요. 결국 이런 과정에서 창립멤버 2명이 완전연소되어 떨어져 나갔죠.”
이러한 초기 의사결정 과정의 문제점은 결국 운영 컨설팅을 받고 리더 중심의 의사결정구조로 재편하며 해결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론은 비관적이지 않다. 조은형은 다시 돌아가야 하는 지점이 있다면 그것은 누구나 주인공이 되어 빛을 발산했던 그 경험의 순간이라고 말한다.
지역에 뿌리를 내리기 위해
작년 3월에 개국한 서울시 성북구의 마을방송 와보숑TV는 제작한 콘텐츠를 유튜브와 페이스북, SNS를 통해 배포하며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현재 와보숑TV에서 제작해 업로드 한 콘텐츠는 60개가 넘고 있으며 마을뉴스의 경우 세부콘텐츠만 80개에 이른다. 유튜브 평균 조회 수는 약 250회, 성북마을방송 홈페이지 와보숑 코너의 조회 수는 프로그램 별 약 450-1200회에 이른다.(자료제공 : 와보숑TV)
▲ 와보숑TV 김현미 운영책임자
김현미(와보숑TV)는 인터넷을 통해 결과물을 계속 올리다 보니 자신들의 이야기가 공개되는 것에 대한 마을주민들의 호응이 크고 외부에서도 연락을 많이 받는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러한 관심으로 인해 웃지 못 할 일들도 생긴다.
“어떤 분이 선거 직전에 회원으로 가입해서 앵커로 활동을 했는데, 글쎄 얼마 후에 선거에 출마를 한 거예요. 참... 또 어떤 당의 의원은 선거 전에는 찾아와 도움을 구하더니, 선거가 끝나자 마을미디어 사업을 깎아 내리는 이야기를 하고 다니기도 했죠.”
그녀는 현재 와보숑TV의 배포형태는 매우 적극적인 시청자를 위한 방식이라는 점에서 마을방송으로서 한계를 느낀다며, 마을미디어가 해당 지역 전체를 아우르기 위해서는 보다 쉬운 접근법과 다양한 주민들의 참여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공론장, 지역언론의 본질
1989년 창간된 충북의 옥천신문은 한겨레신문의 국민주 방식을 모델로 하여 222명의 주민들이 출자해 만들어져 현재 4천300명의 유료 독자를 대상으로 매주 16페이지의 신문을 발행하고 있다. 옥천신문 황민호는 인구 5만여 명, 2만 가구의 옥천에서 유료구독 4000부의 국민주 신문을 발행할 수 있는 것은 주민들의 힘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매주 대박을 치고 있습니다. 조선, 동아보다 얇은 1500원 짜리 신문을 주민들이 구독하는 이유는 우리 신문의 기사는 네이버에 안 나오기 때문이죠. 옥천신문의 뉴스는 기자들이 직접 지역을 발로 뛰어 나온 거예요. 매주 주민들의 힘으로 옥천의 역사가 쓰여 지는 것이죠... 이따만한 고구마를 캐면 우린 달려갑니다. 강아지를 7마리 낳았다고 해도 달려갑니다. 우리 신문의 주인은 주민이기 때문이죠.”
아파트에 꽂힌 옥천신문이 도난당하는 것은 주민들이 신문을 훔쳐서 읽기 때문이라는 너스레에 장내가 웃음바다가 되었다.
▲ 옥천신문 황민호 전 편집국장
황민호는, 지역 언론이 기존의 언론과 다른 것은 언론에 주민들의 이야기가 나오고 일상생활에서 기자와 주민들이 자주 마주치기 때문에 바로바로 피드백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이라며, 결국 공동체미디어의 본질은 지역의 공론장 역할에 있다고 강조한다.
공동체라디오, 미래를 꿈꾸다
2005년 8월에 개국한 대구의 성서공동체FM은 다음 달에 9주년을 맞이한다. 정수경(성서공동체FM)은 올 해 내내 내년에 있을 10주년 개국행사를 준비하고 있다고 말한다. 국내 최초의 공동체라디오들 중 하나로서 공동체미디어의 길을 개척해온 성서공동체FM에게 지난 10년의 의미는 그 만큼 큰 것이다.
“10년 동안 버틴 것만으로도 굉장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어요. 이제는 공동체라디오가 어디에 위치할지를 고민합니다. 영국 공동체라디오 핸드북 1에 보니 공동체가 80% 라디오가 20%라고 나오더군요. 그런데 나는 맞지 않다고 생각해요. 주파수를 갖든, 인터넷으로 하든, 라디오라는 건 ‘공동체’ 속에 들어갈 수밖에 없는 거 같아요. 공동체와 라디오 중 무엇이 먼저이고 나중인가는 중요하지 않아요. 공동체미디어든, 마을미디어든, 미디어라고 말하는 순간 사회적 의제와 만날 수밖에 없죠.”
▲ 대구성서공동체FM 정수경 대표
성서공동체FM은 이제 지나간 10년을 정리하고 다가올 10년을 준비하고 있다. 그동안 스쳐지나간 수많은 자원 활동가와 후원회원을 모아 ‘성서공동체FM 총동창회’도 결성할 예정이다. 지난 역사를 기록할 책도 계획하고 있다. 어쩌면 10주년 기념행사에서 이들을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앞으로의 10년도 마을 안에서 방송과 사람들의 공공재로서 살았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정수경 대표의 모습에서 마을미디어의 미래가 언뜻 보이는 것 같다.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2012년, <우리마을 미디어 문화교실>을 통해 서울 전역의 41개 단체가 마을미디어 교육을 받았고, 이를 바탕으로 10개 지역에 ‘마을미디어’가 생겨났다. 이것이 ‘마을미디어’의 공식적인 출발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2년여의 시간이 흐른 지금, 마을미디어에게 홀로서기는 여전히 어려운 과제다. 마을의 일원으로서 인정받고 마을의 대변인으로서 신뢰받으며 지역에 안착하기 위해서 남겨진 과제는 무엇인가?
동작공동체라디오 양승렬은 설립 2-3년차 마을미디어들이 느끼는 공통적인 고민을 ‘지속가능성’과 ‘콘텐츠 생산’으로 요약한다.
“이제 지역 안에서 인지도도 있고, 공간도 있고, 자원 활동가도 있는 성과를 이루었지만 개별적으로 지속가능성의 문제를 돌파하기는 여전히 힘듭니다. 비영리마을방송국이 수익구조를 창출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죠. 서울시에서 예산지원을 일부 받고 있지만 충분하지 않고, 또 일정 지원(3년) 후에는 자립을 해야 해요. 광고가 가장 흔히 말하는 해법이지만 그로 인해 콘텐츠의 내용에 영향을 받는 것도 걱정입니다.”
그는 마을미디어 중간조직인 서울마을미디어지원센터와 소출력 공동체라디오 방송국들, 그리고 다양한 마을미디어가 그동안의 공동체미디어 운동의 노하우를 토대로 정책과 교육, 콘텐츠 생산 등에 대해 장기적 관점에서 논의를 해야 한다고 말한다.
성남미디어센터의 윤혜숙은 마을 내 인적 자원의 확보를 강조한다.
“마을 안에 모든 자원이 있다고 하지만 현실적으로 안 그래요. 마을 속에서 전문가들을 찾아내는 것이 쉽지 않죠.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교사를 지원할 경우 동네마다 특성이 다르고 역량이 달라 얼마 기간 동안 얼마만큼의 지원을 할 것인지를 결정하기가 힘듭니다. 결국 사람이 준비되어야 하고, 사람을 기르는 것이 중앙 조직의 역할인 것 같습니다.”
박민욱(전국미디어센터협의회)은 <미디액트>가 지금과 같이 마을미디어지원센터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그간 공동체미디어를 지원했던 경험에 있다고 지적하며, 마을미디어가 확산되기 위해 지역미디어센터가 축적한 노하우를 어떻게 녹여내야 하는지를 함께 고민해야 한다고 말한다. 또한 미디어센터가 왜 미디어교육을 하는지 근본적인 질문이 필요하다며 미디어센터의 양적 팽창보다는 고유의 역할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 2부 라운드테이블 토론자. (왼쪽부터) 동작FM 양승렬 대표, 전국미디어센터협의회 박민욱,
미디액트 이주훈 부소장, 한국예술종합학교 이동연 교수, 성북문화재단 김종휘 대표
마을미디어의 언론으로서의 잠재력과 공론장으로서의 역할에 대해 강조하는 목소리도 있다. 김종휘(성북문화재단)는 지금은 이전과는 좀 다른 지형에서 마을미디어에 대해 논의를 해야 할 때라고 말한다.
“마을 공동체 사업이 마을의 복귀를 알리는 신호탄이었다면, 세월호 사건이 일어난 지금은, 마을의 부흥이 일어나는 느낌을 받습니다. 마을미디어가 얼마나 조밀하고 동시에 크게 의제를 증폭시킬 수 있는 잠재력이 있는지 느끼는 시점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동연(한국예술종합학교)은 거버넌스 체계 마련의 차원에서 마을미디어에 대한 공공지원과 투자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마을미디어를 통해 이 시대에 맞는 새로운 유형의 공동체 문화를 형성하기 위해 지역 별 마을미디어센터를 설립하여 인프라를 구축하고 이를 안정적으로 보장해줄 법적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자본이 상업미디어를 만든다면 시민은 공동체라디오, 마을미디어를 만들 수 있다며, 이제 마을미디어를 통해 마을 단위로 벌어지고 있는 우리 사회의 각종 이야기들, 중요한 정보들, 보육, 안전 등 여러 이슈에 대해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마을 미디어, 새로운 역사를 쓰다
마을미디어가 출범한지 이제 2년, 고민은 더 깊어지고 과제는 줄지 않았다. 그러나 지나간 2년여를 거슬러 올라 출발지점을 돌아다보면 까마득히 멀리 와 있다. 미디어를 통해 참여민주주의의 토대를 마련하고자했던 그동안의 노력과 실천들이 응집해 오늘의 마을미디어를 탄생시켰다면 마을미디어는 여전히 변혁의 과제를 안은 채 포장 안 된 길 위에 서 있을 수밖에 없다. 길을 내며 계속 걸어가는 것, 그것이 민중운동이 안고 있는 숙명이다.
이제 시민은 마을 안에서 미디어를 통해 그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단순한 미디어의 객체에서 벗어나 스스로 주체가 되어 질경이처럼 질기고 단단한 뿌리를 내리며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다. 마을미디어가 가는 이 길은 그동안 시민미디어운동이 만들어 온 길이자 <미디액트>가 걸어온 길이다. <미디액트>가 개관 12주년을 맞아 펼친 이번 라운드테이블은 마을과 함께 변화하고 성장하려는 다짐이자 선언은 아닐까.
- 영국의 라디오 리젠에서 펴낸『공동체 라디오 만들기 - 영국공동체라디오핸드북』. http://www.mediact.org/web/morgue/book_view.php?code=&mode=View&bbid=&type=&page=&part=&nums=113&numC=&grp=&sfl=&stx=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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